범사의 감사.
지난 주일 텍사스에서의 허리케인처럼 점점 태풍이 많은 철에는 강풍을 동반한 폭우나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소나기로 날씨가 험해져 지반이 약해지면 숲이 많은 이곳에 큰 나무들이 낡은 전신주를 덮쳐서 정전이 발생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전기가 끊어지더라도 금방 전기가 들어오면야 다행이지만, 정전인 상태가 하루 이틀 이상 되면 점점 불편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당장은 요즘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스마트폰을 못쓰게 되고, 냉장고에 넣어 둔 냉동음식들이나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바닥이 흥근히 젖는 등의 불편을 겪기는 하지만, 응급실 병동에서 의료기기에 의존에 생명을 연장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에 비할 바는 못된다.
실은, 지난달 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스스로 폐를 움직여 호흡을 할 수가 없어 복잡한 의료기기가 실린 의자에서 생활해야 하는 20대 후반의 프레드릭이란 청년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사실은 장애 아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와 결혼한 의붓아버지)와 이야기 도중에, 자신의 아들은 의료기기의 배터리 최대 충전 가능 시간이 4시간 45분이라 그 이상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호흡을 못해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항상 전기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전기코드를 뽑아 충전을 해 놓는다고 한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힘든 적이라고는 고작 어릴 적 물놀이 가서 물먹고 허우적거린 것 밖에는 없거니와, 전기가 하루 안 들어와서 생명의 위협을 받을 거란 생각조차 해 본 적도 없는 나에게, 그 아버지의 미간을 올리면서 내뱉는 웃음 섞은 자조의 말에 한동안 그의 아들이 등 뒤에 차고 있는 쉴 새 없이 깜빡거리는 전기 신호등을 응시하면서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행히도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집 관할 전력회사에 아들을 전력 우선 수혜자로 등록해 놓은 덕분에 만일 엄청난 허리케인이 와 정전이 생겨도 전력이 필요한 이 청년의 집을 최우선으로 전력이 재 공급해 줄 수 있게 해 놓았다니 그나마 안심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아들을 위해 기꺼이 60이 넘은 나이인데도 165파운드(약 75kg)나 되는 의붓아들을 목욕시키고 침대에 기중기 같은 기계로 매달아 옮기는 일을 불평 한번 하지 않고 남편이 거들고 있다고 말한 이 엄마도 점점 늙어가는 몸이지만 내가 건강히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갖게 해 준 아들이 버겁게만 느껴지기는커녕 고맙게만 느껴진다고 한다.
"불가능은 없다"는 그 유명한 격언을 남긴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한 황제가 되었지만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밖에 없었다" 고 고백했다. 반면,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 장애를 평생 안고 살아온 헬렌 켈러 여사는 "내 생에 행복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라는 고백을 남겼다.
그런 아름답고 용감한 고백을 감히 할 수 있었던 그녀의 마음 저변에는 항상 불우해 보일 수도 있는 자신의 주어진 삶의 환경에 오직 "감사"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진대, 언젠가 나도 생을 마감하는 그 날이 오면 그녀와 같은 삶의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불현듯, "장미꽃 가시에 찔려서 피 흘릴 수 있는 손가락이 있음에 감사한다"는 말을 되새기면 내 손마디를 만져본다.
때마침 오늘 한국 뉴스를 읽느니 전남 광주에서 두 모녀가 딸의 등록금이 없어 저수지로 차를 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거란 뉴스를 읽고 보니 이 두 사람에게 이 청년의 사진을 보여줬더라면 마음을 바꿔 먹었을 것을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