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가지고 갈 것도 없는 인생
새해의 첫 주가 채 가기도 전에 오늘 플로리다에서 또 만성적인 총기사고 뉴스를 접하면서 어제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서 읽은 "척 피니(Chuck Fenney)"라는 85세 노인의 짧은 기사를 떠올려 본다.
내용인 즉, 그는 자신이 경영하는 세계적인 면세 전문점 DFS에서 엄청난 부를 일찍이 거머쥐자, 1982년부터 지금까지 35년간 약 10조 원에 가까운 전 재산을 세계 곳곳의 약 1,000여 개의 자선단체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에 따라 남몰래 기부를 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1997년 자신의 회사의 회계장부가 부득불 공개되는 바람에 기부내역이 세세히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항간에는 당시의 아름다운 그의 선행이 계기가 되어 미국의 1-2위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도 그들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 운동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직도 15불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비행기도 항상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닌다는 그를 취재하러 온 어느 기자가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기부를 할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죽을 때 결국 우리는 주머니 없는 바지를 입고 가지 않느냐......"라는 짧게 대답하고는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해진 다리를 절름거리며 그의 부인과 함께 허름한 식당을 향했다고 한다.
다음 달 20일은 트럼프 당선자가 대통령에 정식 취임해 미국의 새로운 4년을 이끌게 된다. 국가의 상량식에 해당하는 이 날의 대통령의 취임식에 낮에는 국내외 귀빈을 초대해 위싱턴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성대히 치러질 게고, 밤에는 축하 불꽃놀이와 화려한 취임 만찬 무도회가 열릴 것이다.
상량식 때 읽히는 상량문(上樑文)의 상단에는 용(龍) 자가, 그리고 하단에는 구(龜) 자가 쓰인다고 한다. 우리의 옛 선인들은 둘 다 물에서 살기 때문에 집이 화재로 소실되지 않기를 바람에서 이렇게 주술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는데, 왠지 하늘을 화려히 날아갈 용이 "도널드 트럼프" 같고, 차고 어두운 바닷속을 느리지만 묵묵히 지키는 거북이가 왠지 "척 피니"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왜일까?
그러고 보니, "동량(棟樑)"이란 우리의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생소한 한자어가 있다. 기둥과 들보를 아울러 부르는 말로, 제아무리 고급자재로 벽을 올렸다 하더라도 벽 속의 보이지 않는 기둥이 곧바로 서 있지 않고, 아무리 화려한 수정으로 만든 샹글리아가 천장에 매달려 있어도 그 속의 들보가 하중에도 튼튼히 버텨주지 않는다면 그런 집은 오랜 세월의 비바람과 풍파를 든든히 버틸 수가 없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작든 커든 유무형의 동량과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사회에 노출될 때, 그리고 그런 동량들을 본받으려는 잠재적 동량들이 많을 때 그 사회의 근간이 든든해지고 국가가 강건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거의 동시대를 살아온 같은 억만장자의 이 두 부자이지만, 왠지 취임식날 각국 주요 언론의 카메라 스포트를 받을 트럼프의 정면 모습보다는, 절름거리며 프런치 먹으려 허름한 식당을 향하는 피니의 뒷모습이 훨씬 더 아름다워 보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국민이지만, 청기와 넓게 깔린 대궐에서 위임받은 권력으로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법을 악용하는 위정자들보다, 반지하 방에 살더라도 양심과 법을 지키며 새벽녁에 눈 비비며 일터를 향하는 그저 평범한 서민들이 더 훌륭히 여겨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도 임대 아파트에 부인과 살고 있다는 척 피니.
자신의 금쪽같은 손자들을 두고서도 평생을 받쳐 거둬들인 그 막대한 부를 핏방울 하나 섞이지 않은 생면부지의 남들에게, 그것도 남몰래 기부하기란 더더욱 어려웠을 터인데, 다시 한번 인생 종착역을 향해가는 그의 아름다운 삶의 뒷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생의 마지막 기부를 마친 내용을 알리고자 한 어제 그 기사 말미에 이런 문장이 쓰여있다.
"Flinging money out the window or writing checks willy-nilly was not Mr. Feeney’s way." (돈을 창밖으로 던지거나 수표를 닥치는 대로 난발하는 것은 피니 씨 스타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