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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차연 Mar 29. 2017

12 밤과 곶자왈


8,28

태풍이 지나가고 며칠 만에 하늘이 맑아서 아침나절에 모아놨던 빨래를 옥상에 널고, 밤에는 별을 보러 목장으로 향했다. 제주는 비가 잦은 데다 우리 집은 바닷가 마을에 있어서 해무가 짙은 날은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옆에 앉아 졸면서 성이시돌 목장까지 차로 16킬로 정도를 달린다. 지난번엔 구름이 잔뜩 껴서 별 관람에 실패해 조마조마한 마음 인다. 

목장에 가까워지면 벌써 푸른 공기로 가득 찬 냄새가 코를 찌른다. 늦은 밤 인적 없는 목장은 깜깜한데 풀냄새와 동물들의 소리와 달과 별만 있다. 잠든 소와 말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우리는 조용히 불을 끄고 고개를 든다. 

까만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숨죽인 체 제자리를 지키고 반짝반짝. 

아주 잠깐 별을 보고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지만, 마음만은 촘촘한 별들로 가득한 기분이다. 

이런 작은 순간순간을 위해 여기서 살아가고 있다. 


9,24

요새 반딧불을 보러 매일 집 근처 일주도로를 따라 밤 산책을 한다. 

서쪽 바다에 반딧불이 자주 보인다더니 집 앞 일주도로에만 나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조용조용 서로의 발소리만 들으며 걷다 보면 풀숲에서 반딧불들이 빛을 내며 날아다닌다. 

반딧불을 눈으로 쫓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산책길.

달과 별, 반딧불, 모든 반짝이는 것들의 밤이었다. 


10,14

엄마는 늦은 밤 홀로 마을 산책을 다녀오더니 마당에 나와 있는 내게 방금 휴대폰으로 녹음해 온 파도 소리를 들려주었다. 재잘대는 여자 아이들의 목소리와 방파제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섞여 웅웅 시끄럽지만, 소리만으로 엄마의 밤 산책길 풍경이 우리 둘 사이에 두둥실 떠오른다.





바위틈으로 뿌리가 드러난 나무와 아무렇게나 자라난 풀들과 그곳의 습한 공기, 연약하면서도 비할 수 없이 단단한 생명이 느껴져 신비로우면서도 겁이 난다. 

비를 데리고 바다 저 멀리부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곶자왈을 통과하면서 파도소리가 났다. 아득히 부딪히고 부서지는 파도 소리 사이로 조용조용 걸으며 바람에 흐트러지듯 날아가 버리는 이야기들을 했다.




가까운 환상 곶자왈에 다녀왔다. 상대적으로 짧은 코스였지만 무엇보다 해설이 좋았다. 

녹취해온 것을 좀 풀고 곶자왈에 관한 책을 찾아 읽어보려 한다. 바위틈을 뚫고 모든 것을 부수며 뿌리내린 나무와 아무렇게나 자란 숲의 한가운데 서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느낌이다. 산과 숲을 좋아하지만 곶자왈은 특별한 기분이 든다. 곶자왈에 대해 그리고 쓰고 싶다는 마음이 차곡히 쌓이고 있다. 조급하지 않게 그런 마음이 가득 찰 때 자연스럽게 작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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