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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Aug 09. 2022

역류하는 생(生)과 감각

아직도 나는 자기 자신을 포기할 줄 알지만

1

최근에는 잘 읽지 않고 쓰지도 않는다. 2학기에 동아리 원고로 낼 소설을 만 자 정도 미리 써뒀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갈아엎을 예정이다.
내 정신세계를 지극히 잘 표현한 글 같은데 사람들이 읽고 도망갈까 봐 나름 걱정이 된다. 고심 끝에 한 명에게 보여주니 일반인과 정신세계가 아예 다른 것 같다고 평을 들려줬다. 시각 자체가 아예 다른 것 같다고.

나는 잘 모르겠다. 특이하다는 것이 언제나 특별한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일반인과 다르다는 게 글을 쓰는 데 특이점이 되는 게 아니라 병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2
나도 가끔 내가 이성을 놓으면 미칠까 봐 좀 두렵다. 최대한 제정신으로 살아가려 하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다지 간절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중학생 때 아주 많이 간절했다. 물론 고등학교 즈음부터는 자기 포기의 심정을 알게 됐다. 나를 포기하고 얻는 자유와 만족은 세상에서 가장 허탈한 것이다. 성장의 가능성과 나아간다는 의미 자체를 버리고 나조차도 나를 버린 뒤 얻는 안도감은 예정된 죽음과 같다.
매일 죽음을 바라보며 살기 때문이다.

젊은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3
요새는 맥주를 자주 마신다. 자기 전에 오백 한 캔에서 두 캔을 마시고 자니 잠을 제법 푹 잔다. 물론 그렇다고 의무감에 마시는 건 아니다. 그냥 음료수 같아서 마시는 건데 종종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그 오해도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의 표현이기에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에 내가 먼저 걱정을 안 끼쳐야겠지만.
지나고 나서 하는 후회는 아무 쓸모도 없다.
그리고 나는 후회를 잊었다. 후회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후회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감정을 묻어두는 데 도가 텄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일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고 넘긴다. 가끔은 내가 인공지능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최우선의 목표 아래 비효율적인 감정을 모두 삭제하는 것만 같다. 꼭 자동화된 것처럼.


4
누군가는 삶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삶을 정의하며 목적을 찾아 나선다. 물론 곧바로 찾아오는 것은 목적의식이 아니라 허무다.
나는 바라보기만 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안경을 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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