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청소년 인권은 어디로②

당혹스런 첫수업

by 시야

나는 청소년노동인권 신임강사단 양성 교육과정을 거쳐 학교현장 수업에 참관을 하게 되었다.

한학교에 한학년 전체에 동시 수업을 들어가기 때문에 큰 학교일수록 강사수가 많아야 한다. 아니면 두 번으로 나눠서 수업을 하게 된다.

대구청노넷의 강사단이 부족한 가운데 강사의 적정수업시간 2시간 정도 인데 몇몇 강사는 4교시를 연달아 해야 했다.

이선생님은 4교시 수업스케줄이 짜여있었고, 나는 3교시와 4교시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다.

노동인권수업은 2차시 수업으로 진행하는데, 1차시수업은 청소년인권 일반이고, 2차시 수업은 노동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전 골든벨” 퀴즈형식으로 진행한다.

이선생님은 20여년을 비산동 저소득층과 소외계층 아이들의 공부방을 운영한 전문가답게 학생들을 집중시키는 힘이 남달라보였다.

학교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아침출근길에 오늘 만날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과 인사는 어떻게 할지,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관심을 끌게 할지를 생각하고 학생들과의 첫만남을 상상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첫 수업을 참관한 교실에는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수업시작과 함께 학생들은 미리 준비나 한 듯이 책상 위를 말끔히 치우고 작은담요 같은 천을 꺼내서 쫙 펴더니 드러눕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드러눕는 사람도 있었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하더니 다행히 반 전체가 다 전멸은 아니고 한 손에 잡힐 정도 겨우 고개를 들고 있을 뿐 나머지는 책상위로 드러누웠다.

강사에 따라서 드러누운 채로 수업을 하기도 하고, 어떤 강사는 관심을 끌기 위한 뭔가를 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드러눕는 것을 강제로 깨워서 수업을 듣게 하는 분위기는 아닌 듯 했다.

교실의 분위기는 졸음이 쏟아지는 기운이 넘쳐흘러 나의 기를 다 빨아들이는 듯 했다. 나는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생각해봐도 이 심상찮은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채 내마음은 오묘하기만 했다.

명색이 인권강사로 왔는데 수업 중에 잠잔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법이었다.

사실 강단에서 힘들게 강의하는 사람 앞에 예의 없는 모습에는 화도 났다.

측은지심도 느껴졌다. 이렇게 할때는 뭔가 제각기 사연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학교에서 이건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한켠이 찌릿했다.

처음 접한 교실풍경에 내 감정을 들어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노동인권 교육 1차시 수업은 인권일반 내용이다 보니 학생들에게는 그냥 자장가로 들릴 수도 있겠다. 2차시 수업은 그나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좀 움직이는 방식으로 진행하다보니 잠자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퀴즈 풀고 상품을 받는 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나름 관심도 끌고 약간의 경쟁심도 유발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어떨때는 경쟁이 과열되어 점수를 주면 된다, 안 된다 하며 극심한 찬반토론이 되기도 하고 , 학생과 학생간에 또는 학생과 강사 간에 열띤 논쟁이 생기기도 한다.

이숙현선생님이 3교시를 내리 연달아 하시고는 너무 힘들었나보다.

내게 4교시를 부탁하신다.

“도전 골든벨” 퀴즈는 노동법 관련한 것이니 내가 잘 알거라 믿고 권하신다.

웬만하면 거절 할텐데 이선생님이 너무 힘들어하시는 듯 해서 보조를 받고 얼떨결에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다행히 노조상근활동 경력이 있어 설명은 가능했지만, 학생들과 공감을 이끌어가는 힘은 턱없이 부족한 듯 나혼자 흥분하여 열변을 토한 듯 하였다.

인권강사로서 용어사용에 관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 사용했던 언어가 때로는 권위적이고, 학생들에게 불쾌한 언어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어가 가지는 불편함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깊은 생각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 불편함을 타자에게 감수하라는 것은 옳지 않다.

나도 매 순간마다 청소년인권에 대해 생각하고 사고를 정립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결론을 당장 내리기 보다는 보다 많은 생각을 요한다. 그리고 바꿔나가야겠다는 정도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특성화고 3학년은 벌써 현장실습을 떠난 학생도 있었고, 현장실습을 나가기 위해 대기상태에 놓여있는 학생들이 많은데, 학교는 이미 학과수업을 하지 않는 듯해 보였다. 현장실습 나갈 때 까지 학생들을 정규수업시간동안은 학교에 붙잡아두고 있는 듯 한 인상이었는데 사실 그렇기도 하단다.

그러다 보니 노동인권 교육은 꼴랑 두 시간이지만, 그 시간 마저도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수업 중에 벌서러 가야 한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징계 맞으러 가야 한다는 학생도 있고, 취업관련 상담하러 가야 한다는 등 온갖 이유를 다 붙여서 수업시간에 나가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학생을 의심할 일은 아닌 듯 하였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불쑥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노동인권교육이 정규과목은 아니지만 엄연히 수업인데도 강사의 교권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교실 내에 예절이 지켜지지 않는 것도 이상할뿐더러 뭔가 시간 떼우는 느낌마저 들었다.

거기다 딴 반 학생이 친구 만나러 왔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자기반 수업할 때는 따분하고 재미없어서 넘 의 반으로 넘어오는 경우라고나 할까? 반원을 다 알 수 없는 당일 강사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긴 하지만 또 어쩔도리가 없이 신심을 다해서 학생들이 현장실습나가면 까맣게 잊어버릴지라도 나에게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그 옛날에 노동인권 강사가 요런 말을 했었다는 거 한번만 기억해줘도 오늘의 교육은 성과가 있는 것이리라 믿기로 했다.

어설프게 시작한 특성화고 노동인권교육 강사단 활동은 작년한 해 동안 얼마되지 않는 학교이나마 수업을 하게 되었고, 매 학교마다 다르지 않았던 건 수업 중에 하나씩 책상위로 드러눕기 시작하여 마지막 생존학생은 한손에 꼽을 정도 밖에 남지 않더라는 거였다.

처음엔 인권강사로서 드러눕는 학생들의 사연이 있을거라는 것을 충분히 헤아리자 마음 다잡고 수업을 하자고 생각했었다.

드러누운 학생은 전날 학교를 마치고 알바를 했을 것이고, 학교와 일터를 오가는 장시간의 피로가 학교는 휴식처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현장실습 나가기 전에 두 시간의 노동인권교육은 어쩌면 이 학생의 평생을 좌우하는 문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은 알바로 일하고도 임금을 제대로 못 받았을 수도 있고, 일한 것보다 임금을 적게 받았을 수도 있다. 임금을 받지 않는 무료노동을 강요받았을 때 거절하지 못하고 했을 수도 있다.

일하다 다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에 대면하게 되었을 때 인터넷을 통해서 문제해결방법을 찾거나 지인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피해의 학생은 “재수없다”며 침뱉고 쓰린 속을 달래면서 어쩔수 없이 넘어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 이시간은 좀 피곤하고 잠이 쏟아지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고 권리앞에서 잠자는 법을 깨우는 손짓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라도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잠자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부탁은 했어야했다.

수업 중에 피곤하면 좀 누워있어도 괜찮은데 잠자지 말고 귀는 열어두었으면 좋겠다. 수업 중에 눕는 것은 이해하나, 앞의 친구와 짝궁과 떠들고 수업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잠자지 않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교수법은 내가 연구해야 할 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한 노력은 강사로선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특히나 노동인권교육 강사로서 세상에 모든 학생들이 노동기본권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과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강사의 역할이자 몫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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