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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Aug 13. 2018

한 여름날의 제주 평화여정1

  

한 여름날의 제주 평화여정1


출발

올해 일찍부터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을 가자고 졸랐다.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동안, 알고도 혹은 몰라서 못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의 부채를 지고 있었지만 바다건너 하늘을 날아서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생명평화대행진의 기획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에 마음만 급한 나는 기획팀에게 영화“소성리”를 상영해달라고 부탁했다. 기획팀의 그녀는 의논해보겠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여주었다. 

소성리할매들이 제주로 갈 수 있는 의논은 활발했다. 성주주민대책위에서 할매들의 여행경비 중 차비를 지원해주기로 결정했다. 소성리할매들의 노래패 ‘민들레합창단’ 이름으로 제주생명평화대행진 마지막 문화제 공연을 하기로 했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가는 듯 보였다.  

나는 먼저 출발했다. 조금 싸고 조금 더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였다. 제주생명평화대행진 일정보다 삼일이나 일찍 7월26일 아침비행기로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공항리무진을 타고 강정마을로 도착한 나는 의례회관에서 열린 “섬들의 연대 평화캠프”에 참석했다. 

며칠 빨리 강정으로 가게 되어 강정의 주민에게 부탁해서 민박을 구했고, 때마침 “섬들의 연대 평화캠프”가 강정에서 열린다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에 단번에 참가하겠다고 답을 했다. 작년 제주생명평화대행진에서 섬들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시가키 섬에서 캠프를 한다고 했을 때, 가고 싶은 마음은 꿀뚝 같았지만 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마도 경비문제가 있었을테고, 언어의 장벽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다음 기회가 되면 참석하고 싶은 마음만 가지고 있었던 터라 우연히 알게 된 소식이지만 흔쾌하게 참석할 수 있었던 거다.     


해상훈련의 기록, 사진전

강정의례회관에서 열린 “섬들의 연대 평화캠프” 참가자들은 대만, 홍콩, 일본, 오키나와, 이시가키섬, 하와이, 한국에서 온 국제캠프의 성격이 짙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전의 세미나가 끝나고 점심식사 전에 해군기지 앞에서 인간띠잇기를 했다. 

미리 예약한 민박집은 의례회관의 맞은 편 주민의 집이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면서 열렬히 활동했던 주민이다. 내게 민박을 소개시켜 준 문희씨는 의례회관 바로 옆 건물 2층에서 갤러리 ‘살롱드 문’의 여주인이었다. ‘살롱드 문’에서  로드리고 세희 작가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바다에서 해상훈련과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마을의 주민들을 배경으로 한 사진에 푹 빠졌다. 사진집을 한권 구입의사를 밝히자 갤러리에서 만난 송강호박사님은 내가 57번째 선주가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 다음날 안 사실이지만, 사진작가인 로드리고는 내가 머문 민박집, 내 옆방에서 밤새도록 코를 곯아대던 사람이었다. 잠자기 위해 누웠다가 새벽에 눈이 번쩍 뜨여서 밤새 뒤척거렸던 첫날밤, 내 수면의 방해는 바로 옆방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코곯이 소리였었다. 

내가 57번째 선주가 된 사연은 대강 이렇다. 

로드리고 세희는 촬영감독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세계의 70여곳을 여행한 여행작가이기도 하다. 여행사진을 담은 에세이를 출판한 경력이 있는 그는 새로운 여행을 모색하던 중에 송강호박사를 알게 된다. 송강호박사와 그가 속한 단체 개척자들이 매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에서 해상훈련을 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 머물게 된다. 그 곳은 작은 바닷가 마을 루아오르라고 한다.  

사진집의 첫 문장은 “나를 그곳에 데려다 놓은 건 바람이었다.”

