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인 입양아의 이야기
매년 10월 말 할로윈이 돌아오면 미국 초등학생 특히 저학년 학생에게는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축제다. 먼저 학교에서 Costume(특이한 복장)을 하고 퍼레이트를 할 뿐만 아니라, 학교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서는 해가 완전히 지기 전까지 그 복장을 하고 부모 손을 잡고, 이웃을 한집 한집 돌며 사탕, 캔디, 초콜릿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 아이들이 많은 동래는 아애, 캔디박스를 집 대문 앞에 두고 마음껏 집어서 가게 놔둔다. 간혹 철없는 청소년들이나 어른들도 괴상한 복장을 하고 애들처럼 돌기도 하고,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밤늦게 이상한 복장으로 돌아다녀 총기 사고 등 불길한 사고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나름 망가져도 귀엽게 봐주는 때가 바로 오늘 할로윈이다.
딸 예지가 5살 때쯤인가, 나도 어린 딸을 데리고 주황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호박 통을 들고 집집마다 벨을 눌려 인사를 하며 캔디를 얻는데, 우리 동내 코너 집에 해군 함대장을 하다 은퇴한 할아버지 집의 벨을 누르자, 딸을 보더니만 반색을 하며 잠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웃이지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호의는 베풀기 어렵지만, 그는 부엌에서 일하는 할머니까지 불러가며 나와 딸을 반기는 것이었다.
거실로 우리를 안내한 그 두 부부는 이내 벽난로 위에 깔끔한 프레임으로 장식한 커다란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시집 간 자기 딸이라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부부가 다 백인인데도 딸은 동안 애라 조심스레 물어보려고 하니, 먼저 자신이 옛날에 한국에서 입양해 왔다며 당시 시집가 따로 살던 그 딸의 성장 과정을 여느 집 부모처럼 조목조목 자랑스레 설명해 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내 딸을 보자 자신의 양딸의 어렸을 적 모습이 떠올라 반겼으리라 직감할 수 있었다.
아무튼 집안까지 안내하며 자신의 가정사를 나눴던 그 마음 따뜻한 노부부는, 그 이듬해 세금과 물가가 비싼 이곳 뉴저지의 집을 처분하고 날씨 좋은 플로리다로 이사를 간 후, 연락이 끊겼지만,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이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면 딸 가족의 방문을 기다리며 음식 준비를 할 그때의 선한 얼굴을 이때면 가끔씩 떠올리곤 한다.
사정이야 어떻든 한국에서 친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그 딸. 한때 여론에서 아이 수출한다고 부정적으로 떠들썩 대며 나라 부끄러운 일이라고는 보도했었고, 어떻게 보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런 누구 하나 돌볼 이 없는 그 딸이, 여기에서 다른 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잘 성장해 줘서 그 노부부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기쁨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면, 결과론적으로 생각하면 꼭 삐뚤게 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할러윈데이 때 본 그녀. 그래도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혈육에 대한 동경과 자기를 낳아 준 부모가 누구인지 찾고자 하는 그 인간 본래의 마음은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양부모 집에서 자라오면서 표현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부모와 다른 모습이라 입양조차 숨길 수 없었을 만큼 무리수의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을 것이라 어림잡아 짐작하면 더더욱...
한국에도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이니, 핑크족(Poor Income, No Kids)이니 하며 자기 자식조차 낳아 키우기 싫어하는 또는 키울 수 없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데, 자기 배 앓아 나은 자식도 아닌데다, 피부색도 생김새도 틀린 어린 아기를 다른 나라에서 데려와 키우는 부모들을 가끔씩 슈퍼나 몰에서 보노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이나 부처의 자비는 교회나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일상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