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밭일기 2018년5월23일
진밭일기 2018년5월23일
눈물이 흐르면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눈물이 날 때마다 이를 앙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소리가 나면 나는대로, 흐느끼는 소리는 통곡이 되고, 나를 둘러싼 여경들이 있던말던, 앞뒤로 빽빽이 둘러싼 경찰들 속에서 자지러지며 울어댄다. 악을 쓰기도 하고, 악담을 퍼붓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아직은 내가 독기를 품고 있지는 않은가보다.
눈물을 펑펑 쏟기라도 해야지 내 속에 불두덩이같은 화를 가라앉힐 수 있을거 같다. 참지 않는다. 쏟아내고 풀어내기라도 해야 내가 살 수 있을거 같다.
밤새 비가 내렸나보다. 진밭의 새벽은 촉촉하다. 안개가 달마산 허리를 감싸 시야를 흐린다. 비를 가득 머금은 구름은 무겁지도 않은가보다. 비가 올 듯 말 듯 흐리고 구린 날에도 공사는 어김없이 진행된다.
진밭에서 평화행동을 하고 있노라면 시간에 맞춰 승용차와 용달차, 덤프트럭, 화물차들이 달마산 허리를 철조망으로 둘러버린 성주사드기지로 올라가겠다고 줄을 선다.
모두가 외침기도를 하고나면 경찰은 갓길로 자리를 내어달라고 애원하듯이 원불교교무님께 깍뜻이 달라붙는다. 설득이 되지 않으면 가차없이 경찰 서너명을 투입해서 뜯어내고, 끌어낸다. 경찰, 그들에게는 힘이 있고, 우리를 제압할 수 있는 병력이 있다. 병력이 움직이면 우리가 선 자리는 산산히 부서져서 공사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출근길이 되어버린다.
출근하는 차량을 마주보면서 의자에 앉는다. 양 옆사람과 팔짱을 끼고 앉아 ‘사드가고 평화오라’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오는 찰나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 짧은 순간도 못 버텨내고 끝내는 공사차량이 진밭교를 밟고 지나갈 찰나가 되자 체념의 유령이 꿈틀꿈틀 내 속으로 기어올라온다.
경비과장은 내 왼쪽팔에 끼고 있는 교무님을 끌어내지 않기 위해서 설득한다. 나의 양팔은 양쪽 사람을 꽉끼고, 내 다리는 경찰의 다리를 잡았다. 경비과장은 내 앞에서 교무님께 걸어나가시라는 설득을 할 때 나의 시선이 경비과장 다리에 멈췄다. 내 왼쪽 연결된 팔이 떨어지자, 나는 두 팔로 경비과장의 다리를 감싸앉았다. 나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나는 아주 짧은 순간을 버텼다. 아니 버티고 싶었다. 공사차량이 조금만 더 지체될 수 있기를, 출근할 때마다 창문을 굳게 닫고 마스크를 하고, 귀를 막고 있는 자들이, 이 곳, 소성리 사드기지 현장에서 일하는 건 정말 힘들고 피곤한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이곳 말고도 마음편하게 일 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기를,
아니 단 5분이라도 출근을 늦출 수 있기를...
경비과장은 노발대발, 성주경찰서의 경비과장을 능멸한 죄를 다스리겠다면서 체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우리 평화지킴이들이 내게 손을 놓으라고 재촉했다. 체포할 수도 있다는 것이 어떤 긴장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아무감흥이 없다. 평화지킴이에게 흔들렸다. 손을 놓자 여경들이 내 의자로 가마태워 멀리 멀리 안쪽으로 나를 가뒀다. 나는 더 이상 거동하지 않는다. 상황은 끝났다. 내가 졌다. 나는 잠시도 버텨내지 못했으니 공사차량은 하나둘 진밭교를 밟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성주사드기지 공사 출근저지 활동은 매일매일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다.
진밭은 진상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경찰을 대동해 진밭을 찾아온 남자가 있었다. 한손에는 핸폰 카메라를 들고 경찰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는 그 남자는 “저런 빨갱이들 불법인데 왜 안 쫓아내고 가만히 두고 있냐”면서 경찰을 채근해댄다. 나는 진밭의 평화에게 간식을 먹이면서 나무그늘자리에 앉아있었다.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유독이 핏대를 세워대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그는 다짜고짜 “저게 무슨 성주사람이냐고? 저런 빨갱이들은 여기 발도 못 부치게 해야한다” 고 욕설과 다를바없는 거친 말들을 쏟아부었다. 경찰들이 설득을 하는 건지, 그들의 강짜부리는 행위를 구경하는 건지, 아무튼 내 앞으로 여경들이 배치되었고, 진밭위로 경찰들이 배치되어 찬- 반 세력간에 불미스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경찰은 총집중하는 듯이 보였다.
꼴보수 세력은 진밭으로 치고 올라와 또아리를 틀려고 하고, 경찰은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면서 마을 구석구석을 면밀히 살피고, 경찰을 배치하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금연엄니는 경찰을 의심한다. 경찰들이 아래에서 그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잘 막아서지 않는 바람에 이곳 진밭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경비가 너무 허술했다는 것이다. 경찰들과 짜고온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만한 대목인데,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관계로 마냥 의심만 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이제부터 꼴보수들이 진밭으로 진을 치려하고 있어 경찰들의 역할이 필요해졌다.
꼴보수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전혀 저들에 대한 정보가 없다. 마을회관앞에 앉았던 경순엄니는 지나가는 꼴보수들에게 “빨갱이”란 비난을 들어야했고, 무작정 차도로 뛰어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괴성을 내는 그들의 방송은 사람들의 신경을 곤두세우기 충분할 정도로 아주 듣기싫은 목소리다.
매일같이 경찰들의 군화발에 치이는 것도 모자라서 꼴보수의 괴성을 듣게생겼다.
우리에게 필요없는 사드가 당신에게 그리도 소중하고 절실했다면 그 사드 우리는 필요치 않으니 당신이 싸들고 가소. 그 놈의 사드만 없었더라면 이 산하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서 난리북새통속에서 살지 않아도 될 것을. 이 망할놈의 사드 때문에 진밭은 몸살을 앓아야 하고, 소성리주민들은 홧병을 얻을 지경이다. 사드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어찌 꼴보수들을 진밭으로 올릴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