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군대와 우리의삶은 공존할 수 없다.

진밭일기 2018년5월25일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 5월25일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곳 성주로 이사왔다. 우리형편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집을 헐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복이었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할 짬이 없었다. 어린 아이는 부모의 결정에 따라 그냥 의지하고 따라야했다. 성주 시골길을 달리는 차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딸아이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완전 시골이네, 대형마트도 없고, 롯데리아도 없고, 내가 이런 시골촌동네에서 살아야돼?”

한숨을 푹푹 쉬면서 자신에게 펼쳐질 앞날, 불편하기 짝이 없을거 같은 무료한 시골생활을 상상했을 거다. 어린 아이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이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했을거다.

새로운 우리 집은 성주읍이지만,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큰 마을이었다. 나는 시골로 이사한 후에도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쓰지 않았다. 아이들은 잘 적응한다기 보단 적응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우리 마을은 버스가 하루 4번 들락날락 거리는 곳이었다. 아들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조금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대신 더위와 추위에 맞서 학교를 다녀야했다. 딸아이는 버스시간표를 파악하고 통학을 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기 바빠서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키운 게 아니다. 알아서 잘 성장해주었다.

딸아이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집안이 떠나갈 듯 “밤의 아리아”를 연습해댔고, 연습하다보니 그럴듯하게 불러대기도 했다. 성악을 하고 싶다는 말을 내게 어렵게 꺼낸 아이에게 꿈을 키워주고 싶어서 큰 고민하지 않고 성악레슨을 시작한 적도 있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의 단독주택이다 보니 피아노소리에 악다구니 쓰는 소리에도 누구하나 시끄럽다고 기분나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음껏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성악을 하겠다는 꿈이 시들해지고, 만사 귀차니즘에 빠진 아이는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내게 선포했다. 고마웠다. 성주에서 직장 다니면서 아침버스 타고 나가서 저녁버스 타고 들어와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의욕도 없이 집구석에서만 지내는 게 좋다는 아이에게 가장 안전하게 사는 방법이었다.

그러던 딸아이는 고3이 되었다.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며 대학을 가겠다고 말을 바꿨다. 갑자기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당황스럽지만, 역사를 전공하고 싶다는 것만은 기특했다.

성주로 옮겨와 엄마의 돌봄 없이 초, 중, 고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왕따, 집단괴롭힘과 따돌림 등 친구와의 갈등과 불화 보다는 친구들과 협동하는 방법을 익혔다. 아이들간의 공동체를 꾸려서 각자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학창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아이는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더라면 이렇게 행복하기 어려웠을거 같아”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성주로 돌아와서 직장을 다니겠다고 한다. 바쁘고 복잡한 도시생활은 하고싶지 않다는 것이 아이들의 뜻이었다.

나는 엄마로서는 빵점짜리다. 아이들의 성장을 잘 살피지 못했다. 아이에게 헌신하지 못했다. 우리아이만 특별한 적도 없었고, 우리아이만 귀하지 않았다. 내 새끼만 챙기는 그런어미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딱 하나 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살아야 하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아져야 한다. 결국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위해서 노동자의 권리가 좀 더 많이 확대되길 바랐고, 권리의 주체로서 노동자가 되길 바랐다. 내가 당당하게 투쟁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하염없이 삭감당하고 있고, 노동조합을 할 권리는 박탈당하고 있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만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노동자에게 핍박당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노동자들간의 분할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성이 파괴되는 경쟁시스템 속에서 양심은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곳, 성주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이다. 나는 내 삶의 터전을 지켜내지 못했다. 슬프다. 사드를 반대한다고 수년동안 촛불을 들고 싸웠다. 사드는 들어와버렸고, 이제 군사기지에 머무는 장병들의 복지시설을 증축시키는 공사를 하고 있다. 지붕개량과 오폐수처리시설 그리고 식당시설이라고 한다. 그것말고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힘에 부친다. 한반도에는 80개 넘는 미군기지가 있다고들 한다. 한 개 더 생긴다고 해서 우리 삶에 무슨 영향을 미칠까하는 얄팍한 마음이 요동친다.

매일 공사를 막기 위해서 오르는 진밭에서 우리는 공사를 막지 못한다. 우리가 비굴해서가 아니다. 저들의 물리력이 우리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며, 우리는 그들, 경찰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이곳 진밭에서 무너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동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이 북미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꽤나 기대를 했을텐데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테다. 북미회담 이후 정세를 전망하자는 것이 팽배했었다. 그러나 나는 북미회담이후에 달라질 것이 뭔지 감이 없다. 만약 저들이 북미회담에서 한반도의 문제를 신중히 다루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지금 불법적으로 들여놓은 사드문제가 예민한데, 이 공사를 중단시키는 것이 우선 행해야 것이 아니었나 말이다.

지배자들을 믿을 수 없다. 그들은 과연 의지가 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은 곧 대학을 가기 위해서, 또 어떤 이유로 성주를 떠나지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내가 앞으로 살날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이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성주에 미군기지는 없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곳에 제국의 군대와 우리의 삶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수구꼴통님들 납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