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by Eric

Interstate 95.
최북단의 메인주에서 최남단의 플로리다까지 미 동부 해안을 끼고 달리게 만들어진 이 고속도로의 길이만도 3,100여 km(경부고속도의 약 12배)인데 그 긴 구간 중에 유독 속도를 못 내는 저속(低速) 도로의 구간이 뉴욕시의 빈민가인 Bronx를 통과해야 할 때다.

일요일마다 아들의 행사로 이 도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워낙 정체가 심해 행사 시간에 늦어지자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이 할렘가를 통과할 때면 가끔 총알을 맞은 차가 주차되어 있기도 하고, 엠블란스 소리가 거의 매일 들리는 그런 위험한 곳이라 대낮만 아니면 절대로 이 삭막한 도심을 타주 번호판을 단 외지인이 운전하고 다니기에는 좀 살벌한 동네이다.

일주일에 몇 건씩의 총기 사건이 발생하는 곳이라 웬만한 살인 사건은 기삿거리 조차도 되지 못하는데 1997년 6월 2일에 발생한 한 백인 청년의 살인 사건이 뉴욕의 주요 일간지에 실린 적이 있다.

사건의 개요는 31살 된 Bronx의 Jonathan Levin이란 총각인 영어교사가 자신이 가르쳤던 흑인 제자에게 살해됐는데, 그가 재직해 있던 고등학교는 워낙 총기사고가 많아서 교문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할 정도이지만, 그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봉급을 털어 양키 구장에 야구 구경도 가고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성적이 오른 학생들에게는 옷이나 책을 사줄 정도로 열정적으로 제자들에게 세상의 밝은 면을 보여 주려고 했던 젊은 교사라 그의 죽음은 더더욱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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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더욱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은 그가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인 타임워너 회장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기 몇 주전 학교에서 제자들에게 자서전을 쓰라는 숙제를 내주면서 자신의 살아온 애기를 어쩔 수 없이 제자들에게 알리자, 한 흑인 학생이 "아버지의 그 많은 재산을 어디에 쓸 거냐"라고 묻자, "아버지 돈은 내 돈이 아니며 미래는 나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그의 제자들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한다.

제자들이 기억하는 조너던은 제자들에게 문학의 아름다움과 현실의 성찰을 통해서 자신들의 절망을 극복하도록 가르쳤고, 불우한 청소년들의 삶을 헌신적으로 가르쳐 왔고 돈에 무관심했던 그저 평범한 아들을 잃은 그의 아버지인 레빈 회장은 장례식을 마치고 교편을 잡았던 그 고등학교에 장학기금을 마련해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어느 사회든 국가든 소위 돈으로 계층화된 상류사회가 있고, 부모의 유업이나 유산으로 대를 이어 부자가 되는 것은 개인의 경제적 선택의 자유라 법에 저촉만 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를 죄악시 여긴다거나 비난받을 필요도 없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런 계층에서 이런 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일반인들에게 본이 되어주길 원하고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티끌만큼이라도 생각해 주는 말과 행동이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가는 사회에서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 청량제"로 여겨질 수 있다.

몇 년 전 한인 일간지에서 월가에서 큰돈을 벌어 성공한 한인 교포 젊은이의 기사를 읽었는데 돈독이 오를 때로 오른 그들에게 도대체 "성공"의 개념이 뭔지도 모르고 취재를 하는 한인 기자의 기사가 행여 순진한 젊은 중고등 학생에게 왜곡된 삶의 가르침으로 받아 들려질까 봐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었다. 또 얼마 전 한국의 모 항공사의 3세의 갑질 문제로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갑자기 이 이야기를 떠 올리게 한다.

다음 주말에는 딸도 같이 뉴욕을 가는데 Bronx를 지날 때 즈음해서 훤칠하고 미남의 청년이었던 조너던의 20년 전 이야기를 차 안에서 해 주면서 딸의 마음속에도 작은 "울림"이 있기를 바라며, 그래서 딸의 앞으로의 삶도 세상을 향해 힘차게 "메아리"치는 인생이 되길 소원하며 새삼 늘 마음속에 품어 왔던 이 말을 되새겨 본다.

"땀 흘리는 노력 없이 부모의 물러준 유산으로 사는 사람보다,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는 탁월한 사람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에 도전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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