개척자들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에서 한 달가량 머물면서 해상훈련을 하고, 공평해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바다 <공평해(共平海)>는 공존과 평화의 바다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섬들인 제주와 오키나와와 타이완으로 둘러싸인 소위 동지나해를 돌고래가 뛰어놀고 산호초가 춤추는 맑고 푸른 공평해로 만들겠다는 꿈, 인간뿐 아니라 생물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공생하는 바다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거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바다는 더 이상 전쟁의 장이 되어서도, 군사훈련의 장이 되어서도 안되며, 무기를 운반하거나 실험해서도 안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은 공평해를 항해할 보트를 구입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로드리고는 이 멋진 계획에 가담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던 것이 촬영했던 사진으로 사진집을 내고 판매를 하기로 했다. 판매수익금은 전액 공평해프로젝트인 보트구입에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사진집 첫 출판수량은 3000권이다. 책을 구입한 사람들은 모두 선주가 되어 보트에 탈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 나는 57번째 선주가 되었으니 행운의 세븐이 아니더라도 보트를 탈 수 있다. 

로드리고의 사진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탁 트인 바다 한가운데서 다이빙, 낚시, 항해하는 장면과 물속에서 잠수하는 아이들의 표정이며, 마을에서 밥을 짓는 주민들의 몸놀림,  바다위로 우리를 이끄는 바람을 그림으로 그린 듯이 착각하게 된다.     


춤명상

‘섬들의 연대 평화캠프’에 늦게 도착한 관계로 카약타기와 춤명상 중에 선택의 여지 없이 춤명상에 들어갔다. ‘살롱드 문’ 갤러리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양인들은 모두 한국인이 아니다. 언어소통을 위해서 통역이 필요했다. 

나는 다른 언어를 구사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 숨죽이고 선생님의 말에만 집중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인참가자들 중에는 영어가 가능한 사람도 있었고,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도 있었다. 타이완의 참가자들은 일본어가 가능했고, 일본인인데 타이완의 대학교수인 분은 중국어, 일본어, 영어 가 다 가능했다. 다국적 언어가 한 자리에서 소통되고 있는 것을 지켜본 나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에 꽤나 신경을 썼던지 나중에는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춤 명상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춤을 배우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으니 대수롭지 않게 춤추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춤을 가르쳐 준 분은 테헤란 선생님이다. 

처음에 모인 우리는 각자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웠다.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어떤 자세로 있을지를 상상하면서 세상에 태어나 가만히 누워있던 아기가 세상을 향해 손을 뻗고 발에 힘을 주어 앞으로 기어나가 두 발로 서기까지의 자세를 재현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실제로 나는 갓 세상의 빛을 본 아기가 되었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서기까지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두 팔로 나를 지탱할 뭔가를 짚고 서고 온전히 두 다리로 서기까지의 과정은 희열로 땀범벅이었다. 

꼿꼿이 서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에어컨을 틀어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특별히 가르쳐준 동작은 아니었다. 걷는 발자국은 춤의 사위가 되었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나도 모르게 점점 빨려 들어가, 나도 모르게 나의 온 몸은 리듬에 맞춰서 움직여지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함께 둥근 원을 만들어 평화의 춤을 췄다. 

지금은 해군기지의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버렸지만 구럼비의 마지막 잔재들 위로 옮겨가서 평화의 춤을 추었다.  마주잡은 손을 놓칠세라 손가락 끝의 전율은 짜릿했다. 온 몸으로 느껴졌다. 음악에 맞춰서 리듬을 탔다. 뺨아래로 땀방울과 눈물방울이 뒤엉켜 흘러내렸지만 닦을 새가 없었다. 

발바닥 아래 구럼비를 느끼면서 춤췄다. 

구럼비야 안녕!! 우리가 왔어.. 너를 보러 왔어.. 너를 다시 보고싶어.. 

구림비야 사랑해!!!

구럼비야 사랑해!!!

구럼비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

내가 발딛고 서있는 구럼비가 내게 말을 걸어올 거 같은 춤을 췄다.     


강정마을주민총회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낡은 게시판, 게시판에 붙여진 종이 한 장, 임시총회 소집 공고다. 

