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꼴통님들 납시오.

진밭일기 2018년5월24일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 5월24일

“우리 내일부터는 용봉삼거리에서 공사차량 막고, 초전면에도 가고, 성주군청도 나가봅시다. 와 우리마을에 사드 들여놓고, 우리마을에만 경찰들 들어오고, 저 수구꼴통들 끌여들여서 동네시끄럽고로 만드노, 사드들어오니까 온갖 잡것들이 다 기어들어와서 우리 늙은이 복장터지게 만드니까 안되겠다. 저 아래 마을로 내려가서 막으면 경찰들도 내려오겠제, 저 수구꼴통놈들도 내려오라캐서, 성주사람들한테 이 꼬라지 보여줘야겠다”

오늘 공사인부들 퇴근시간에 맞춰서 피켓팅을 할려니 금연엄니가 목청을 높이면서 하신 말씀이다. 지금까지 진밭에서 공사차량과 인부들의 출퇴근시간을 막고, 피켓팅했는데, 오늘은 마을로 내려와서 했다. 진밭에는 수구꼴통들이 진을 치고 있고, 마을 아래 보건소삼거리에도 수구꼴통들이 자리를 폈다.

사실 어제, 평화장터 주문물량을 택배보내고 진밭으로 돌아왔을 때는 평화백배 하는 시간 직전이었다. 진밭은 내가 지키겠노라 하고, 원불교교무님들은 모두 평화백배를 하러 내려갔다. 핑화(진밭의 개이름 평화를 핑화로 개명청원했어요)에게 빵을 먹이고, 약간의 과자를 주면서 점수를 딸 기회였다.

핑화 집 위치는 그늘이 크게 진다. 꽤나 큼직한 나무에 잎새가 풍성하다. 울창한 나무그늘이 제법 시원하다. 으슬으슬 춥기까지 한다. 파란의자에 등을 지대고 앉아 평화와 한참을 장난치고 놀고 있으니 경찰과 동행한 수구꼴통님을 만났다. 나를 향해 빨갱이라고 천박한 언어를 달고 나타난 짐승들이었다. 웃겼다. 그런바람에 나는 진밭교 햇볕맞으면서 앉지 않아도 되었다. 핑화 옆에 책상을 두고 저들의 “멍멍 짖어대는 개소리”를 귓가에 흘려보내면서 토지를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저들의 억지스러운 주장에 혼탁한 목소리와 영혼없는 언어는 상당히 불쾌하고, 짜증스럽지만, 덕분에 햇볕에 앉지 않게 되어서 은근히 다행이라는 얄팍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강교무님과 부녀회장님은 일본 젠코의 초대를 받아 한일 스피킹투어를 떠난다. 열흘간의 일정인데, 두분이 다 참석이 어려워 김천촛불의 김종희님이 먼저 출발해서 일본열도를 다니면서 연설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4박5일 일정으로 두분이 떠난다. 오키나와가 첫 방문지라고 한다. 출국을 하루 앞두고 준비할 일이 많았을테지만, 수구꼴통님들의 출현으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을거다.

소성리엄니들은 경찰들이 수구꼴통님들을 모시고 왔다고 의심했다. 경찰의 처신이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공사인부들 출퇴근시간대에 그 많은 경찰들은 다 어디로 가고, 수구꼴통님들이 오니까 경찰들은 쩔쩔 매기 바빴다. 겨우 몇몇이서 한줄로 경계근무를 서는 듯 하면서 동네사람들의 통행에만 불편을 초래했다. 물론 그들, 경찰은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좁은 동네길로 차들을 밀어넣어 통행하기 만들었으니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수구꼴통들이 진밭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집회신고를 냈지만, 경찰이 제한통고를 했다고 하는데도 수구꼴통님들은 막무가내 진밭으로 올라와 자리를 깔고 스피커의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다.

