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가 북쪽엔

그리움

by Eric

<<그리움>> 이용악 (1914 - 1971)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 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정확히 73년 전,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이한 1945년 어느 눈 내리는 겨울밤에 시인 "이용악"은 외로이 혼자 서울에 있으면서 함경북도 무산의 처가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쓴 이 "그리움" 이란 詩가 사계절마다 바뀌는 한국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 겨울 글판에 새겨진 적이 있었다.


한국인이 꼭 읽어야 할 名詩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이 詩를 나도 지난 연말, 두 달마다 열리는 지인들끼리의 아침 식사 모임에서, 이 詩의 애잔함을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또 남자들끼리 모여 시사 문제를 토론하는 삭막함을 조금이나마 없애 보려고 참석자들 앞에서 애써 외워은 적이 있었다.


함경북도(지금의 양강도)의 "백암(白岩)"에서 개마고원을 가로질러 두만강 침엽수림의 산림지대를 끼고돌아야 나오는 강변 도시 "무산(茂山)"을 잇는 "백무선(白茂線)", 그 철길이 험악하게 놓인 흰 눈 싸인 산과 산 사이의 벼랑을 힘겹게 달리는 검은색 화물 열차.....


차디찬 밤공기 조차 얼어붙게 하는 혹한의 겨울 밤하늘. 휘영찬 보름 달빛에 주위 사방이 쌓인 눈에 반사되어 희미하게 비춰 오는데 철길 위로 꼬리를 길게 늘여가며, 엉금엉금 달려가는 숨 가쁜 목탄 태우는 엔진 소리를 뿜어내며 산간지방 사람들의 내뱉는 잠결 숨소리마저 얼어붙은 정적으로 깊이 쌓인 벽촌 마을에 나지막하게 들려주며 고향으로 향하는 그 잿빛 밤하늘 아래의 설국 열차....

상상의 나래를 펴는 세계에서는 한없이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 개마고원을 가로지르던 뗏목 실어 나르던 화물열차는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오간데 없이 사라졌고, 지난 십여 년간의 북한의 핵폭탄 지하 실험장으로 변해버린 그곳은 이제 ICBM이란 한반도 전역뿐만 아니라, 전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숨겨두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뵌 적도 없는 장인어른도 부모형제를 북에 두고 혼자 월남을 했다고 와이프에게서 들었고, 만난 적도 없는 먼 이모할머니의 남편이 조총련에 시집갔다고 언뜻 작은아버지에게 전해 들었는데, 따지고 보면 나 또한 북녘의 다른 우리랑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얽히고설켜 있다.


몇 년 전 오준 UN대사가 말한 것처럼, 그냥 그들이 말 그대로 any bodies가 절대 아닌데 나와 우리는 우리 살기조차 힘들다는 이유로, 보지도 만나지도 않았다는 이유 만으로, 그냥 any bodies로만 여기고 살아왔었다.


매년 12월이면 북한과 접한 중국 국경지역에서 어렵게 비즈니스를 하며 탈북자들을 위한 복음 사역을 하시는 이제는 75살을 훨씬 넘기신 모 선교사님이 매년 12월이면 미국 아들 집으로 돌아와서 북한 동포의 참혹한 실상 늘 들려주었는데, 올 겨울에는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못 들어온다는 소식을 최근 그분의 아들 집사님을 통해 몇 주 전 전해 들었다.


오늘 이곳 뉴저지도 새해 들어 첫눈이 많이 내렸다. 여기보다 위도가 높은 북쪽에는 오늘이 공교롭게도 일 년 중 제일 춥다는 소한(小寒)이고, 이른 겨울이라 첫눈이 벌써 왔을지도 모르는데, 그 어느 때보다 조국의 안위가 걱정되는 위중한 이때에 한국에 사는 가족들이 걱정되는 이 밤. 그래도 그 선교사님에게 조용히 꼭 물어보고 싶다.


"눈이 오는가 저 북쪽엔, 함박눈 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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