‘대통령의 유감표명과 공동체회복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국제관함식 동의여부 주민투표의 건’을 안건으로 소집된 총회다. 이미 지난 3월 강정마을은 지난 12년간의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동안 마을 내 분열과 갈등의 상처가 깊었고 공동체 회복을 위해서 더 이상 상처를 후벼파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살얼음을 걷는 와중에도 국제관함식에 대하여 마을의 총의를 모아 반대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칠순이 넘은 주민이 국제관함식을 반대 하신 말씀은 

“국제관함식에 참가하는 나라들은 미국을 비롯해서 나토회원국들이고, 세계의 강대국들의 수장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관함식이라는 이름을 빌어서 자기들 나라에서 생산되는 최신식 무기들을 전시하고 그 자리에서 사고파는 거 아니냐? 

무엇보다 그들은 5일 동안 강정에 머문다고 하지만, 100척도 넘을 거대한 군함들이 강정에만 머물 수 없을 테고, 서귀포 앞바다를 다 둘러싸고 있을텐데, 군함이 머무는 동안에 바다는 엄청나게 오염될 게 뻔하다. 말은 5일이라지만 얼마나 심각해 질지 알 수 없다. 우리 어업에 큰 타격을 입게 될게 뻔하다“ 였다. 

말이 5일간 군함이 머문다고 하지만 세계 각국의 군장성들이 다 들어와 있을 5일 동안 군함은 밀고 닦고 씻어대느라고 오염물들은 바다로 버려질게 뻔하고, 핵잠수함을 비롯해서 군사무기로 인한 위해물질들이 얼마만큼 유입될지 알 수 없다. 

제일 문제는 세계 각국의 온갖 무기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박람회를 개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안에서 무기거래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게 되겠지. 세계자본들의 각축장이 될 국제관함식은 제주바다를 오염시키고 세계의 평화를 위협한다. 

제주도민 생존권을 위협하는 무서운 국제 군사행사다. 

국제관함식의 내용은 그렇다치자. 

중요한 건 이런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12년 만에 강정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서 국제관함식을 반대하겠다고 한거다. 그런데 청와대 비서실에서 두 주 동안 제주 강정으로 뻔질나게 들락날락 거리면서 주민들을 회유했다.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반영하겠다는 청와대가 지난 3월에 결정한 주민의사는 존중하고 반영할 생각이 없는가? 

청와대는 줄기차게  재논의를 요청했다. 주민들은 흔들렸다. 결국 어떤 뒷거래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강정은 12년 전의 아픔을 되풀이하는 위기에 놓여있었다. 

섬들의 연대 평화캠프가 시작되는 첫 날, 마을총회가 개최되는 불길한 상황 속에서 마을의 평화활동가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다음날 투표가 이뤄지고 국제관함식을 찬성하는 결정이 되어 앞전의 결과는 번복되었다. 강정마을은 또 한번 찬반으로 분할되었고, 처음의 갈등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 빚어졌다. 같은 마을의 주민이지만 강정해군기지가 건설되기 전부터 이주한 주민들과 이후에 이주한 주민들을 갈라쳤다. 강정을 사랑하게 되어 들어와서 주민이 되고 평화활동을 하고 있는 평화활동가들을 이방인 취급하는 정도가 넘쳤다. 사람들을 슬픔에 젖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문정권의 무능한 정책, 정치력에 의해 빚어진 실패작이다. 아니 원래 그런 정부였지만 잘 포장되어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번 국제관함식을 둘러싼 마을주민들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문재인정권의 행보가 그를 잘 드러내 주었는지도 모른다. 

국제관함식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면서 매일같이 해군기지 앞에서 평화백배와 인간띠잇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며 싸웠던 주민들은 해군기지로 인해 일어날 폐해에 대해 맞서 여전히 싸울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미워하게 만드는 전쟁과 폭력을 앞장세운 국가권력에 대항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면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투쟁하는 평화활동가들의 눈물이 아리다.         


제주여행지는 학살터다. 

우리는 짐을 챙겨들고 알뜨르비행장을 향했다.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에 의한 섯알오름 학살터도 둘러보았다. 

알뜨르는 제주방언으로 아래쪽 뜰이라고 한다. 문희씨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농촌에서 흔히 눈에 띄는 임자 없는 논밭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넓은 터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은 공군기지 였다.  비행 활주로와 격납고, 포진지들, 엄청난 규모의 전쟁기지였다. 중일전쟁을 도모하면서 이 곳에 공군기지를 세운 사실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해 식민지를 삼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다.  

