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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늠 Jun 25. 2022

그녀의 산책

2021년 9월 엄마와의 산책

일요일 아침, 엄마가 산책하러 나가자고 한다. 엄마는 걷는 걸 좋아한다. 새벽 미사에 다녀오고 아침 산책, 남편 밥을 챙기고 다시 외출하여 도시 곳곳을 걸어 다녔다. 보행 보조기 없이 걷는 게 힘들어진 후에도 엄마의 외출은 계속되었다.


친정 옆에 1910년대에 개교한 고등학교가 있다. 식민지 시대에 한국인의 영농 기술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학교로, 부지가 52.000평이 넘는다. 가파른 정문을 올라가면 정원과 학교가 보이고, 왼쪽에 운동장이 있다. 학교 건물들 뒤에 온실, 묘목을 심은 과수 공간, 논, 밭, 지역주민을 위한 정원이 구획 별로 나뉘어 있다. 비스듬히 기운 삼각형 꼴 구역을 학교가 90% 정도 차지하고, 학교 오른쪽이 상가와 주택가이다. 친정은 학교 교문에서 5분 거리다. 학교 정문을 올라가 산책하러 다니던 엄마가 경사가 급한 길을 오를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친정집이 위치한 구획을 빙 둘러 걷는 코스로 루트를 바꾸었다.


 작년, 여든다섯이었던 엄마가 보행기를 끌고 학교 후문 쪽 담을 따라 걷다 넘어졌다. 학교 후문 앞은 6차선 도로로, 산책하는 사람 외에 통행이 드문 곳이다. 무릎 수술 이후로 무릎을 굽힐 수 없는 엄마는 혼자 일어날 수 없다. 차로를 달리던 차에서 누군가 길가에 쓰러져있는 엄마를 발견했고, 차를 세운 후 내려 엄마를 일으켜 세워주었다고 한다. 나중에 얘기를 들은 오빠가 위치추적기 없이 외출하지 못하게 했다. 자식이 보기에 기겁한 순간을 겪고도 엄마의 외출 의지는 가라앉지 않았다. 친정집 주변은 구도심인데 도보가 고르지 않다. 보도블록이 망가져 파이거나 튀어나온 곳에 보행기가 걸리면 걸음이 늦춰진다. 보행 능력이 나날이 떨어지고, 매일 오던 요양보호사가 엄마의 몇 시간 산책길을 함께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엄마의 운신 폭은 현저히 좁아졌다.


 그즈음 주말에 친정을 자주 갔다. 무심했던 딸의 잦은 친정 방문에 엄마는 딸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나에게 친정은 마음을 기댈 곳이 아니었는데, 엄마에게 친정은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었나 보다. 좋은 일은 부정 타니 자랑하지 말고, 나쁜 일은 남사스러우니 입 밖에 꺼내지 말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엄마는 남에 대한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식도 남에 해당하여 형제의 일을 내게 전하지 않았다. 엄마의 이야기는 오직 남편에 대한 것이었다. 분노와 미움의 대상이었던 남편만이 엄마에게는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나 보다.


 토요일 저녁 친정에 도착해 창고로 쓰이는 내 방이었던 곳에서 자고 일어난 내게 엄마가 산책 이야기를 꺼냈다. 일요일 오전에 엄마는 늘 주말 미사를 갔다. 코로나로 종교활동도 하지 못하고 답답했을 엄마와 기분 좋게 이른 산책을 하러 나갔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지나 학교 후문에 도착했다. 공휴일이어서 후문이 닫혀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쪽문으로 엄마가 학교로 들어갔다. 쪽문 안쪽으로 시골길처럼 조경이 잘 된 논밭이 펼쳐졌다. 학교 정문과 운동장까지만 가보았지, 뒤편으로 이런 공간이 있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감탄하며 주변을 감상했다. 엄마는 늘 걷던 길이었는지 매끈한 학교 사잇길을 보행기를 밀며 기운차게 걸었다. 천천히 학교 뒤 부지를 한 바퀴 돈 엄마가 한 바퀴 더 돌자고 했다. 보행기를 밀며 걷기에 편한 길이었고, 오래간만에 나왔을 엄마의 별것 아닌 부탁인 데다, 처음 본 시골스러운 풍경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나는 엄마의 느린 산책을 따라 걸었다. 엄마가 산책길에 늘 만났을 이분 저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한 바퀴를 더 돈 엄마는 집에 가고 싶지 않다며 네 바퀴를 더 돌았고, 집에서 나온 지 세 시간이 흘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머니 이제 집에 가자고 말해 우리는 학교 부지 산책을 마치고 나왔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친정집에는 네 대의 CCTV가 있다. 두 분 다 거동이 불편해진 이후로 설치했는데, 아버지 방을 비추는 CCTV가 방문에 가려 있었다. 잠을 잘 때 방문을 닫는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갈 때 방문을 연다. 엄마와 7시쯤 나왔지만 10시가 다 되었으니 아버지가 깼을 것 같아 휴대폰 속 CCTV 앱을 수시로 확인했다. 아버지도 걱정이었지만 오랜만에 너무 긴 시간 걸은 엄마가 염려되었다.


