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내 생애 최고의 순간
친정은 세 번 이사했다. 첫 번째 집은 시장 구획의 북쪽 모서리에 위치한 상가 2층이었다. 교차로 코너에 위치한 부채꼴 모양의 건물이었다. 1층에 부동산과 술집이 있고, 계단을 두 번 꺾어 올라가 오른쪽 나무문을 열면 사진관이었다. 가게 문을 열면 보이는 맞은편 파란색 가리개 너머에 방 두 개와 부엌 공간이 내가 기억하는 첫 집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3등분으로 나누어 사진관, 집, 마당이었다. 마당 삼면이 이웃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콧잔등이 까맣고, 등과 꼬리가 거무스름한 큰 개와 온몸이 누런 작은 개를 키웠다. 큰 개는 마당의 수도와 화장실 옆 공간에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철판으로 지붕을 얹힌 집에서 살았고, 작은 개는 내 방 창문 옆의 개집에서 키웠다. 고등학교 때 빌라 1층으로 이사했고, 다시 이사를 가지 않았다.
두 번째 집은 시장 출입구에서 4차선 횡단보도를 건너 슈퍼와 지물포, 철물점, 미용실, 떡볶이 가게, 구멍가게가 양쪽에 있는 대로를 지나면 보이는 놀이터를 오른쪽으로 끼고 꺾어 한 블록을 지나면 있었다. 사진관이 있기에 참 뜬금없는 위치였다. 가게와 집을 분리해서 꾸릴 만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집에서 엄마와 함께 시장에 자주 갔다. 연보라색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든 엄마와 시장을 가면 튀김 도넛을 먹을 수 있었다.
4차선 도로를 건너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이 과일 노점상, 슈퍼, 오른쪽이 야채 가게와 빵집이었다. 도넛, 찹쌀빵, 단팥빵, 꽈배기 등 튀김빵이 수북이 쌓인 가게 앞에 서면 가슴이 뛰었다. 팥소가 들어가지 않은 꽈배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팥빵과 찹쌀도넛 중에서 눈을 굴렸다. 찹쌀도넛은 손에 쥐는 순간 부피가 줄어들어 공갈빵처럼 느껴졌지만, 쫀득해서 조금씩 베어 먹으면 오래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팥 도넛은 찹쌀도넛보다 훨씬 컸다. 갓 튀겨져 나온 팥 도넛은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더 커 보였다. 손에 들고 먹다 팥소가 땅에 떨어지면 큰일이었다. 운다고 빵이 또 생기진 않았다. 팥 도넛의 사이즈는 나를 늘 고민하게 만들었다.
눈높이에 펼쳐진 비스듬한 빵 진열대 위에 서서 어떤 빵을 고를지 고민하는 사이 엄마는 좌판에서 장 볼 물건을 골랐다. 빵을 고르고 주변에 있을 엄마를 찾아 불렀고, 엄마가 값을 치르면 튀김웍에서 빵을 튀기던 아저씨가 종이에 빵을 감싸 건네주었다. 갓 튀긴 갈색 튀김빵을 손에 들고 시장 골목을 누볐다.
엄마는 내 머리만한 크기의 찐빵을 자주 만들었다. 팥소나 설탕이 손톱만큼 들어간 빵이 맛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갓 쪄낸 앙꼬 없는 밀가루 빵을 설탕에 찍어 먹다 보면, 금세 없어져버렸다. 없는 형편에 한창 크는 아이들 간식과 밥을 만들어야 했던 엄마가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시장의 튀김빵은 장을 볼 때 따라 나갈 때만 먹을 수 있었다. 딱 하나. 갓 튀겨낸 소가 듬뿍 들어간 튀김빵은 엄마의 대형 찐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심부름을 하고 받은 100원, 200원으로 시장 빵을 사 먹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빵 가격도 사이즈 대비 비쌌으리라.
얼마 전 예전에 살았던 두 집을 찾아가 보니 상가 2층에 있던 집은 생활 잡화를 파는 다이소로, 두 번째 집은 가정집으로 변해있었다. 시장 복도에 좌판이 즐비하고, 갈림길과 사람이 너무 많아 엄마를 놓칠까 봐 엄마 뒤꽁무니를 쫓아다녀야 했던 시장은 많이 휑해 보였다. 정비사업과 천정 작업을 한 시장의 모습은 한결 깔끔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게는 없었다. 보행 보조기가 없으면 걷지 못하는 엄마가 시장에 가보고 싶다고 말해 함께 간 적이 있다. 외손주의 손을 잡고 어느 가게 앞에서는 한동안 서 있기도 하고, 여기는 없어졌네라는 말을 하며 시장 골목을 걸었다. 튀김빵이 있던 가게 앞에서 “엄마가 여기에 있던 빵집에서 튀김빵 사줬는데. 엄마 기억해?”라고 물으니 “니가 빵을 잘 먹었지.”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밀가루를 너무 많이 먹여서 내가 하체비만이 됐다고 장난스레 타박하니 “밀가루 먹지 마, 안 좋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보다 엄청 퉁퉁하고 컸던 엄마가 내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게 작아지고,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살이 빠졌다. 엄마와 추억의 장소를 다닐 수 있는 시간도, 여유도 생겼는데, 엄마가 요양원에 있다. 며칠 전, 조금 전에 뭘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가 전화기 너머의 내 얼굴을 보고 “아이고, 우리 딸~”하는 소리를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듣고 싶다. 튀김빵 맛집을 많이 알아냈는데, 이제 빵은 싫다고 먹지 않는 엄마 앞에서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하며 두세 개를 먹어치우고 싶다. 엄마가 “아이고, 어릴 때도 그렇게 좋아하더니 아직도 잘 먹네.”라는 소리를 하면 내가 엄마를 타박하고, 엄마는 피식 웃는 시간이 또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