제주 알뜨르비행장의 활주로를 타고 날아오른 전투기들은 중국대륙을 향해 비행하였고, 중일전쟁의 중요한 일본군기지를 가진 제주의 민중들은 그만큼의 희생을 치뤘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된 이후에도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빨갱이 사냥터가 된 제주의 곳곳이 학살터였다. 제주여행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이유다. 

섬들의 연대에 참가한 오키나와와 하와이 역시 식민지 민중들이 겪었을 만한 뼈아픈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어 다른 나라의 역사라고 하지만 자신들의 역사와 유사한 지점들을 간파했을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일개 국가의 기억의 전유물일 수 없다. 세계사적인 영향력 아래 놓여있어 기록되고 평가되어 마땅할 것이다. 

제주가 최근 다크투어가 유행한단다. 아프고 어두운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역사기행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서는 좋은 취지이긴 하지만, 역사를 기억만 해서야 되풀이되는 비극을 막을 수는 없다. 전쟁과 폭력의 역사, 비극이 더 이상 전개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로 돌아가서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할거 같다.     


섬들의 연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것 하나를 이야기 하라면?

아주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밥이라고 대답하겠다. 

의례회관으로 들어가면 왼편은 주방시설이 갖춰져 있다. 오른편으로는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갖춰져 있다. 더 오른편에는 문이 달려있는 방이 나란히 배열되어있어서 남과 여로 구분한 숙박이 가능하다. 

세미나와 여러 가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식당에서 여성 두 분과 남성 한 분이 부지런히 도마 위에 칼질 소리와 물흐르는 소리를 내면서 요리하기 바쁘다.  

‘섬들의 연대 평화캠프’를 하는 동안 아침과 점심, 저녁식사를 준비해주었다. 이 분들은 모두 강정의 주민이고, 평화활동가들이다. 

날은 무진장 더웠다. 에어컨을 틀어놓아도 별로 시원하지 않는 날에 주방에서 밥하는 일이란 사람들에게 잘 들어나지 않는 숨은 노동이다. 그러나 시간만 되면 주방과 식당 사이를 가르는 선반위로 밥과 국, 반찬들이 뷔페식으로 나열되어 있고, 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밥을 먹는다. 더욱 기억에 남는 건 ‘채식주의자’식단이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풍부한 식단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채식주의자들에겐 부실한 식사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나로선 조금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실제로 채식만 하는 분들이 있어서 준비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상황이기도 했었다. 

다만, 채식식단을 필요로하는 그/녀들에게 있는 음식을 알아서 먹으라는 것보단 그들을 위한 양양식 식단을 만드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여기서 주방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느낀다. 

주방노동을 전담한 그들은 그냥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평화활동가로서 국제연대의 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 주신 데에 경의를 표한다. 주방노동에 헌신한 그들의 노고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밥하는 노동은 누군가의 노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역할이 되고 노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기억하고자 한다.     


사람들

성주촛불은 사드가 확정되고 사드반대 촛불을 시작하자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제주강정에서 영자신문을 편집하는 최성희님은 성주사드반대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서 기사로 실어주었고, 성주의 여성들에게 큰 애정과 관심을 가져주었다. 

영화 ‘파란나비효과’ 공동체상영을 제주 강정에서 추진해 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최성희님은 내게 섬들의 연대를 설명해주었고, 소성리는 비록 육지에 있지만, 고립된 섬이라고 말씀해주었다. 바다에 놓인 작은 섬들의 연대에 고립된 작은 섬 소성리도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작은 시골 소성리가 세계평화의 성지가 되는 꿈을 꾸는 우리주민들에게 국제 평화활동가들이 모일 수 있는 뭔가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사드배치는 결코 작은 섬 소성리의 힘만으로 철회시킬 수 없다. 세계의 막강한 대국들의 패권질서를 확립하는 약육강식의 싸움 속에서 자주적이고 독립을 쟁취하는 아주 위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작년 제주평화행진에서 만난 낸 킴 교수에게 ‘섬들의 연대’가 이시가키 섬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만 해도 용기가 없었던 나는 아주 우연치 않게 참여하게 된거다. 내게 행운의 여신이 윙크를 한번 날려준 걸로 이해한다.  

