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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an 16. 2017

현수막이 펄럭이면 평화도 나부낀다.

15개의 별고을 촛불이야기     

이글은 성주의 글쓰기 모임인 ‘다정(多情)’ 회원들이 성주의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소감을 쓴 것입니다. 11월 21일 현재 성주의 촛불은 132일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시작된 촛불의 광장에는 이제 난로가 등장했습니다. 난로 주위에는 할매들의 삼삼오오 모여, 시린 발들을 녹이며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글쓰기 실력은 부족하지만 마음을 담았습니다. 성주의 촛불이야기를 <삶창>의 독자 분들께 전합니다.    

현수막이 펄럭이면 평화도 나부낀다

염채언                                                   


사드 배치 최적지로 성주가 발표나자 마자 성주군은 신속하게 국방부의 일방적인 발표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여러 방법을 동원해 표현했다. 대규모 집회, 혈서, 국방부 항의방문, 삭발, 방송 출연, 촛불 문화제 등. 그 중 하나가 현수막이다. 성주에 현수막 달 장소가 저렇게 많았나 싶게 수천 개의 현수막이 곳곳에 달리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디자인과 다양한 문구들. 아마도 역사 이래 성주에 그렇게 많은 현수막이 달리긴 처음이었을 거다.

사드 배치 발표 초기 현수막 문구들을 보면 ‘성주군 사드 배치 결사반대’를 주장하는 문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사드라는 무기가 우리나라 국방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드의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사람은 물론 키우는 동물들에게 위험하다는 것과 사드 때문에 참외 판매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이 군민들의 우려였다. 게다가 땅값이 떨어지고 성주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이사 가는 사람들이 생기는 등 군민들의 삶의 질을 나빠지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들은 다소 이기적이었다. 아마 어느 지역이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좀 다른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붙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사드 배치 최적지는 없다!” “사드 대신 남북대화!” “사드 가고 평화 오라!” 현수막의 문구가 바뀐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군민들의 사드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인식의 변화와 확장이다. 군민들의 소통의 공간이 되어 새벽까지 열띤 의견들이 오가던 카톡방과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하루도 빠짐없이 열린 촛불 문화제를 통해 사드는 북핵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이 필리핀과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에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미사일 방어체계를 확립해서 중국과 북을 감시하고 한국에 주둔한 미군과 미국 본토를 지키기 위해 배치하려는 것이 사드 배치의 본질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사드는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자칫 전쟁을 불러올 불씨가 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무기로 이 땅 어디에도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정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지지했던 군민들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필요하면 국민을 속이기도 하고 종북 좌파라고 음해하며 소통보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우방인줄만 알았던 미국도 어디까지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성주 군민들이 밀양, 강정, 청도의 주민들 투쟁을 보면서 국책사업을 반대하는 싸움이 여론에 지역 이기주의로 비춰지면 그 싸움은 이미 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빨리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군민들은 사드가 성주는 물론 대한민국 어디에도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과 사드를 막아내는 일이 곧 평화를 지키는 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평화나비와 파랑리본으로 평화를 형상화, 시각화해서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핵, 사드, 전쟁에서 평화로 돌린 것이다. 그럼으로써 여론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다행히 사드가 대한민국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고 절대 배치되어서는 안 되는 근거들이 설득력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사드 배치 투쟁을 통해 오랫동안 굳어져서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순식간에 바뀌고 확장될 수 있는지 놀라웠다.

많은 성주 군민들이 사드를 막아내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그 중 하나가 손 글씨 현수막을 만든 미술팀이었다. 미술팀은 다양한 크기의 천을 끊어다가 여러 가지 색깔의 페인트로 예쁘게 현수막을 써서 나눠주었다. “엄마 아빠가 지켜줄게!” “최고의 무기는 평화!” “성주는 평화를 노래합니다!” 문구는 더 따뜻하고 달달해졌다. 집 대문에, 아파트 베란다에, 담벼락에, 길가에 매달린 손 글씨 현수막은 마치 설치미술작품 같았다. 제3부지 발표 후 그 많던 현수막이 하나 둘씩 누군가에 의해 잘려나갔다. 그 빈자리를 미술팀의 평화를 노래하는 현수막이 대신했다. 사드가 물러가고 현수막이 모두 정리된 거리를 상상해본다. 휑한 거리가 왠지 어색하고 삭막할 것 같다. 성주는 지금 한바탕 축제를 벌이며 싸우고 있는 중이다. 평화를 염원하는 이 싸움이 반드시 평화를 불러오는 즐거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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