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안되는 공부모임
현대사상연구소라는 이름앞에서 쪼그라들지 않기
교육공간을 만들고 맑스주의 저작 강독세미나를 일년 반 가량 한 적이 있었다.
모인 사람들이 돌아가며 소리내서 책을 읽고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현실의 문제와 토론을 병행했었더랬다. 꽤나 긴시간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내 운동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 나아갈 바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시절은 나에게 아주 고무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 등 혁명사상가들의 저서를 읽고 난 뒤 장기간의 피로감을 식힐 겸 잠시 휴지기를 가지기로 했는데, 휴식 끝에 자본론을 읽기로 했다.
그 이후 고전읽기 모임은 이뤄지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현대사상연구소라는 곳에서 자본론읽기 모임을 한다는 이야기가 귓가를 스쳐지나갈 적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우리 고전읽기모임에서 자본론 읽기를 할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른 곳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현대사상연구소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지식인들의 잘난 체 하며 멋부리는 이론연구 같은 삐딱한 편견이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혼자지만 공부할 계획을 세워 책을 읽기로 다짐했는데 생각보다 혼자서 공부한다는 게 쉽지않았다. 맑스주의 사상과 역사적 문헌들을 지식의 길이가 짧은 나로서는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수월치는 않다. 다짐한 만큼 실천은 되지 않았고, 끌적끌적 거리고만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현대사상연구소에서 고전읽기를 권했다.
때마침 예전의 고전읽기 모임은 다시 복원될 가망이 없고, 자본론읽기도 물 건너 간 마당이라서 내가 맑스주의 학습을 포기했더라면 모를까, 학습은 꾸준히 해야한다는 나름의 포부가 있을 때여서 먹혔던 거다.
그렇게 찾게 된 현대사상연구소에 발을 디뎠을 때 살짝 놀랐다.
원목으로 갖춰놓은 실내 인테리어며, 책상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차 종류며, 정갈하고 섬세한 공간이 일단은 눈부셨다. 의자에 앉아 원목책상위로 책을 펴드니 마음이 편해졌다.
쥔장이 어떤 분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대학교수로 명퇴하시고 현대사상연구소에 애정을 쏟아붓고 계시는 듯 했다.
쥔장은 작은키에 작은톤의 목소리에 교양이 묻어나는 아주 점잖은 분이었다.
격주로 맑스주의 고전읽기 모임을 하기로 했는데, 그냥 책을 함께 읽는 것만 아니라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발췌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서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구성원이 발췌를 하고나면 쥔장께서 내용적 안내를 다시 해주시는 듯 하여 부담을 조금 덜 수 있게 된 듯 했다.
모임구성원 중에는 운동사회에 대선배님 한분이 계시는데, 현대사상연구소에서 꽤나 긴 시간동안 함께 학습을 하신대다가 운동경력까지 갖춰있어 또 다른 안내자의 역할을 해주신다.
차를 마시고 나면 빈잔을 치워 씻고 정리하시는 여성분이 있었는데 처음엔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매번 컵을 씻고 계셔서 마음이 불편해진 나는 다음엔 제가 씻을께요.라고 말하지만 그 다음에도 컵을 씻는건 그분의 몫이 되었고 나는 또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마치 집안일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져서 이상타 싶은 촉이 발동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쥔장의 안해분이셨던 거다.
그분께 직접 이야기를 들은건 아니지만, 쥔장 부부는 현대사상연구소를 열고 함께 출근해서 안해분도 시간대 별 세미나에 참여하시면서 남편의 조력자이자 열공생이기도 한 듯이 보였다.
돈안되는 공부를 위해 헌신하는 쥔장의 모습도 존경스럽지만 남편분의 헌신에 조응하여 殺身成仁(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남편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그분은 더 대단한 분이라 여겨졌다.
쉽지 않은 길을 부부께서 함께 하시니 감동이 묻어났다.
제1기 돈안되는 공부 모임이 순회하고 제2기 세미나 시간표가 올라올 때 내 마음도 열리기 시작할 때인지라 여기서 필요한 공부를 좀 더 해보기로 했다.
자본론 읽기모임은 이미 진도가 상당히 나갔고 중간에 들어가기가 어색했는데 제2기 자본론개관수업이 8강으로 잡혀있었다. 강사분의 뉘신지도 몰랐다.
자본론개관수업을 신청하니 쥔장께서 엄청 반가워하셨다.
수강생이 워낙 없으니 그러려니 생각은 했는데 개관수업 첫날 연구소에 도착하니 사람은 쥔장 부부밖에 없었다.
자본론개관 수업 신청자가 나 하나뿐이란다.
급 당황스런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도착하셨다.
수강생이 나 하나밖에 없다는 말씀에도 선생님은 별 동요없이 정상적으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자본론개관을 담당한 선생님은 경북대 경제학전공 교수라고 인사를 나눴고, 지난 1기부터 수업에 이어서 두 번째 하시는 거라 했다.
지난 수업에는 쥔장부부와 또 몇분 정도가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개관수업을 듣고 이참에 자본을 한번 더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일대일 과외수업을 하게되다니 “오마이갓”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당혹스럽다.
