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엄니들,

진밭일기 2018년6월13일 새벽

by 시야

진밭일기 2018년6월13일 새벽

북미정상회담 시청을 위해 할매들이 마을회관으로 모였다. 텔레비전에 트럼프랑 정은이랑 손잡고 나왔다며 일이 잘 될거라는 기대를 한껏 하면서 텔레비전을 쳐다보지만, 상돌엄니의 눈이 퀭하다. 며칠 전 서울 광화문 평화촛불 밝히러 다녀온 길이 무리였나보다. 새벽 한시가 넘어서 소성리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텐데, 다음날 일요일은 김천촛불 가는 날이라고 빠지지 않고 다녀오셨다. 하루도 헐렁한 날이 없다. 소성리엄니들 만큼 바쁜 할매들이 있을랑가 모를 일이다.

소성리엄니들은 농사일은 손뗐다고 하지만, 농사를 안 짓는 것도 아니다. 고추, 마늘, 상추, 깻잎, 호박, 양파 등의 왠만한 집에서 식재료로 쓰는 채소는 다 농사지어서 쓴다. 평생 농사를 지어 산 사람들의 몸에 밴 새벽일은 여전하다. 상돌엄니는 아무리 늦게 자도 새벽 5시 전에 일어나서 밭일을 한다. 요즈음은 집마당과 밭에 돌을 캐내고 있다고 한다. 점심 먹고나면 소성리마을회관으로 슬슬 운동 삼아 걸어온다. 상돌엄니 마음에 우리가 빠지면 사람이 없어서 우야노? 하는 걱정과 또 어쩌고 있는고? 하는 궁금함과 이왕에 시작한 건데, 사드뽑을 때까지 나라도 좀 보태야지 하는 마을공동체 정신이 듬뿍 묻어나는 정이다. 늘 경임엄니와 단짝이 되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먼 길을 걸어서 소성리마을회관을 왔다갔다 한다.

소성리마을회관에 오면 오후 3-4시경에 성주사드기지 부대 정문에 “사드빼” 피켓팅을 하러 올라간다. 어떨 때는 두- 세명만 갈 때도 있지만, 왠만하면 엄니들은 외롭지 않게 힘을 보태주려고 다섯, 여섯 명씩 올라간다.

오늘은 금연엄니, 춘자엄니, 경임엄니, 상돌엄니, 경순엄니, 부녀회장님 여섯명이 올라가 부대앞에서 피켓팅을 했다. 올라가면 꼭 한 시간만 하지 않는다. 어떨 때는 두 시간 넘게까지 있을 때도 있고, 항의할 일이 생기면 더 오래 있을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할매들이 볼일을 보러 산비탈길을 내려갔다 오는데, 그게 너무 위험해 보여서 국방부에 화장실을 개방하라고 요구했었나보다. 국방부가 절대 안 된다고 딱 잘랐나보다. 칠 팔십대 할매들 화장실 쓰는 문제를 인정머리 없이 안된다고 하는 국방부가 얼마나 밉고 괘씸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엄니들은 화가 나서 화장실 개방을 요구하다가 결국 직접 화장실을 짓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화장실 지을 준비를 해서 부대정문을 올라갔다. 터를 잡았다. 화장실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깃발을 꽂았다.

화장실을 대충 만들고나서는 국방부나 경찰이 우리가 직접 만든 화장실을 어찌 했을까봐 지켜야했다. 물론 저들은 화장실을 어찌하진 않았다.

부대에서 내려오면 공사인부들의 퇴근시간이 다 되어간다. 진밭에서 퇴근피켓팅까지 한다. 그러고나면 저녁시간이 훌쩍 넘어서게 되어 요 근래는 마을회관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가 많다.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서 식사를 하셔도 밤 8시 쯤이면 소성리마을회관 마당으로 모인다. 하루일 중에 있었던 일들을 이바구 하면서 보낸다.

소성리엄니들이 매일같이 이런 일상을 살고 있다.

성주는 참외농사가 최고인 줄 알지만, 소성리부녀회장님은 참외농사만 안 지을 뿐, 마늘, 양파, 감자, 들깨, 고추, 배추 등 밭농사는 이것저것 오만 것을 다 짓는다. 거기다 메주 만들고, 청국장 띄우고, 된장담고, 철철이 두부까지 만들어야 한다. 참외농사 뺨칠 정도로 바쁜 농사일을 하고 있지만, 할매들이 있는 곳에 부녀회장님이 빠질 수가 없다. 정말 빠져야 할 만큼 바쁠 때는 할매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양해를 구하는데, 할매들 입장에서야 부녀회장님이 빠져버리면 허전하고 의지할 곳이 없으니 불안할 듯 하다.

상돌엄니가 피로할 만한 한 일상이다. 털털 웃음 지으면서 “괜찮아. 우리는 뭐 그냥 앉아있기만 하는데 뭐” 하고 사람좋은 대답을 해주지만, 연로한 연세에 매일 똑같은 빡빡한 일정을 다 소화해내기가 만만치 않을거다. 거기다 집에서라도 푹 쉬면 그나마 다행인데, 집으로 돌아가면 또 일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소성리엄니들이 유휴시간이 많아서 사드철회투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작 한반도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드를 소성리 쳐박아두고 있으니 애가 닳고 마음이 쓰이는 사람은 소성리엄니들 뿐인가 보다. 오늘도, 어제도 진밭에서 퇴근피켓팅을 할 때는 몇몇 엄니들과 상황실 구성원들과 마을주민인 나, 그리고 연대자인 고시인 정도다.

우리 소성리 엄니들, 소성리의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드철회투쟁의 가장 앞장서는 사람이 되었다. 피로가 쩔어서 눈이 퀭해지고,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져도, 자기가 빠지면 사람이 없을까봐 걱정되서 집에서 발뻗고 잠자지 못하는 우리엄니들.

엄니들께 송구스럽고, 면목이 없다. 결국은 젊은 것들은 다 빠지고, 늙은 노모들만 앞장서고 있는 이 현실이 가슴 메인다. 그래서 나까지 진밭을 오르지 않으면 우리엄니들 힘 빠질까봐 내가 소성리를 안 갈 수가 없다.

나는, 특별한 직업이 없고, 수입이 없으니, 노는 사람 취급 받는 게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나는 돈을 안 벌 뿐이지,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최소한 내 계획대로 살아가자면, 난 무척 할 일이 많은데, 일이 잘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하고, 답답해지지만, 그래도 누굴 원망하거나, 피할 생각은 없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거지.

그러나 나는 하루가 너무 짧고 빨리 지나간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다. 어째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