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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민 Jun 21. 2024

생각하게 만드는 재화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 그리고 서울국제도서전

나는 2024년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에 참가한다. 올해 도서전 주제어는 ‘후이늠’이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후이늠’ 종족에는 거짓말, 불신, 전쟁이 존재하지 않다고 한다. 도서전 측은 독자들이 이번 주제어 후이늠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세계의 비참’을 줄이고 ‘미래의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고 한다. 매년 도서전에서 던지는 화두에는 깊은 고민이 따른다. 책은 생각하게 만드는 재화다. 도서전은 책들이 전시되고 거래되는 장소다.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 링크




올해로 도서전 참가 네 번째다. 그동안에는 ‘해변의 카카카’ 출판사 명으로 참가했으나, 이번에는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이하 우소방) 팀명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지방소멸 아카이빙 시리즈의 이름에서 독립 출판사로 변모하는 과정 중에 참가하게 되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우소방은 21년부터 24년까지 4년이라는 기간의 궤적을 묘하게 도서전과 공유한다.


21년은 코로나로 국내 각종 문화 예술 행사가 취소 및 연기되는 난리통이었다. 도서전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텐데,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그 규모를 축소하면서 열렸다. 그때가 도서전과의 첫 만남이었다. 규모가 줄었다고는 했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축제였다. 좌충우돌하며 이제 막 세상에 선보인 우소방 1, 2호를 들고 본격적으로는 오프라인에서 독자를 만나는 첫자리였다. 당시에 우리가 만든 책이 사람들에게 읽히는 모습을 보면서 동료들과 놀라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판매도 제법 됐지만 아무래도 지방에서 올라오다 보니 참가비, 숙박비 등 각종 비용으로 돈이 많이 남지는 않았다. 작은 독립 출판사로서는 참가비가 부담되었는데, 참가를 하고 나니 투자할 만한 비용이었다고 생각했다. 


도서전 참가 결정에서 중요한 배경은 우리 활동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책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는 걸까,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오프라인 홍보를 해본 경험이 없었는데 판매는 될까, 현장은 어떤 분위기 일까 등등 우리가 만들어낸 책이 사람들에게 닿는 그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었다. 도서전이 끝나고, 민망할 정도의 작디작은 지방의 독립출판사이지만 거금을 들여서 도서전에 참가한 것에 너무도 만족스러워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이후 몇 년 간 계속 우소방 시리즈를 고민하고 만들게 했던 동력이 돼 주었다.


23년 도서전 때는 흥미롭게도 김건희 여사가 현장에 방문했다. 작은 우리 부스를 지나가면서 책을 구입하려고 한다는 관계자(?)의 말이 있었는데, 나로서는 반가운 말이었다. 정치적 맥락에서의 해석보다는 우소방이 팔리겠구나라는 사실이 중요했으니까. 책을 만들고 파는 입장에서는 독자가 누구이건 중요한 사실은 아니다. 누군가가 읽어줬으면, 읽고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크니까. 물론 우소방은 지방소멸을 다루는 책이고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공직자나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읽으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다른 목적도 이뤘다고 볼 수 있겠다. 김건희 여사는 우소방을 읽었을까. 읽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이렇듯 우소방은 서울국제도서전 참가를 시작으로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 나 역시 21년에는 우소방 1, 2호를 들고, 22년에는 3호까지, 23년에는 4호까지 들고서 자리를 지켰다. 이번 24년 도서전에서도 우소방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참가의 의미가 남다른 것은 앞서 말했지만,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 이름으로 참가한다는 사실이다. 매거진 이름에서 이제는 독립 출판 브랜드로 자리 잡기 위한 시도를 해본다. 또 다른 모습으로 나아가는 우소방이 서울국제도서전과 함께 할 시간이 기대된다. 그 과정에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교류하고 거기다 거래까지 된다면 더욱 즐겁지 않을까.




※ 이 글은 독립 출판사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thewaywesomyeol)의 프로젝트 <하작가의 서류뭉치>와 연계하여 연재하는 에세이입니다. 

※ <하작가의 서류뭉치>는 매월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주문한 독자에게 우편으로 발송하는 단편소설 직거래 프로젝트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서류뭉치' 주문 및 작품 목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하작가의 서류뭉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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