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야 Aug 27. 2018

작고 작은 일이 모이면

작고 작은 일이 모이면    

날이 더워지자 고추장은 발효되기 시작했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저장성 좋은 물품들을 주로 취급했지만 무더운 날씨에 효소는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어떤 변형이 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열 달 가량 장사해서 투쟁기금도 1200만원이상 만들었으면 할 만큼은 한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장사로 내 시간을 다 쓸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장사가 아니니까.

나는 작가지망생이다. 좋은 책을 읽고 사색하며 좋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소성리평화장터는 위기에 처한 소성리가 고립되지 않고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가 되어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렇게 한 것도 같고, 누군가에겐 무척이나 부담을 준 장사꾼이 된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여름의 무더위가 찾아올 즈음 점방휴업을 선언했다. 사실상 소성리평화장터의 점방문을 닫았다. 시원섭섭한 마무리다.     


나는 작가훈련의 바쁜 시간을 보냈다.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루는 눈뜨자마자 어두워졌다. 매일 한권의 책은 읽었다. 어린시절 읽었거나 만화로 보았던 ‘톰소여의 모험’ 같은 명작에 빠져서 하루에 한권씩 읽어댔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에 푹 빠져있기도 했다. 우리 시대를 이야기하는 르포책을 읽느라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다. 무더위를 이기지 못해서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도서관으로 피서를 떠나있었다. 제주에서 기나긴 연대일정을 보내고 왔다. 

내 인생을 설계하고 계획한 대로 살아내기 위해서 여름을 보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소성리평화장터는 온라인 밴드를 개설했다. 

성주에 사드가 배치된 날부터 지금까지 사드를 반대하는 수많은 성주주민들이 있지만 모두가 투쟁의 일선에 나서지 못한다. 보이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드가 뽑히길 바라는 마음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성리평화장터가 그런 마음의 발현이었던거다. 

진밭을 지나가는 사드공사를 막지 못하고, 집회에 나와서 ‘투쟁’을 외쳐대지 못하고,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도 사드를 반대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총알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소성리평화장터가 유지되기를 바랐다.     

무엇이 사드를 뽑는데 기여하는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나을거 같은 건 어쩔 수 없는가보다. 무엇보다 소성리가 고립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작은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기울지 않도록 말이다.

장터의 운영방식은 조금 변화를 주었다. 집회장소에 점방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나는 계속 평화장터에 매달려 일할 수 없고, 수요일 집회나 토요일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온라인밴드로 운영하기로 했다. 밴드는 평화장터의 점장이 모든 물건을 판매할 필요가 없다. 생산자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든 소중한 농산물이나 가공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하여 수익금은 생산의 적정가격을 보장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로 했다. 투쟁기금은 개인의 자발적인 연대이었으면 한다.      

소성리평화장터 밴드는 사드를 반대하는 생산자 또는 판매자가 정직하고 안전한 물품을 소개하고, 제공해준다. 사드를 반대하는 이용자는 직거래를 통해서 신선하고 질 높은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되 생산의 적정가격을 보장해 신의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물품을 통해 투쟁기금을 만드는 것보다는 사드반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모은다는 취지를 더 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드를 뽑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싸움을 오랫동안 해 나가려면 투쟁기금은 필수다.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 각자가 정의로운 투쟁에 후원을 하는 것으로.     

소성리평화장터 시작하면서 물품을 내어준 약초들녘에서 공급가를 대폭 낮춰서 헌신했는데, 이제 생산자들의 허리를 졸라매는 방법으로 유지하지 말자는 취지이다. 물론 평화장터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야 할 인건비가 없다는 것도 감안해서 말이다.  

나는 물론 이 일로 돈을 벌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평화장터의 수익금을 만들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처음 밴드를 만들고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선도상품은 ‘호두나무도마’다.  흔치않은 수제품인 호두나무의 인기를 통해서 밴드를 홍보했다.

마음씨 착한 목수는 나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원불교 교무님이 제공해준 보화옥고와 소성리부녀회장님표 된장과 간장은 평화장터 수익의 원천이다. 큰 돈벌이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소성리의 주체들이 내는 물품으로 최소의 기금을 만들어 사드반대활동에 쓰자는 취지인거다. 상징성도 있어서 예전의 것을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민들레합창단의 총무님인 태환언니가 평화장터의 수익금을 만들기 위해서 풋사과를 키웠다. 곧 풋사과가루를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번 제주생명평화대행진에 민들레합창단이 연대를 다녀와서 꽤 많은 비용이 지출되었다. 평화장터에서 풋사과가루를 판매해서 메꿔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음을 써주는 것이 이쁘고, 역할을 해주는 것이 참 신기할 때가 있다. 

가장 많이 연대활동을 하는 곳에서 돈도 가장 많이 쓰이는 법이다. 소성리할매들의 민들레합창단의 왕성한 활동에 기금을 만드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다. 

소성리평화장터 밴드를 가볍게 시작했지만 결코 가볍게 다가오진 않는다. 뭔가 장사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도 모르게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한 여성의 메시지를 받았다. 지리산에서 사는 분이 밴드에 가입을 했다. 

예전에 영화 <파란나비효과>를 마을에서 공동체 상영 했었다고 한다. 공동체상영에 참석한 성주주민께서 참외를 한 박스 들고 오셔서 마을사람들이 나눠먹었던 기억, 영화를 보고는 성주사드반대 투쟁에 대해 알게 되었던 기억, 성주에 관심이 있었지만 어느덧 잊고 있었던 것을 소성리평화장터 밴드가 성주사드반대 투쟁을 소환해준거다. 다시 지리산과 성주가 연결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그녀의 메시지를 받고는 가슴이 울컥 했다. 비록 소성리로 달려오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고 싶다는 그녀의 메시지가 내게 큰 용기를 불러주었다. 

밴드에 모인 사람이 며칠사이 백육십명이나 된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아니다. 호객행위를 하는 곳이 아니다. 한반도의 불행에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소성리를 천만관객이 보았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다. 천만명이 영화를 보면 사드는 쉽게 뽑지 않겠냐고 우스개 농담을 했었다. 

소성리평화장터 밴드에 천명이 모이면 좋겠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한반도의 불행한 역사가 종지부를 찍지 못해 전쟁의 흔적들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연결되어지면 좋겠다. 

한반도의 어디에도 필요 없는 사드뽑고, 주한미군 철수시켜야 한다. 제국으로부터 온전한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     

https://band.us/@soseongri2017    

「열매의 글쓰기 2018년8월27일」




매거진의 이전글 사드반대 외쳤던 당신의 목소리 잊지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