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이 된 여인

진밭일기 2018년6월4일 밤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6월4일 밤

자식같은 참외를 멀리 연대보냈다.

참외를 연대 보내면서 나는 임순분이라는 여성을 깊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젠코의 초대를 받고 임순분부녀회장님과 강현욱교무님이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의 몇몇 도시를 다니면서 연설회를 한다고 했다. 김천촛불의 김종희님이 열흘간의 긴 일정으로 먼저 출발했고, 부녀회장님과 강교무님은 뒤늦게 오키나와를 향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4박5일 동안 오키나와, 히로시마, 오사카 등의 일본나라의 도시를 돌면서 평화운동하는 사람들과 연대의 정을 나눴다. 부녀회장님은 일본을 가기전까지는 안가고 싶은 마음에 빠질 궁리를 하루에도 열두번은 했다고 한다. 막상 일본을 가니, 우리를 대해주는 일본사람들의 섬세한 배려와 관심이 뜨거웠다. 히로시마에 들렀을 때, 말로만 듣던 원자폭탄이 안겨준 전쟁의 공포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충격과 감동이 함께 밀려오는 여행이 되었다.

사실 사드반대 투쟁한다고 하지만, 힘에 부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요즈음, 내 농사와 내 삶을 살기도 바쁜 때에 살살 요령피워가면서 해도 되지 않을까란 유혹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일본을 다녀와서 보니, 부녀회장님은 그냥 설렁 설렁 해서는 안되겠다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 한다.

환갑을 넘긴 부녀회장님이 사드덕분에 일본까지 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옛 이웃들이 경비에 보태라고 후원을 해주셨나보다.

하루는 창고에 물건을 가지러갔더니 부녀회장님이 나를 부른다. 일본에서 크게 쓸 일은 없었지만, 꼭 선물해야 할 사람이 있어서 쇼핑을 하고 남은 돈이 얼마 있다고 했다. 성주주민대책위에 투쟁기금으로 넣어도 좋겠지만, 우리 대책위는 돈이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른다는 뒷담회를 잠시...

의미있는 곳에 돈을 쓰고 싶다고 한다. 성주는 참외생산이 한창이다. 여행경비 남은 돈으로 참외를 사서 투쟁하는 곳에 보내겠다는 뜻을 말씀하셨다. 아주 큰 돈은 아니어서 몇 박스나 살 수 있을지, 부족해보였다. 성주주민대책위 이종희위원장님께 이런 뜻을 의논해 달라고 부탁했다. 참외를 좀더 풍족하게 나눔하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부녀회장님은 마을주민이 농사지은 참외를 열한박스 구입했다. 나는 투쟁하고 있는 곳을 확인하고 택배를 보냈다. 물론 세상의 모든 곳으로 보낼 수 없었다.

오늘 참외박스가 소성리마을회관 앞마당에 쌓였다. 아주 많은 수량은 아니다. 지금 하필 참외가 무척 귀해졌다. 지난번 쏟아질 때를 놓쳐서 이제 두벌의 끝자락이란다.

성주주민대책위에서 참외농사짓는 위원장님과 위원들이 두 세박스씩 내기로 의논지었다고 한다. 재영아저씨는 알아서 제주 강정으로 보냈고, 정수씨는 우리 주변의 연대자들을 깨알같이 챙기고 있었다.

그러나 참외는 부족하다. 보낼 곳은 많다. 다 보내지 못해, 받지 못해 섭섭하겠다.

참외가 별거 아닌데, 사실 성주에 살다보면 때가 되면 참외철이 돌아오고, 참외가 나돌아다니기 시작하면 투쟁하는 곳의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런데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능력도 안되는데, 누군가가 좀 챙겨주기를 바라지만 눈치없는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른다. 꼭 그렇다는건 아니고, 눈빛만 봐도 느낌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부녀회장님이 알아봐주신거다. 우리가 연대를 받아 이만큼 온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아픔과 고난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아봐주신거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다가갈 수 있도록 당겨주는 역할을 해주신다. 부녀회장님은 마중물 같은 사람이다.

물론 참외 한 박스로 연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낯부끄러운 말이지만, 어디서 어떻게 싸우고 있을지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그들의 투쟁에 동참하고 눈으로 직접 만나볼 수 있어야 할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한다는 것 역시도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은 일인건 분명할거다.

사실 지금까지 소성리의 투쟁이 지탱되어 온 힘이 마중물이 있었기 때문이리라고 감히 말해본다. 그런 부녀회장님을 내가 감히 존경하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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