매일 8919부대정문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엄니들은 어제도 어김없이 부대로 올랐다. 정문앞에 앉았던 부녀회장님은 뿔따구가 나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거 같았다. 시간이 되니 공사차량이 내려올 기미가 보였다. 부녀회장님은 부대 앞에 세워져있는 쇠통을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끌어내고 그 사이로 쏙 들어가 누웠다. 경찰이 끌어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맨 바닥에 누우니 추운건 둘째치고 쇠붙이에 머리를 대고 있으니 딱딱한게 목이 아프더란다. 사람들이 차트렁크에 있는 담요같은 것을 꺼내서 부녀회장님이 깔고 누울 수 있도록 해주었긴 했지만, 불편한건 말도 못했을거다. 혼자는 누워서 있을 수 있었는데, 조금 지나고 보니 금연엄니가 쏙 들어와서는 부녀회장님 발밑에 앉았더란다. 그러니 부녀회장님이 마냥 누울 수가 없어서 일어나 앉았다고 한다. 비좁은 쇠통 속에서 두사람이 앉아도 불편한데, 고춘자엄니가 들어온다. 부녀회장님 속으로 다리도 못 펴는데 왜 자꾸 들어오나 싶었지만, 부녀회장님 혼자 그 속에 두고 있지 못하는 엄니들의 마음이 갸륵해서 아무말씀을 못했다고 한다. 조금 있으니 다리는 펴지 못해서 저려오기 시작했다. 자세를 어떻게 해도 불편한데 점점 어두워지면서 날도 추워졌다. 다른사람보다 할매들이 추워서 오래 계시다가 병날까봐 두렵다.

성주경찰서의 경비과장과 정보과장, 수사과장 다 올라와서는 초비상이었다. 공사인부는 한참을 퇴근을 못하고 기다려야했다. 결국 부녀회장님은 경찰들로부터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하나는 수구꼴통님들 진밭에 두지 않고 저 아래로 끌어내리라는 것이었고, 우리 소성리엄니들 부대정문에서 일인시위나 집회 하는 거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집회신고가 오후3시부터 5시 사이에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그 시간대 외에는 일인시위를 하면 되는거니까. 엄니들은 매일같이 부대앞에 올라가고 싶다고 하시니.

경찰은 부녀회장님의 요구조건을 수용하는 것으로 하고, 부녀회장님과 금연엄니, 춘자엄니 세분다 쇠통 안에서 나올 수 있었고, 함께 올랐던 엄니들과 의기양양하게 내려오셨다고 한다. 그 시간이 밤8시가 넘어서였다. 거의 4시간 이상 진밭재 부대앞에서 버티고 있었으니 엄니들의 고충이 말이 아니었다.

그 시각 나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수요투쟁문화제에 참석했었다. 마치고 소성리로 돌아와보니 마을회관에서는 상을 차리고 모두 식사를 하고계신다.

그리고 오늘 새벽 대구공항으로 강교무님과 부녀회장님 두분을 모셔다 드렸다. 일본에서 초대받아 떠나는 길이라 차비며 숙식 제공은 다 될 거 같은데 소성리에서 워낙 정신없이 보내다보니 세심하게 챙기지 못했을거다. 일본에서 애쓰는 실무자들과 단체대표들께는 뭔가 의미있는 선물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소성리평화모임에서 “사드 말고 평화 / 그래도 뚜벅뚜벅” 꽃분홍티셔츠를 드렸다. 일본에서 우리단체티를 입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엄청 기쁠거 같다.

조은학님이 두 분 가시는 길에 여비를 챙겨드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배웅속에서 두분은 무사히 오키나와에 도착한 듯 하다. 그리고 4빅5일동안 일본의 미군기지 현장을 둘러보면서 주민들의 투쟁에 연대하게 될거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일본을 시작으로 아래로부터 민중연대를 굳건히 만들어갈 초석을 다지게 되지 않을까?

소성리는 이제 성주의 산골마을이 아니다. 국제적인 핫이슈를 담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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