선생님은 일대일로 하는게 조금은 어색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마치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듯 수업을 시작하셨다. 나는 조금 놀라웠다.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은 톤의 목소리로 마치 머릿속에 순서와 내용이 다 저장되어있는 듯이 술술술 강의를 하시는 데 오랜 관록이 묻어나는 수업이라고나 할까?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들어야 했다. 아니,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하며 나는 눈에 힘을주고 들었는데도 순간순간 들었던 말을 까묵는다.
이제 자본론 개관 수업은 농띠를 칠래야 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고, 8주동안 꼼짝마라가 되어버렸다.
첫 수업 끝 무렵 선생님의 이념이 뭘까 궁금해졌다.
“선생님은 맑스주의 경제학을 수업하시는걸 보니 맑스주의자 시냐?”고 물었다.
선생님 자신은 자유주의자라고 했다. 맑스의 자본은 과학적인 학문이고 연구의 가치가 높은 저서라서 공부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철저하게 비판하기 위함도 있다고 했다.
수업을 들었을 때 철저하게 비판한다는 것은 맑스를 까겠다는 뜻보다는 맑스의 위대함은 계승해야 하고, 맑스이론의 모순을 밝혀내고, 과학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한 것을 비판하고 아무튼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의 입장을 이야기 한 듯 해서 크게 오해할 바는 아닌데, 자본론 개관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이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자라는 말에 놀랍기도 하고 논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학문은 학문 그자체로 순수할 수만은 없고 언제든 정치적 이념이 반영될 수 밖에 없는데, 맑스의 이론을 학문적으로 높이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론은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 에 따라 다른 해석이 따라올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잠시동안 나누기는 했지만 잠깐 사이 서로의 이념과 사상을 다 알아갈 수는 없는 법이니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히려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서있어야 하는 문제가 더 크기도 해서 말이다.
그렇게 개관 첫 수업을 마치고 대략난감해 진 나는 8주 동안은 무슨일이 있어도 빠지지말고 수업을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두 번 째 수업을 듣기 위해 현대사상연구소의 문을 열었는데 반가운 손님 두분이 계신다.
고시인과 박시인이 개관수업을 들으러 오셨다고 한다. 멀리서 원정단이 온 듯이 기뻤다.
고시인은 연구소에서 세미나 수업을 듣기도 하지만 직접 시 창작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이시기도 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연구소가 발전되길 바라시는 듯이 주변에 홍보도 열심히 하신다.
박시인은 나이어린 청년인데 고시인의 수제자를 자청하고 있어 고시인과 함께 세미나를 두루두루 섭렵하고 있는 듯 했다. 박시인의 필명은 “갈필”이다.
몇 편의 시도 다음카페에 게시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공대를 중퇴하고 지금은 야간 알바를 하고 있다는데 그날도 수업을 마치면 야간 알바를 하러 가야 했다.
두 번째 개관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내 옆에서 갈필은 졸기 시작했고 졸고 있는 갈필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은 지난번과 다름없이 카세트 테이프 틀어놓은 것처럼 흔들림없이 강하게 강의를 하시는데 눈앞에 졸고 있는 학생이 신경쓰이신 듯 갈필에게 이해가 되고 있냐고 질문을 하시면서 잠을 깨운다.
갈필이 조는 이유는 야간 알바를 하기 때문에 늘 피로한 상태인데도 신기했던건 졸았던 사람치고는 강의내용에 센스있는 이해력이 받쳐주는 듯 했고, 그 와중에 선생님께 질문을 하는 것을 봐서는 상당히 재치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도 갈필이 졸았지만 질문을 하는 것은 무척이나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푸는데 도움이 될만한 도서 몇 편을 소개해주시겠다고 했다.
두 번째 시간도 무난하게 마치게 되었다.
다행히 일대일 과외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무척이나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지난 시간에 선생님의 이념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역에서 자본론을 수업할 수 있는 사람은 열손가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맑스주의자가 아니라서 아쉽지만 맑스의 학문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자본론을 수업하시겠다는 것은 학자로서 양심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순결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돈안되는 공부에 헌신성이 녹여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듯 하다.
소중한 사람들이다.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할 분들이라고 생각되었다.
맑스주의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자본론은 누구나 학습 할 재료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아담스미스를 떠오르듯이 말이다. 맑스의 경제학도 그런 정도의 위치에 올라서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노동자들이 필독서여야 할 자본론을 정작 노동자들이 읽지 않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맑스가 대단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맑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노동자계급적 이해를 중시했고, 계급적 입장을 견지하면 이론연구를 착수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탁월한 학문적 업적은 노동자계급, 피착취계급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새겨야 할 것이다.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무기로서 맑스주의 이론을 학습하고 사상으로 무장되어 해방세상을 향한 전망을 스스로 갖출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한층 더 밝아질 것이라 나는 감히 말한다.
나도 노동자운동이 쓰러지지 않고 버텨내며 인간해방으로 나아가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 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으리라 마음 다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