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그렇게 녹녹히 넘볼 나라가 아니다.
업무상 일주일마다 오피스로 배달되는 일본 경제주간지, Nikkei Businiss 첫 장에 일본에서 저명한 중년 남자들을 모델로 해서 "야마자키(山崎)" 위스키 광고가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위스키 산업이 국내총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본고장 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가 세계적인 위스키 전문가인 Jim Murray가 선정한 2015년 세계 5대 위스키에 하나도 들지 못했다며 그 경악스러운 사실을 영국 신문에 대서특필한 적이 있었다. 반면, 1923년부터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한 일본의 산토리가 생산하는 야마자키몽트쉐리가 영예의 1위를 차지한 것.
몇 주 전에 탐슨 로이터 (Thomson Reuters) 통신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세계 100대 혁신기업에 미국 기업이 39개 차지를 했고, 뒤이어 일본이 34개, 유럽은 전부 합쳐서 22개 기업(프랑스 10개, 독일 4개, 스위스 3개...), 그리고 한국은 삼성, LG 등을 포함해서 3개 기업이 그 순위에 들었고, 중국의 가전업체 하웨이와 대만 기업이 각각 1개씩이다.
선정기관이 일본과 무관한 캐나다의 탐슨과 영국 기업이었던 로이터의 합작기업인 탐슨 로이터라는 신뢰할 만한 언론에서 객관적 기준으로 기업의 재무구조, 연구개발비, 성장잠재력, 보유 기술력, 시장점유율 등등을 고려해서 발표를 했으면, 일단은 신뢰는 할 만하다.
인구 1억 3천에 자원도 없고, 지진에 태풍에 자연재해가 비일비재한 섬나라 일본에서 그보다 훨씬 국토의 면적이나 자원면에서 압도적인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오랜 전통의 유럽 기업들까지 2배 이상으로 따돌리면서 전 세계 기업의 34%를 차지했다면, 한일 간의 골 깊은 역사문제와 사회문제로 일본이 밉고 싫더라도 우리가 반드시 눈여겨봐야 하며, 그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고, 또 찾아내야 한다.
왜 그렇까? 왜 한국보다 훨씬 앞서 서구화가 됐다고 하더라도, 일본도 1945년 폐전 후 폐허에서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한국이나 거반 비슷하게 출발한 셈인데 왜 우리보다 10배 이상의 혁신기업이 나오는 것일까? "잃어버린 20년"이라고 일본 경제의 몰락을 누구나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동래 북 두드리듯 몰아쳤던 외신이나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눈에는 그 이유에 명쾌히 답해 풀어야 할 수수께끼임에 틀림없다.
나 역시 일본에 살면서 만큼 많은 일화나 경험을 했지만, 나라마다 다양성이라는 게 있어 한마디로 이런 나라라고 사실 단언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도, 이 수수께끼에 내 나름대로 답을 내린다면, 한마디로 "집중(集中)"이다.
개인이던 기업이던 일본인들의 일에 대한 엄청난 "집중"에는, 정말로 탐복할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고도의 정신과 행동의 "집중"이 있다. 그것도 DNA처럼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데에 대해 어떨 때는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가령,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주방에 일하는 나날이처럼 보이는 젊은 애들도 눈이 내려 재료가 배달이 안되면 집에 갈 생각도 않고 자기와 무관한 그 날의 고객을 위해 졸리는 잠을 쫓으며 기다리는 모습을 아르바이트하면서 지켜봤다.
*일본항공 (JAL)의 수석조종사 집에 한국어 과외로 갔는데, 그 집 화장실에서 치약 짜는 집게를 보았고, 광고 이면지로 한국어 공부를 하는 모습을 똑똑히 눈여겨봤다.
*40여 년을 동래 골목시장에서 옷 수선 가계를 하던 할아버지는 석간신문을 배달하러 들리는 보잘것없는 나를 보면, 돌리던 재봉틀을 멈추고 어김없이 무릎을 꿇고 정중히 인사하는 모습을 봤다.
*시간을 어길까 봐 할증 택시를 타고 그 약속 장소에 나타나니, 유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냐며 호랑이처럼 호통을 치던 민단 본부에서 일하던 재일교포가 있었다.
*16개나 복잡한 플랫폼이 있는 동경 JR 신주쿠역에서 노선을 몰라하는 나에게, 자기가 탈 전철이 오고 있는데도 다른 플랫폼까지 나를 직접 데려다주고 내가 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자기 행선 지행 전철을 타는 이름 모를 일본인이 있었다.
*비행기가 나리타 공항을 완전히 이륙할 때까지 지상 요원들이 일렬로 서서 자기 항공사를 이용해주는 고객을 향해 90도 각도로 절을 하고는 이륙하는 비행기에 손을 흔들며 떠나보내는 지상 요원들의 모습을 봤다.
*이른 새벽 요코하마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몸이 불편한 산책 나온 노인은 나에게 기다리라며 다시 자기 집에 가서 지도를 들고 나와 길을 가르쳐 줬다.
*신칸센으로 후쿠오카로 이동하는 객실에서 고객의 주문에 눈높이를 맞추고자 허리를 꾸부리며 음료수 주문을 받는 계약직 객실 승무원을 봤다.
*우리 돈으로 5천 원도 안 되는 라면 한 그릇을 아침마다 들리는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해 대를 이어 라면 국물 만들러 새벽 4시에 일어나 10평 정도의 가계를 향하는 대학을 졸업한 일본 친구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막 생산된 종이 한 장을 손으로 탁탁 치면서 그 종이에 어떤 성분이 얼마만큼 들어가 있는지 귀신같이 맞춰내는 어느 제지회사 회장의 자신의 업에 대한 치밀함이 귀에 아직도 생생하다.
나 역시 그들의 부정적이 모습을 목격 안 한건 아니지만, 이런 장식되지 않은 그들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들 속에서 나는 본받아야 할 그들만의 "집중"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것이 설령 직무나 돈과 연관이 있던 없던, 자신과 상관이 있던 없던, 주어진 환경에 묵묵히 순응하는 괴력의 "집중"을 발견했다.
돌이켜 보면, 옛날에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는 책이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 내용을 떠올리면 하도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오지만, 우리는 일본을 몰라도 진짜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나 중국은 반일(反日)만을 가르쳐야 할게 아니라, 지일(知日)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한국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 아닌 세계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주창하는 이유다. 그래서, 경쟁 상대의 귀한 장점을 최대한 찾아내서 우리가 본으로 삼아야 극일(克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병상에 있지만 언론에서 가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일본에 머물려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지만, 나는 이건희 회장이 왜 일본에 머무는지, 왜 그들을 만나는지,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나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우리가 넘어야 할 일본의 그 "집중"을 절대로 평가절하하질 않았다.
갓 태어난 아이는 저항력을 기르기 위해 아픈 주사를 맞는 것처럼 요즘의 탄핵 국면에 한국의 대기업들이 여러모로 곤경에 처해 있지만, 오히려 경영의 투명성,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전문화에 바탕을 둔 장기적 기업전략으로 미래 시장을 선도하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의 혁신 기업이 많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아래는 탐슨 로이터의 세계 100대 혁신기업 링크.
http://top100innovators.stateofinnovation.com/content/top-100-global-innovators-infograp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