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야 Feb 16. 2018

나의 이야기

나의이야기 

새해 첫날, 우리 설날 아침부터 늦잠이다. 그래도 해뜨면 눈 뜨고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야지. 오늘은 설날이니까 다른 건 못해도 떡국 한 그릇씩 먹어야지. 나이 먹기 싫지만, 떡국마저 안 먹으면 너무 헛 할거 같아서 쇠고기와 손두부로 기미를 만들고 멸치다시국물 끓여서 떡국떡을 풍덩풍덩 넣었다. 

아들이 아침부터 내게 두 팔을 쩍 벌려 커다란 덩치로 다가온다. 순간 깜짝 놀란 나는 “너는 이제 내 아들이 아니라 딴 여자의 남자가 되었으니, 우리 거리를 두면 좋겠어”하자. 아들은 자신은 여전히 엄마의 아기라고 한다. 징그럽게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 아기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꼴이 우습긴 하지만, 나는 아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제 넌 내 아들이 아니란다. 난 너를 낳아주었지만, 너의 엄마로만 살지는 않았단다. 

그런데 아들에게 잔소리가 된 당부를 했다. 아들, 여자문제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계는 깔끔하게 잘 정리했으면 좋겠고, 연애는 실컷 하되, 결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럴려면 섣부른 행동을 절제할 줄 알면 좋겠다. 평생 족쇄가 채워져 사는 것은 너도, 상대편도 행복할 수 없을테니까. 너는 자유롭게 살아라. 너의 모자란 행동에 누군가의 인생이 후회로 남지 않길바란다. 끝으로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임에 늘 신경쓰길. 누구보다 여성을 존중해주길 바란다. 

아들은 이미 족쇄가 채워졌다고 이야기한다. 여친은 생일선물로 운동화를 두켤레나 사줬고, 과 꺼플이라 쉽게 헤어지지도 못할 거 같다고. 단디 잡혔구나. 안됐다. 그래도 군대다녀오면 반전이 있을지도 모르니, 좀 더 시간을 두고보자. 

사랑일까? 그건 누구도 모를 일일테니까.

밥상은 떡국과 김치와 먹지도 않고, 손도 대지 않지만, 장식같은 몇 가지 반찬이 올려져있고, 밥은 찬밥이었다. 

아이들에게 다른 집처럼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리지 않는다고 부러워하지 말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나의 변명을 아주 경건하게 했다. 스물두살의 세아이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들과 굶주렸던 가난한 사람을 돌볼 수 없는 사회에서 나만 배부르게 잘 먹는것도 미안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밥상에 불만은 없다고 당당하게 내게 말해주었다. 떡국을 아주 맛있게 잘 먹는다. 내가 음식솜씨가 완전 꽝은 아닌 듯 하다.  

우리집 며느리는 세상에서 젤로 팔자 좋은 며느리가 될거다. 라고 생각했다. 명절이나 기념일같은 거 챙기지도 않을거고, 형식과 격식같은 거 차리지도 않을거다. 너희가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거나, 삶을 꾸리게 되면 집을 찾지 말고, 떠나거라. 어디든 가고싶은 곳으로. 가족은 정말 보고싶고, 그리워질 때 그럴 때 문득 찾아오고, 그리움이 충족되면 떠나거라. 

나는 그럴거다. 보고싶어질 때, 그리워질 때 그때, 너희를 찾을거다. 그럴 때 맘껏 보고, 채울거다. 지금은 너희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건 없을거다. 다만, 경제적인 지원, 너희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되어주는 것. 그것말고는 너희는 모든 것을 너희 스스로 잘 하고 있으니    

밥을 먹고 각자 다 갈길을 떠났다. 오늘은 나만 집에 남겨졌다. 나는 무김치를 담을 준비를 하고 있다. 김장을 하면서 공간이 부족해서 무김치를 담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한다. 

내가 김치를 담는다는 건 늘 자랑스럽다. 살림을 잘한다기보다 할 줄 아는게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내가 담은 김치를 먹고 아이들이 자란다는 자부심. 이다음 더 나이를 먹어 늙은 할매가 되었을 때 내 손으로 김치는 담아줄 수 있을거 같아서 다행스럽다. 

2018년 2월 16일 무술년 새해에

매거진의 이전글 현수막이 펄럭이면 평화도 나부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