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뽑고 평화심는 그날까지 함께 입을 단체복 “그래도 뚜벅뚜벅”
SO-SO 한 이야기(12)
사드뽑고 평화심는 그날까지 함께 입을 단체복 “그래도 뚜벅뚜벅”
내가 믿고 의지하는 디자이너언니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래도 뚜벅뚜벅’ 화담선생님의 글씨를 평화장터 씨링과 비닐봉투 제작하는 데에는 디자이너언니의 실력이 한 몫을 했다. 단체티를 맞추기 위해서 앞뒤로 들어갈 글씨로그를 디자인해 주었다. 앞면 왼쪽 가슴위쪽으로 ‘사드뽑고 평화심는 그날까지’로 문구를 넣고, 뒷면 등판을 하나의 문양처럼 ‘그래도 뚜벅뚜벅’을 넣어서 디자인 해 주었다. 티셔츠 등판이 하나의 작품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처음 디자인을 보자, ‘아.. 이렇게도 가능하겠구나’ 하며 내 상상을 뛰어넘는 디자인에 감탄했다. 처음 화담선생님이 준 글씨에는 ‘송THAAD 영신’이 함께 있었다. 디자인을 하면서 그 문구는 빼는 것으로 하였다. 낙관도 빼야하지 않을까 하는 내 철없는 생각에 디자인언니는 나의 요구대로 낙관을 빼서 시안을 보내주었다. 낙관을 빼자, 디자인을 여러각도 바꿔봐도 뭔가 허전했다. 허전함을 채워달라는 나의 요구에 디자이너언니는 내게
“낙관까지가 하나의 작품이다. 낙관을 빼는 건 예술가에게 예의가 아니다. 낙관에 대한 편견이 있는거다. 이왕에 하는거 하나의 작품을 살려서 디자인하면 좋겠다”
고 강하게 말했다.
화담선생님은 소성리에서 어떻게 사용하던 개의치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해주셨다. 그것만 믿고 내가 너무 까불었나보다.
디자이너언니의 따끔한 충고를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담선생님이 사드반대투쟁에 예술의 혼을 다해 헌신하셨는데, 내가 낙관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변형을 시키려고 하다니, 정말 나는 배은망덕한 사람이었다.
디자이너언니의 전문성을 믿고, 조언을 바로 받아들였다. 온전한 작품으로 디자인한 티셔츠를 받아보니까 그제서야 허전함이 해소되었다. 그제서야 티셔츠도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처음 단체티를 맞추자고 성주주민대책위에 제안을 하고, 흔쾌한 승낙을 얻었지만, 그 일을 내가 하려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예전에 노조상근할 때, 여름조끼를 단체로 맞춰본 경험이 하나 있긴 하지만 벌써 10년은 지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획사로 넘기면 제일 편할테지만, 평화장터를 운영하다보니, 시장조사를 하고 싶어졌다. 서문시장을 찾았다. 서문시장 근처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선배의 도움을 받아서 도매상을 찾았다. 단체복을 전문으로 하는 도매상을 찾아서 물건을 손수 만져보고, 색상도 비교해보고, 가격도 체크하면서, 더 많은 곳을 둘러보지 않았다. 나름 가격대나 옷감의 질이나 괜찮다고 생각되었다. 둘러보고 나니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도매상사장과 간단하게 협의를 하고는 돌아와 인터넷으로 싼 단체복이나 기획사의 물품을 검색해보아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 것이 훨씬 결정하기에 유리할 수 밖에 없었다.
소성리, 성주와 김천 그리고 원불교와 전국의 연대자들의 다양한 연령대와 취향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거 같았다. 단체복으로서의 기본티와 젊은 층이 선호할 만한 후드집업 두가지 종류로 선택했고, 기본티는 소성리평화방 사람들의 여론을 확인해서 노란색과 하늘색 중 하늘색을 단일하게 정하지만, 후드집업은 여러 가지 색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네이비와 코발트, 버건디와 핫핑크 네가지 색상을 선정해서 선택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랬다.
