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가 된 소년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진밭일기 2018년6월8일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6월8일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배에 올랐다. 고기를 낚기 위해 그물을 던져두고 배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우두커니 바다를 바라보던 소년은 눈앞에 놓인 신문을 펼쳐 읽었다. 기사하나가 눈에 띄었다. 심각한 폭음에 노출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폭력성이 두 배 이상 늘고, 자살률이 높다는 통계가 발표되었던 거다. 소년은 최근에 자신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상기했다. 아기고양이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두 마리 아기고양이를 땅바닥에 후려치고 산 채로 땅속에 매장시켰던 잔인한 자신의 행동을 말이다.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생각게했다. 소년은 이 곳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13대가 대를 이어 살아온 땅이지만 가난이 떠나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고, 무지가 아무 곳으로도 갈 수 없도록 족쇄가 되었다. 소년은 큰 마음을 먹고 직업훈련원을 찾았다. 몇 개월동안 기술을 배우고 쿠웨이트라고 했던가? 건설붐이 한창인 외국으로 나가 돈을 벌었다. 몇 년 힘들게 일해 돈을 모으면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란 꿈에 부푼 소년은 수년동안 고생인 줄 모르고 일했다. 돈을 모아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청년이 된 소년은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아버지가 자살을 한거다. 아버지의 자살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미군기지를 철수시키기 위해서 평생을 받쳐 싸운 주민 김00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자살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매향리는 바닷가 마을이다. 농섬은 매향리에서 조금 떨어진 섬이지만 썰물이 지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무가 울창하고 산을 대신해서 자연식물들이 번식한 자연먹거리가 풍족한 섬이다보니, 마을사람들이 철철이 나물캐러 다니면서, 갯벌의 먹거리를 채취하러 다녔던 식량창고같은 곳이었다. 사람들은 농사를 짓었고,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아서 생업을 해나가기도 했다. 1952년 전쟁 중에 미군의 포격사격훈련을 실전처럼 매향리의 농섬을 목표물로 시작되었다. 1955년 폭격사격장은 정식으로 미군기지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이곳 농섬을 향해 오키나와에서, 괌에서, 하와이에서 전투기가 출격하여 폭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폭격사격이 사작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72시간 연속적으로 폭탄을 쏟아대는 폭격이 이뤄졌다. 조종사가 조그만 실수에도 주민들의 생명이 태풍 앞에 등잔 마냥 위태로웠다. 실제로 오폭사고가 잦았다. 날아오는 폭탄이 주민들의 삶터에 떨어져서 지붕이 박살나기도 했다. 그러면 시멘트 한포대로 입을 닦으면 그만이었다.

미군들의 전투사격훈련에 대해 불만과 불평은 일체 꺼내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가 불평불만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당장 빨갱이로 매도되고 간첩으로 내몰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엄혹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마을은 고통과 공포를 감내하면서 숨죽이고 살아야했다.

만삭의 임산부가 폭격을 맞아서 뱃속의 태아가 터져나오는 끔찍한 사고를 겪기도 했다. 임산부의 남편은 실성을 했고, 마을사람들은 실성한 남편이 살아갈 수 있도록 미군에게 취업을 청탁했다고 한다. 미군은 경비자리를 그에게 내주었고, 그는 반실성한 사람으로 출퇴근하면서 그냥 살았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서 살았다. 그런 그를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매향리 미군폭격사격장은 그렇게 운영되었다고 한다. 경기도라는 수도권에서 그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에 놀랍고, 1952년부터 미군부대가 옮겨가는 2005년까지 실제로 전쟁연습으로 엄청난 굉음을 일으키면서 시행되었던 훈련이 일년에도 수십차례 있었다고 하는데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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