일년만에 만난 낸 킴 교수와 오키나와 평화행진에서 만났던 다카하시 상을 만났다. 새로운 일본사람들과 함께 참석하여 오키나와 사정을 들려주었다. 오키나와 현의 작은 섬 이시가키 섬은 관광지로 무척 알려진 아름다운 섬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선 자위대 군대를 신설하려고 해서 주민들의 저항이 일고 있다고 한다. 작고 거무잡잡하게 이쁜 사라, 홍콩에서 온 숙희, 이름을 기억한다. 

타이완에서 온 조이는 모국어인 중국어와 일본어와 영어를 동시에 다 사용하면서도 한국어까지 공부하는 중이라고 한다. 한국어 발음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여러 나라 언어를 다 습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매우 놀라운 사실이며, 자극이 되었다. 

무엇보다 통역이 어려운 현실에서 일본어 통역을 담당했던 동석씨는 일본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통역하고, 한국 사람의 말을 일본어로 통역하면서 매우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무척 힘들게 홀로 통역을 장시간동안하고 있었다. 

한국인 중에는 영어와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동석씨가 더욱 애를 먹었을거 같다. 그런데 한편 무척 부러운 마음이 나를 점령했다. 아니 부끄러운 마음이 나를 점령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할 줄 모르는 나로선 타이완의 현안이나 하와이에 대해 궁금증이 무척이나 컸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 마지막 뒷풀이 자리에서 편케 통역해 줄만한 사람들과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간헐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참가자들 중 유독 눈길을 끌었던 타이완의 어느 대학 교수(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의 필리핀 광산이야기는 매우 궁금해서 꼭 다시 듣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마지막 자리에서 다음해 섬들의 연대 캠프지를 정할 때 유력한 후보지로 필리핀이 이야기 되기도 했다.  내년의 캠프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중간 프로그램 중에 “저항하는 섬 오키나와‘ 책의 저자 사토코상과 대담은 시간이 짧아서 질문을 충분히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정영신박사님이 사회를 맡았고, 현지의 활동가들과 타이완과 한국, 하와이 등 식민지 역사를 공유하고 전쟁반대를 위해 싸우고 있는 현재의 지점들이 맞닿아서 토론거리가 충분히 있었을거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책을 구입해서 현재 읽고 있는 중인데, 설명을 들었던 것 보단 못하지만, 오키나와의 사회, 역사, 문화, 전쟁증언들이 풍부하게 서술되어있다. 

공평해의 프로젝트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수피아와 로드리고 세희, 그리고 서울서 온 혜영씨 같은 친구들을 만난 것도 기쁘다. 그리고 우리 소성리 영화를 보겠다는 약속도 기분 좋았다. 실제로 혜영씨는 8월9일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시사회에 참석해서 영화를 보고 소감까지 내게 보내주었다. 음 뭔가 섬들의 연대를 통해서 내가 엄청 충만해진 건 기분탓일까?

음.. 마지막 술자리에서 인사를 나눈 중국어 통역을 맡은 진수씨.. 알고보니 철학전공의 비정규교수라는 사실에 마음이 짠했다. 그의 개인사는 모르지만, 대학 내 비정규교수가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학교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있지만, 교육주체로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 마음속에서 작동한 것이다. 물론 그는 그런 것과 관계없이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갈 사람이라 생각한다. 비정규직은 개인의 능력 탓이 아니니까. 이 사회가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희생이니까. 

모든 이들을 알 수 없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좀 더 깨어있고, 열려있는 사람들인 것만은 확실히다. 국경을 넘어서 평화를 원했고, 인간 뿐 아니라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공존하기 바랐다.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 우리는 싸워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실제로 각 나라로 돌아가, 자신의 삶터로 돌아가, 당장의 현안문제로 싸움을 해나가고 있는 이들이다. 

