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 잡생각이라는 말이 있다. 오만은 ‘온갖’이라는 의미를 가진 경상도 방언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오만(五萬)’이 뜻하는 한자어대로 오만 개의 생각을 뜻하기도 한다. 숫자 오만에 기대어 하루 24시간을 오만으로 나누어 보았다. 2초에 한 가지의 생각을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달리는 차창에서 바라보는 풍경처럼 휙휙 지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잡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생각을 종류별로 묶어보니 9할이 사람 생각이다. 주변의 지인을 비롯하여, 악연으로 헤어진 이들도 수시로 떠오른다. 일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에게 나를 알릴 수 있나를 궁리해야 하는 것이니 결국은 사람 생각이다. 이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는 순간에 퍼뜩 떠올랐다 사라기기도 한다. 혈연관계로 맺어진 이와의 마지막은 먼 과거로 치부하기에는 참 생생하게 반복 재생된다.
잡초처럼 솟아나는 잡생각에 생각의 흐름을 맡기고 있다 보면 내 기분은 순식간에 땅굴 속으로 꺼지고 만다. 그러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리려고 애쓴다. 바닥으로 내리꽂는 생각의 줄기를 차단하고 다소나마 생산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는 『시냅스와 자아』에서 우리의 사고와 감정, 활동, 그리고 기억과 상상은 모두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반응의 결과라고 말한다.”(몰입』, 황농문, <몸이 희로애락을 결정한다> 중) 뇌의 뉴런은 수백조 개의 시냅스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뇌의 변연계 측두핵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뇌간의 A10 신경에 영향을 끼쳐 쾌감과 각성을 일으킨다. 좋은 생각이든 잡생각이든 신경전달물질은 계속 발생되고, 학습과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함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나를 이루는 시냅스의 배선이 바뀌고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진다.
내 시냅스 배선이 정갈하게 배선되길 바라며 남들도 흔히 하는 생각 정리 방법을 따라 해보았다. 흔히들 추천하는 명상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일단 가부좌를 틀고 앉자있자니 무릎이 너무 아팠고, 눈을 감고 있으면 잠이 왔다. 명상보다는 걷는 게 더 나와 맞았다. 한때 오디오북에 푹 빠져서 책을 들으며 두세 시간을 거뜬히 걷기도 했는데, 머리를 울리는 오디오 소리 외에도 다른 생각이 계속 끼어든다는 걸 깨달은 순간, 이어폰을 빼고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며 걸었다. 요즈음 온 정신을 기울여 열중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글이다. 매달 한 꼭지 분량의 글쓰기. 지금 쓰는 이 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2023년 10월 한 달, 어떤 글을 쓸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온갖 잡생각에 쓸려다니다 나는 왜 몰입하지 못하는가에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이제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인연에 왜 계속 매달려있는지 자책했다.
얼마 전 노래 하나를 들었다. 낮게 읊조리는 몽환적인 음색을 지닌 선우정아의 노래 “그러려니”였다. 노래를 들으며 알았다. 명랑 시트콤으로 끝나기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이게 끝인가 싶게 끝나 여운이 남는 엔딩을 가진 연속극이길 바랐는데, 막장 일일드라마처럼 끝나버린 관계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진심을 말이다. 그럼에도 난 그들이 잘 살길 바라는구나. 아프지 말고 잘 살기를 원하는구나.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가 할 생각은 아닌데?라는 헛웃음이 나왔다. 잡생각에 몰입하다 그 생각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어 허망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읽어서 다행인가 싶다.
잡생각과 명상, 몰입에 대해 글을 써보자고 한 달 동안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는데 도달한 결론이 내 자의로 걷어내기에는 잡념이 너무 막강하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러려니’ 할 수밖에.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잘 지내니. 문득 떠오른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겠지.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쓸쓸히 울음. 그러려니.”(선우정아 <그러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