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는 날마다 파뤼

진밭일기 2018년6월13일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6월13일

“회비는 5,000원만 거두겠습니다. 단 거스름돈은 없습니다. 잔돈은 내주지 않을 겁니다.” 라고 했던 멘트가 오해를 불러일으켰나보다. 사람들은 아예 잔돈을 받지 않을 생각으로 1만원을 냈고, 5천원짜리로 바꿔서 낼까, 그냥 일만원을 낼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만원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내기도 했다.

나의 꿍꿍이는 회비는 5000원이고, 잔돈을 거슬러주는 게 귀찮으니까 아예 5000원짜리로 달라는 뜻이었는데, 혹시나 만원을 내거나, 오만원권을 내면 잔돈 받을 생각하지 말라는 의도도 있었으니, 뭐 이래저래 내 속내는 돈을 더 많이 거두려는 숨은 뜻이 없는 건 아니었다.

소성리로 올라온지 일 년이 넘었다. 여러 가지 명목으로 소성리에서 잔치를 했었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던 기억이 내게는 없다. 초창기 밤마다 마을회관에 모여서 장작 떼는 드럼통에 굵직한 고기를 구워서 묵은지에 쌈싸먹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때 체면을 차렸나? 뭔가 배부르게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소성리엄니들과 매일 진밭에서 퇴근피켓팅을 하는데, 나는 숯불파뤼를 하자고 했다. 6월13일 선거날, 선거운동하느라 고생한 사람, 마음 졸이면서 지켜본 사람, 진밭을 지키면서 사드부지 공사를 저지하려고 몸부림 치던 사람, 조미회담(북한과 미국)도 끝났으니 우리 모두 기다림에 몸서리쳐지지만, 우리 모두 고생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자고 의논했다.

엄니들께는 고기값은 내지 말고, 고기 쌈 싸 먹을거리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반찬통에 조금씩만 내주시면 상추랑 실컷 싸먹을 수 있을거 같았다.

사드를 반대하는 우리 이웃들에게 숯불파뤼를 하자고 제안하자 얼떨결에 하기로 하고, 회비를 거뒀다. 양파를 내겠다, 숯을 준비하겠다, 소주를 내겠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씩 내어놓으니 그것도 꽤나 많은 양이었다.

엄니들은 배추김치를 가져오고, 열무김치, 얼갈이물김치, 깻잎김치, 깻잎장아찌, 오이장아찌, 참외장아찌, 우엉장아찌, 양파절임, 이름을 알지 못해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각종 장아찌를 반찬통에 하나, 둘씩 챙겨오셨다.

탁자위에 엄니들이 가져온 반찬을 나란히 올려놓으니 풍족한 먹거리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남자들은 숯에 불을 부쳐서 달구는데, 색다른 무기 커다란 무쇠솥뚜껑이 등장했다. 참새방앗간 장사장님의 고기굽는 도구다. 뭔가 고기가 잘 굽힐 거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들었다.

엉덩이 가벼운 미야님과 묵묵히 일해주는 주야님이 등장하면서 일은 훨씬 수월해졌다. 탁자놓고, 반찬거리 구색갖춰서 놓아주고, 엄니들 챙겨주고, 고기굽고, 서빙하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두 사람이 있어서 나는 마음편히 있을 수 있었다.

경이롭다. 난 판만 깔았는데, 사람이 모이니까 일은 순식간에 일사천리로 척척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중엔 좀 더 고생스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날에 그 사람 아닌 다른 사람이 고생하겠지. 고생이 순번돌아가는 건 아니지만, 뭔가 순서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 듯 했다. 많은 사람이 팔을 걷어부치고 일을 돕는다.

그래서 인지, 이런 숯불파뤼나 잔치는, 이게 함께 고생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고기가 익기 시작하자, 엄니들도 한 상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 영재씨가 안 보인다. 고기 먹으러 오라고 연락을 해보니 진밭이 비어서 지키는 중이라고 한다. 강교무님은 김천촛불에 5분 브리핑을 하러 간 모양이다. 나는 진밭으로 교대를 해주러 올랐고, 영재씨는 식사하러 내려갔다. 진밭은 경찰들의 잡담소리로 웅성거리긴 했지만,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닿으면 무척이나 상쾌했다. 핑화는 내게 치대고 앉았고, 나는 핑화를 쓰다듬어준다. 그러다 핑화는 내 손목과 팔을 이빨로 꼭꼭 씹어대며 장난을 치다가 끝내는 주둥이를 얻어맞고서야 입을 벌려 이빨로 꼭꼭 깨무는 걸 자중한다.

진밭은 사람들이 쉬이 잊어버릴 곳이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까 걱정된다.

마음이 지쳐가는 날들이다. 조금은 지쳐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활력을 불어넣어 줄 일들이 생긴다.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조미회담이 그랬을까? 뭔가 변화가 있을거란 기대가 그랬을거 같다. 그 변화를 느끼는 건 그리 빨리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욕망이 그리 믿도록 했을지도 모른다.

모여 있을 때다. 함께 있을 때다. 마음이 지켜갈 때 가장 위로가 되는 건 함께 모여서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고, 한바탕 배꼽이 빠지라고 웃어댈 때, 내 안의 피로가 싹 날라가버린다.

엄니들과 함께 있으면 화통하게 웃을 수 있다. 엄니들과 함께 하면 그렇다.

그래서 오늘 숯불파뤼는 즐겁다.

소성리의 날마다 파뤼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