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다 갈아마시고 말테다.

진밭일기 2018년6월7일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6월7일

그게 어떻게 되었냐면 말야.. 그날은 봉정할배가 좋아하는 술친구 고시인과 편의점앞에서 낮술을 하던 중이었는데, 나는 술을 안 마시니까 지나칠 때가 많았어. 그날은 소성리편의점 강사장님이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신다는거야. 그래서 기다렸지. 샌드위치는 식빵 두 장을 버터에 구워서 달걀후라이를 얹고 그 위에 상추를 한 장 포갠 것였어. 양념으로 오디잼을 발라주셨지. 달작하면서 후라이의 기름내가 솔솔나는거야. 음료로는 보리수를 우유에 갈아서 주셨어. 꿀을 넣지 않아서 달지는 않았어. 담백한 보리수우유가 시원하고 맛있더라구. 나는 맛있다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랑을 해댔어. 특히나 보리수우유가 신선했었거든, 내가 보리수 노래를 부르니까 금연엄니가 아들네 집 뒤뜰에 보리수가 한창 열렸다고 따러가자고 하시네.

내가 보리수우유가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건, 사실 맛도 있었지만, 칠순이 넘은 어른이 젊은 것들 점심 챙겨먹이겠다고 손수 만들어주신 샌드위치와 음료가 감동이었던거지. 강사장님은 칠순의 나이에도 고리타분하게 밥상 차려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본인이 손수 샌드위치같은 간편한 식사를 만들어 드신다고 하는거야.

금연엄니는 내게 보리수 따러오라고 성화야. 보리수를 따면 우유넣어서 갈아마셔야 할낀데, 대구 나가는 길에 전자제품 가게에 들러서 큰 마음 먹고 믹서기를 하나 샀지. 데팔로 말야.. 팍팍 잘 갈릴거라는 확신을 안고,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갈아마셔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지.

참외를 요구르트랑 갈아먹고, 단맛은 산사자효소를 넣었더니 괜찮더라구.

그리고 드뎌 오늘 진밭 공사저지 피켓팅을 마치고나서 금연엄니 집으로 갔어. 집에 들어서는데 깜놀!! 마당에서 볼일 보고 있는 금연엄니보고 놀라서 꺄악~~~&^^& 소리를 질렀더니 엄니는 괜찮다 카는거야.. 엄니만 괜찮으면 되냐고,, 나는? 웃고 말았어. 할매들 사는 집에 들어갈 때 반드시 인기척을 하고 들어가기.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서

집에 들어서자 아침먹자는 금연엄니, 밥을 먹어야 쓴다는 엄니말씀에 밥 한 술 얻어먹었네. 그러고 보니 소성리를 들락날락 거린지가 일년이 넘었는데, 금연엄니 집안으로 들어간 건 처음이야. 옛날에는 소도 키웠을 법한 외양간으로 보이는 낡은 건물은 다 쓰러져 가는 기둥으로 억지로 버티고 있는 듯 보였어. 집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비닐로 둘러쌌는데, 할배할매 둘이 살기에는 큰 집이 되어버렸네. 인심좋은 금연엄니는 밭에서 상추 따서는 물에 술렁술렁 씻어서는 된장이랑 가죽나물이랑 꺼내서 상을 차려주셔서 별로 먹고 싶은 생각없었는데, 상앞에 앉으니까 밥한그릇 뚝딱 비웠어.

우리는 금연엄니 아들네가 사는 소성지 앞으로 갔어. 아들과 며느리 다들 일 다니느라, 소소한 일들은 금연엄니가 돌보는 듯 한데, 어린 모에 물 대줘야 한다는거야. 그리고는 나랑 보리수를 한참 땄네. 빨갛게 잘 익었는데, 알이 손가락 한마디보다 작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한 개 한 개 따면 언제 다 딸지 몰라 움찔했어. 높은 가지부터 따기 시작했어. 금연엄니는 낮은 가지의 것을 따고, 한참을 따다보니 흘린 것도 많고, 담은 것도 많아서 한 소쿠리는 땄네.

금연엄니는 최저임금 삭감법이 통과된 것에 분개하셨지. 아들이 기술이 좋대. 이것저것 못하는 것 없이 잘 하는데, 손끝이 야무지다고 해. 롯데골프장에서도 오랫동안 일했었는데 계급이 안 올라가더라네. 계급이 안 올라가니까 월급이 올라갈리도 없지. 그런데 월급을 안 줘서 애 먹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대. 최저임금을 삭감하면 월급쟁이들 가뜩이나 어려운데 어찌 살라고 하냐고 투덜거리셔. 엄니는 아들을 통해서 아는거지. 최저임금이 올라야 아들같은 사람들의 임금도 오른다는 것을. 계급이 올라갈 일이 없는 사람들이 임금인상도 쉽지 않은데, 최저임금마저 오를 전망이 안 보이면 어쩌냐는 엄니의 통쾌한 직관력에 맞장구를 치면서 보리수를 땄어. 사실 노동자들의 임금도 문제지만, 자영업자들도 걱정이자나. 노동자들이 임금을 제때 제대로 받아야지. 자영업자들도 숨통이 트이지. 자꾸 주머니가 수축되면 누가 가장 피해를 보겠어?

