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

진밭일기 2018년6월9일 아침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6월9일 아침

매향리를 찾았던건, 그곳이 유일하게 미군을 철수시켰던 곳이라고 들었다. 굉장히 긴 시간동안 주둔했지만, 결국은 싸워서 철수시켰다는 것에 희망을 가지기 충분했다. 처음엔 혼자서 매향리 마을을 찾았다. 농섬까지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면서 그곳의 환경을 살폈다. 그리고 글쓰기모임 다정에서 작은문집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매향리를 찾았다. 커버스토리로 매향리의 이야기를 넣기 위한 취재일정이었고, 다정의 야외나들이이기도 했다. 그 날 그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미군부대를 철수시키는 싸움을 했던 김00주민을 만났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긴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며 감정이 동요되었지만 끝내 글을 쓰고 발표하지는 못한채 그 날도 일기로만 쓰고 말았다.

최근에 진밭으로 공사저지 출근 피켓팅을 할 때면 매향리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사드가 폭격사격장만큼 심한 굉음을 일으키고, 폭격으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는 것이 아닐지라도 미군부대가 들어선다는 것만으로 공포이고, 이 싸움은 앞으로 오십년이 될지 백년이 될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폭격사격장은 그야말로 전투비행기의 폭격점수를 매기는 곳이다. 미군은 다섯명정도 상주했다고 한다. 채점매기는 일이 그들의 임무이자 업무였다. 채점매기는 시험감독관들이 미군이었던 거다. 마을 한가운데, 그것도 한국의 심장부인 서울 수도권 지역인 경기도 화성시에서 이런 폭격이 이뤄졌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지금의 농섬의 울창한 숲은 다 파괴되었고, 섬의 면적은 삼분의 일도 남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폭탄의 파편 매립장이 되어있다.

미군기지가 나가고 나서야 마을사람들은 미군기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매향리 폭격사격장 미군기지는 다섯명의 미국군인이 주둔해 있었다. 오키나와, 괌, 하와이, 유럽에서 날라온 전투기들은 이곳에서 폭격사격을 하고 이곳의 미군은 사격점수를 매기는 것이었다. 미군기지 내 시설은 휘황찬란했다.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스포츠를 즐기는 농구장, 미군들의 전용빠와 댄스홀, 현지처로 데리고 살았던 한국의 매춘부들, 그들을 위해 허드렛일을 도맡아했던 이들은 한국인노동자들이고, 마을주민들의 일자리였다고 한다.

난 폐쇄된 미군부대를 둘러보면서 그곳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 사건과 사고들을 들은대로 상상하면서 눈앞이 아련해는 듯 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미군기지가 만들어졌다. 어떤 불이익이 발생해도 누구하나 입하나 뗄 수 없을만큼 엄혹한 시절을 보내고 87년 민주화바람이 일면서 이곳 매향리 마을에서도 미군의 전투사격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전원이 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삼십년이 넘어서 주민대책위가 만들어지고, 처음 시작은 소음피해에 대한 소송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보상이 목적이 아니었다. 발벗고 나서더라도 두려워 따라오지 못하는 주민들을 설득해내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한 소송싸움이었다. 그마저도 사인을 받아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게 주민들의 동요가 일기 시작하고, 외부의 연대가 생기면서 자신을 얻은 주민대책위는 사격장 안으로 진격하는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주민 1000여명이 농섬으로 들어가 전투사격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면서 연좌농성을 하기도 했었다. 정말 위험천만한 장면이 아주 오래된 필름에 담겨있었다. 그 긴 역사를 그 사람의 이야기로 다 이해할 수는 없을거다. 그러나 끔찍한 악몽같은 과거를 이야기 하는 그의 눈빛은 담담했다. 지금은 미군이 철수된 자리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더 기막힌 현실은 매향리 미군폭격사격장은 멀리 가지 않았다. 군산의 앞바다의 작은 섬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결국 미국은 한반도를 전쟁연습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그 사실이 미군이 철수하는 것은 주민들의 싸움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이 부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1952년부터 시작한 매향리의 전투폭격훈련은 2005년이 되어서 막을 내린다.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면서 생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에서 폭격사격을 한다는 것은 조종사가 훨씬 긴장하여 오폭률을 줄이기 위해 실전과도 가까운 훈련을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매향리 주민들은 그들에게 사람이 아니라 좀더 정확한 목표물을 겨냥하기 위한 장애물같은 훈련도구였던 것이다. 그러니 오폭으로 다리가 찢어지고, 창자가 튀어나고, 임신한 여자의 배가 터지는 사건과 사고가 벌어져도 어느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이 덮어지고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 오욕의 역사가 이제 막을 내리게 된 것일까? 분명한 건 더 이상 전투기의 폭격굉음에 시달릴 일은 없을테지만, 한반도의 전쟁위협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한반도의 오욕의 역사가 끝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아직 미군기지가 아니라고 하는 성주사드기지는 계속 미군기지가 아닐 수 있을까? 오는 6월12일 북미회담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종전선언이라도 의미는 있을거라 생각된다. 정전협정은 이제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만으로도 성과를 내는 것이 무척이나 필요하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사드는 어떻게 될까? 사드는 철거하게 될까?

사드를 가져가면 달마산은 미국이 가져가지 못할테니 우리가 살던대로 내버려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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