제국주의의 탐욕에 맞서, 국가공권력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다. 오키나와 헤노코에서, 제주 강정에서, 소성리에서, 군대와 전쟁을 반대하면서 말이다. 

평화로 이야기되는 모든 것들이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어떤 가치로운 일을 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우리는 섬들의 연대로 고립을 이겨나갈 것이다.      


섬들의 연대 선언

캠프막바지에 각 국의 나라 현안과 언어로 성명서를 쓰기로 했다. 각 나라별 대표 한 사람씩 모여서 성명서 내용을 의논하고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영어로 작성하고 각 나라별로 번역을 하기로 했지만 번역하는 작업은 통역과 달리 섬세한 작업인가보다. 금방 해내지 못하고 초안을 검토하면서 내용수정이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우선 초안수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각 나라별 언어로 낭독하느라,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내년을 기약한다. 고립되지 않기 위해, 저항의 지평을 열어가기 위해서 섬들의 연대는 계속 확장되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제 5 차 "평화의 바다를  위한 섬들의 연대" 성명서    

2018 년 제주 캠프의 주제는 "우리가 구럼비다"입니다. 구럼비는 우리의 투쟁을 위한 중요한 집단적 상징이자 결속의 근원입니다.  

현재 하와이 왕국의 중립성을 위반하여 매 2년마다 26개의 국가가 참여하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1893 년 이래로 하와이 왕국이라고 불리는 하와이 제도에 군대가 불법 점령 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또한 대지를 사랑하라는 의미를 가진 "알로아 아이나"를 외치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지지합니다.  

작년에 우리의 평화 캠프는 이시가키 섬에서 있었습니다. 이시가키 섬에서는 기지 건설 문제가 시급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류큐 군도의 이시가키 섬과 다른 섬에 미사일 기지 건설을 허용하면 전쟁이 발발 할 때 공격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7월 지방 정부에 의해 의결된 새로운 기지에 대한 동의는 건설 계획이 가속화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전세계 사람들이 그들의 섬의 군사화에 반대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목소리에 동참하였지만 일본 정부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오키나와 현 히가시 마을 타카에에 있는 미 군대의 헬리콥터 발착장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나고시 헤노코에 새로운 미국 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미군 항공기와 관련된 많은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대만에서는 타이 퉁과 타이베이의 네이후에 있는 잠재적 군사 시설의 건설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따라서  해외로 징집된 군인들의 비극적인 역사를 간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이완이 군대 지출을 줄이고 미국과의 군사 훈련 참여를 거부하도록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대중의 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홍콩은 이제 잘 알려진 국제 도시이지만 실제로 홍콩의 이름과 개념은 1841 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생겨났습니다. 나중에 지리적 우위로 인해 홍콩은 군대의 환승 지점이 되었고, 많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2018 년 3 월 강정 마을 주민 총회에서 10 월에 국제관함식에 반대하는 결정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결정은 부적절하고 타당하지 않은 과정을 통해 번복되었습니다. 관함식은 아직도 철수되지 않고 있는 경북 성주 소성리의 사드 처럼 2018년 4월 27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섬의 환경을 악화시키고 난개발 및 군사화를 통해 섬의 미래를 위태롭게 할 제 2의 제주 공항을 가장한 공군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성산 주민들과도 연대하겠습니다. 아울러 세계 평화의 섬으로써 전쟁의 폭력으로부터 탈출한 예멘 난민들을 제주가 환영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군사주의를 종식시킬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한다

우리는 관함식의 취소를 요구한다

우리는 세계 평화의 섬 제주도의 부당한 재 군사화를 종식시킬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미야코, 이시가키, 아마미 오시마 및 제 2 제주 공항의 기지 건설 계획이 백지화 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타카에 (Takae), 헤노코 (Henoko), 요나 구니 (Yonaguni) 및 기지의 공사 철수를 요구한다

우리는 난개발을 막을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인간 존엄성, 국제법 및 양심의 정치를 존중하여 우리 섬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를 요구한다    

2018년 7월 29일 

평화의 바다를 위한 섬들의 연대    


「열매의 글쓰기 2018년8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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