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밭일기 2018년6월10일
진밭일기 2018년6월10일
갈 곳이 있어서 기뻤다. 나를 기다려주는 이 없지만, 집을 나서면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외롭지 않다. 그러면서도 갈 곳이 소성리 밖에 없어서 슬프다. 길을 나섰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맘 편하게 발길을 향한 곳이 소성리 밖에 없더라.
딸예미는 고3이 되었다. 기숙사를 간 아이는 토요일이면 집으로 돌아오고, 일요일이면 도서관을 간다. 도서관을 향한 아이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너무 신기해서 차도 태워준다. 학교가는 거라면 버스시간 맞춰 다니라고 하지 절대로 차를 태워주지 않을 나인데, 확실히 딸아이가 고3이 되고부터 마음이 조금 약해진다.
그리고 나는 소성리로 향한다. 마을에 도착할 때쯤 진밭으로 올라간다. 핑화가 보고싶은 마음이 더 크다. 핑화는 두발로 서서 나를 반긴다. 핑화의 목줄을 풀었다. 천주교 피정의 집 “평화계곡”을 향해서 걸었다. 핑화는 패턴을 익히는 듯 했다. 처음엔 산으로 마구 올라가던 아이가 나와 함께 걸을때는 산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길을 따라 ‘평화의계곡’을 향해 걷는다. 풀마다 나무마다 냄새를 맡고, 다리를 들고 오줌을 갈기면서 영역표시를 해댄다. 길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샐까 걱정했지만, 핑화는 딴 길로 새지 않고 다시 되돌아온다. 내 주변을 맴돈다.
깊은 계곡 저편으로 대지가 펼쳐져있고, 외양간에 소한마리가 보인다. 넓은 들판에 개가 앉아있고, 닭이 벼슬을 꼿꼿이 처들고 목청을 돋우는 모습이 보인다. 내 눈에 보일 뿐 핑화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핑화는 그들에게 가지 않는다. 가려다가도 “핑화 남의 집에 들어가면 안돼” 하는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지 그곳으로 무작정 달려가지 않는다. 걷는 동안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여준다.
피정의 집을 도착하면 나는 화장실을 이용한다.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 사이 핑화는 피정의 집안으로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나보다. 내가 나오면 딸가닥 말발굽소리보단 개발소리를 내면서 내게로 달려온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갈 때도 핑화는 반항하지 않고 걷는다.
몇 번의 산책을 그렇게 했다.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더니 핑화에게는 하나의 코스가 된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피정의 집에서 하얀 개, 병든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새끼를 낳은 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젖은 축축 늘어져 볼품없고, 엉덩이는 털이 벗겨졌다. 빼빼말라 영양상태가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개였다. 피부병을 앓고 있는 듯 보였다. 한마디로 못생기고 볼품없는 흰개였는데, 핑화는 그 아이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그 아이는 핑화가 오기도 전에 죽는다고 “엥엥엥”거리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나는 핑화가 그 아이의 몸에 대기라도 하면 큰일 날 듯이 핑화를 불러댔고, 핑화는 내 목소리에 반응하면서도 그 아이 곁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다행스러운 건 핑화가 조금만 가까이 다가서면 그 아이가 꽥꽥 소리를 질러대서 핑화는 접근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내가 부르는 소리에 달려왔다. 그러자 그 아이가 우리를 따라오려고 한다. 나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돌을 던졌다. 따라오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아이는 기겁을 하면서 뒤로 달아나자 핑화는 철없이 그 아이를 따라가려고 한다.
핑화를 불렀다. 다행히 핑화는 미련을 버리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진밭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나의 편견인지 모르겠는데, 핑화는 이제 갓 사춘기를 지나 청년개가 되고 있다. 아직 첫사랑을 만나지 못한 순진한 총각개이다. 핑화의 짝꿍은 물론 핑화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아무나 안된다. 어디서 막 굴러먹은 지도 알 수 없는 길거리의 개와는 절대로 안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진밭에서 공사저지 피켓팅을 하고 있을때였다. 경찰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핑화를 포위하고, 핑화는 바깥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그 아이가 갑자기 진밭에 나타났다. 경찰에 에워둘러싸여있는 핑화를 만나지 못했다. 두리번두리번 헤매고 있다. 나는 핑화가 그 아이를 발견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곧 공사차량이 들어올 시간이 되었는데, 그 아이를 그대로 방치해선 안되겠기에 피켓을 휘저으면서 그 아이를 피정의 집 방향으로 내쫓으려고 달렸다. 경찰들은 내가 하는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다. 경찰들 다리사이로 그 아이가 깨깽 거리면서 달려나간다. 나는 피켓을 휘저어 멀리 가라고 했다. 피정의 집 방향으로 걸어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핑화는 경찰너머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드러누워서 꾸벅꾸벅 졸음을 좇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설사 핑화가 그 아이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더라도 그건 운명이라고, 아니 운명은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니, 핑화의 짝은 핑화만큼이나 잘 생긴뇬으로 내가 알아봐줄거다. 이쁜 강아지를 낳을 수 있도록, 2세에 대한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푸하하하. 핑화 장가보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