옷가격대를 확인하고, 옷감을 확정하고, 색상도 정해서 도매상으로부터 후드집업 샘플을 받았다. 마침 그날 내가 다른 일로 소성리를 벗어나 있을 때, 샘플은 소성리로 도착했다. 샘플을 찍어 올린 사진은 사고 싶은 마음이 1도 들지 않을 정도로 쭈굴쭈굴 모양이 없어보였다. 하필 그 현장에 있던 강장로님이 보기에도 사고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든다는 폭탄발언에 나는 매우 긴장했다. 도매상과 통화를 하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의논을 해보았지만, 디스플레이의 문제가 없지 않을거라는 것과 가격대비 품질은 문제없다는 도매상의 큰소리에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팠다. 거기다 도매상은 무슨 똥배짱인지, 잡음이 많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도매상은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지 않기 때문에 일을 수월하게 하는 편인데, 나를 상대하면 골치아픈 일이 앞으로 너무 많다는 거다. 한편으론 불쾌하고, 자존심도 많이 상하지만, 일은 벌여놓았으니, 성질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큰소리 치면서 도매상과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을거 같았다. 그러다 또 가격문제가 불거져서 거칠게 대화를 나눠야 할 때도 있었다. 도매상은 가격을 정확하게 정하지 않았다고 하고, 나는 분명 단가를 정했기에 단체복 맞출 사람들에게 가격을 공개했다고 주장하였다. 도매상의 입장에선 수량이 너무 적을 시와 많을 시에 단가를 유연하게 열어놓고 일을 할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나의 입장에선 단체복 비용을 거두어야 하기에 분명해야했다. 서로 코드를 맞추는 신경전이 살짝 있긴 했지만, 나도 도매상도 이젠 안할 수도 없는 처지인지라, 도매상은 내가 말한 조건의 단가로 인정했고, 나도 수량이 너무 적을 시에 단가조정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계속 거래가 이어질지 알 수 없으나, 처음 거래를 성사시키는 일은 머리가 아프다. 특히나 나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장사꾼을 상대한다는 것이 보통 에너지를 쓰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훨씬 밑졌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성리를 넘어서 전국의 연대자들이 함께 입을 수 있는 옷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 모인 사람들의 수가 빤하고, 단체티에 대한 열망이 높지 않아서 수량이 많지 않을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소성리, 초전면, 성주, 김천, 원불교, 천주교, 기독교, 평통사, 전국행동의 연대단위와 예술인 연대단위들, 사진영상예술 연대단위 담당자를 두어 주문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소성리평화지킴이로 활동하는 현철씨가 페이스북에 광고를 띄워서 개별주문을 받겠다고 올린거다. 택배는 자신이 부치겠다면서. 처음에는 저걸 어떻게 다 감당하려나 걱정이 앞섰지만, 현철씨에게 시민들의 연대를 담당하게 했다. 현철씨는 적극적으로 SNS로 알렸다.
우물속의 개구리 같은 우리내의 홍보라고 하지만, 그래도 광고를 보고 뜨문뜨문 사람들은 내게 단체복을 주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창원의 산업재해추방본부 활동가 한분이 옷을 주문하려고 연락이 왔다. 꽤 오래전부터 알고지낸 사이라 나는 그녀에게 조금은 편하게 부탁할 수 있었다.
“은주샘, 개별 옷 택배는 사실 저희가 다 감당하기 어렵고요. 이왕 주문하실 거면 창원지역에서 주문을 받아서 해주시면 안될까요?” 했더니 그녀는 내게 흔쾌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해주었다. 덕분에 용기가 살짝 생겼다. 그렇게 개별주문을 하기 위해 연락 온 사람들에게 생면부지의 나는 단체주문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노력해보겠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었고, 나는 도저히 안 되면 개별로라도 택배는 다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가장 인상적인 주문은 CBS 의 김다은PD다. 지난 연말에 ‘성유보상’을 타기 위해 서울상경하던 길에 ‘김관용의 시사자키’ 인터뷰를 했다. 그 날 만났던 김다은PD가 어떻게 소식을 알았는지 내게 티셔츠 주문을 한거다. 나는 그녀에게도 염치불구하고, 개별주문보다는 단체를 부탁드렸고, 그녀는 난색을 표했지만,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주문이 없다면서 자신의 것만 주문했는데, 마감을 앞두고 사무실의 동료들이 다함께 주문을 해준 거다. 사실 나는 아주 뻔뻔할 정도로 부탁을 잘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해주면 고맙지만, 못한다고 해도 섭섭할 일이 아니었고, 될수록 하나라도 더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내 간절함의 발현일뿐이지.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노력해주었다.
단체티에 ‘사드뽑고 평화오는 그날까지’ ‘그래도 뚜벅뚜벅’이란 것을 알고 주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사드를 반대하는 사람들일거다. 서울 뿐 아니라, 인천, 파주, 수원, 강릉, 삼척, 대구, 구미, 부산, 제주, 청주, 전주와 광주, 이루 말 할 수 없이 많은 지역에서 골고루 주문을 해왔으니 처음 걱정했던 것 이상이다. 단체복 수량은 1000장을 맞추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791장을 했으니 적지않다.
주문은 마감했다. 주문한 수량은 공장에서 제작하기 시작했다. 수금도 원활히 잘 되고 있다. 주문을 받았던 지역과 단체의 담당자들이 협조를 잘해줘서 고맙고, 감동이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단체복은 소성리로 온다. 그러면 배송 노가다를 해야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하고 또 기대된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한번 해보니 그것도 경험이 된다. 다음에 한번 더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불끈 솟는다. 여름티셔츠는 평화장터에서 해볼까?
‘사드뽑고 평화심는 그날까지’ ‘그래도 뚜벅뚜벅’을 앞뒤로 넣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치고 우리는 계속 뚜벅뚜벅 걸어가면 좋겠다.
2018년 3월9일 저녁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