 엄마가 여기에서 넘어졌다고 담장 길 어딘가를 걸으며 당시 상황을 얘기했고, 나는 조심해서 걸으라며 엄마가 귓등으로 넘겨버릴 잔소리를 했다. 학교 담장이 모두 끝났다. 왼쪽으로 돌아 100미터만 가면 집인데, 엄마는 보행기를 돌리지 않고 직진했다. 보도가 아닌 차도로. 집 앞의 2차선을 무단 횡단한 엄마는 4차선 도로를 역주행하여 걸었다. 당황한 내가 화를 내며 빨리 보도로 올라오라고 잡아끌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를 뿌리치는 힘이 셌다. 차가 온다고, 엄마 왜 이러냐고 소리치자 엄마가 “놔둬. 죽어버리게.”라며 계속 걸었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도로를 역주행하는 엄마를 보며 혀를 찼다. 혀를 차든 말든 상관없었다. 놔두라는 엄마에게 죽을 거면 혼자 죽으라고, 왜 엄한 사람 인생까지 망치냐며, 엄마를 친 차는 뭐가 되냐고 소리를 질러대는 내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엄마가 도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가 아니었고, 일요일 아침이어서인지 엄마는 무사히 늘 가던 슈퍼 앞 도로까지 도착했다. 슈퍼 앞은 주도로 안에 위치한 2차선 도로로, 보행자길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엄마에 대한 짜증과 화로 왜 내가 내려왔을까 후회하며 엄마를 따라갔다. 카페, 우체국, 약국, 금은방, 휴대폰 판매장을 지나 건강기능식품을 파는 건물에 도착했다. 1차선의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 음식점, 빵집을 지나면 친정집 앞 2차로였다.


 엄마는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 도로로 보행기를 밀고 나갔다. 그곳은 오거리였다. 4차선 대로 세 개와 2차선 도로 두 개가 만나는 교차로 위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

 차량 통행량이 많은 교차로의 신호는 빨간색이었다. 파란색으로 바뀌어도 차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엄마가 보행 보조기에 기대 교차로 왼쪽 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 교차로로 가지 않았다. 보도에 서서 오열하며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엄마가 정말로 차에 치인다면 나는 자살방조죄가 되는 걸까, 교통방해죄가 되는 걸까. 잠시 도로 위에 서 있던 엄마가 집 쪽으로 방향을 틀어 도보로 올라섰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정말 죽고 싶었던 걸까. 울퉁불퉁 도보로 보행기를 밀기 불편했을 뿐이었을까. 죽으면 죽는 거지 아픈 데 투성인데 왜 자꾸 깨는지, 아침이 힘들다는 엄마는 네 시간의 산책 후 아침을 먹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 오수에 빠졌다. 남의 이목을 그렇게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엄마가 거침없이 집 주변을 활보하며 다니는 게 이번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린 걸음으로 차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도로를 건너는 노인들을 자주 본다. 30대의 나는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의 흐름을 늦추는 그들이 불편하고 화가 치밀었다. 요 몇 달, 휠체어에 앉아, 보행 보조기를 끌고 걷는 어르신들, 정자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는 할머니, 낡은 자전거에 구부정하게 앉아 페달을 밟는 할아버지를 보면 울컥 눈물이 나고 마음이 짠하다. 불편해서 피했던 그들도 변해가는 몸 상태가 낯설고 고단할 것이다. 그들이 무사히 길을 건너길. 그래도 위험한 무단횡단만은 하지 않기를. 아무 탈없이 집에 돌아가 자식의 안부전화를 받고, TV를 보다 낮잠에 빠져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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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장소'를 주제로 글을 썼다. 여행 후 기억에 남는 장소도 많았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엄마가 서 있던 교차로가 떠올랐다. '노쇠하다'라는 말을 엄마를 보며 절실히 느낀다. 마음이 아프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싶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내가 아는 건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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