보리수를 한창 따고나니까 금연엄니는 안 먹는다고 내게 다 챙겨주셔서 집으로 들고왔는데, 이게 또 씻고 말리는 게 일이네. 잘잘한 게 터지기도 잘 터지고, 한참을 씻어서 체에 걸러놓았어. 그리고는 한잔 갈아마셨지. 데팔믹서기인데, 왜 씨는 안 갈리는지 모르겠어. 우유에 효소조금 넣고 보리수 넣어서 갈았더니 새콤달콤 맛은 있는데, 마실때마다 씨를 두두두두 뱉어내면서 마셔야 하는게 불편하네. 헐.. 강사장님이 갈아준 건 씨도 다 갈렸다고 했는데. 암튼 올 여름은 건강음료로 보리수우유! 좋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일찍 진밭을 향해 가고 있어. 공사인부들을 향한 공사저지 피켓팅을 해, 아니 공사를 저지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 경찰은 우리가 실컷 기도하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공사인부들이 들어가야 할 시간을 어기지 않지. 우리의 몸부림도, 저항도, 경찰병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못하지. 그리고 북미회담이 곧 열릴테니까 뭔가 기대치도 없지 않은거 같아.

지쳤다기보다 현실을 직시한거지. 못 막는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우리가 모자라서가 아니야. 모자란 건 막을 사람수인거지. 열 명도 되지 않는 사람 수로 무엇을 막을 수 있단 말이야? 만약 진밭에 서른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공사인부들은 훨씬 일찍 오르려고 서두르겠지. 경찰들은 공사인부들이 제시간에 공사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일찍 끌어내겠지.

지금은 열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막는다는 건 어불성설인거 같아. 다섯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막는다는 건. 막지 않는 다른 표현인거지.

경찰들과 잘 협조하고 좋은 질서를 만들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인거지.

그게 지금 우리가 처해진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거 같아. 나는 지친 게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게 된 거지.

이곳에 미군기지가 지어진다고 해도,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란 것을 인정해야 해.

그런데 내가 왜 소성리에서 검문을 당해야 하는거지? 그들 경찰은 어제는 하지 않던 검문을 오늘 하는거야. 검문을 하는 이유는 혹시나 모를 위험을 대비해서 상부의 지시에 의해 하는거래. 주민은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수상한 차는 도대체 어떤 차가 수상한거지?

혹시나 모를 위험이 뭐냐고? 테러의 위험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고 해. 왜 우리가 저들에게 테러리스트로 오해받아야 하고, 오며가며 검문을 당해야 하는거지? 참을 수가 없어서 화를 마구 냈어. 그들 경찰에게 소리를 질렀어.

공사인부들은 왜 검문하지 않고 다 들여보내주냐고? 그곳에서 어떤 공사를 하고있는지 알고나 있냐고? 이 땅에 미군부대가 생겨서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살해당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왜 공사를 하게 놔두냐고? 저 달마산 꼭대기에 어떤 위험물질이 들어가고 나오는지 알고 있냐고? 왜 미군이 들어가게 놔두냐고? 미군에 의해 공포를 느껴야 할 이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다면 저 공사를 막는 것이 우선이지 않냐고?

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고, 경찰은, 나를 상대하는 경찰은 그냥 내 말을 듣고만 있더라구, 불쾌하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반복하면서, 옆에 어린 놈들이 깐죽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사모님이 화가 많이 난 모양이라 듣고 있는 중이라면서 옆에 있는 깐죽거리는 놈들을 제지하더군. 내 화를 다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래 좋다. 내 화를 니가 다 들어라. 왜 공사인부들이 들어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미군을 위한 숙소와 식당을 짓는데 가만히 놔두냐고,, 이렇게 많은 한국의 경찰들이 있는데도, 이 땅을 미군에게 송두리째 뺏기고 있는 것을 두 눈뜨고 지켜보다 못해 보위까지 해주는 너희 경찰들 도대체 뭐냐고? 이럴 바에야 경찰같은 국가조직깡패들을 해체해야 마땅하지. 조국을 위해 충성하지 않는 경찰, 조국을 위해 충성을 맹세했던 양심은 어디갔냐고? 당신의 조국은 미제국주의였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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