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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Oct 31. 2018

고추부각

깜깜한 밤중에 수천댁할매가 검은 봉다리 들고 도로가에서 나를 기다렸다. 내가 안 내려오니 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는 오나 안오나 내다보셨다고 한다. 검은봉다리에 뭐가 들었나 했더니 고추부각 만들었다면서 한 봉다리 주신다. 예전에 징기땍할매가 한 포대 주실려고 했던 걸 소성리아랫마을 할매들끼리 모여서 고추부각을 만들었나보다. 한봉다리 소희 준다고 들고섰다. 참나.. 깜깜한 밤에 내가 언제 내려올줄 알고?


꿀밤을 얼마나 주웠길래 또 묵 한뭉티기도 내주신다. 봉다리 두개 건네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하고는 집으로 내달렸다. 할매들이 용을 써가면서 만들었을 묵이며 고추부각이며 하나같이 귀하지 않은게 없다. 언능 가서 간장 만들어서 먹어봐야겠다 싶어서 열심히 달려서 집으로 갔다.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솜씨는 없지만 찍어묵을 간장을 만들어서 묵을 한접시 먹었다. 고추부각도 그냥 놔두면 하세월 될 거 같아서 후라이팬을 꺼내서 기름을 둘렀다. 


수천댁할매가

...

 내게 튀겨먹으라고 했던것만 기억이 나서 기름을 넉넉히 붓는다고 부었는데, 뭔가 타는 느낌이 들고 연기가 펄펄 난다. 튀기는데 기름이 부족한가 싶어서 다시 더 둘러부어서 끓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가스불 앞에 서있으려니까 연기는 심상치 않게 더 나고 온 부엌이 연기로 가득차다. 고추는 조금만 튀겼지만 다 탔다. 이상타. 
하던 걸 멈추고, 기름은 신문지로 닦아내고, 어떻게 해야할지 망연자실하다가 쪄보기로 했다. 
냄비에 물을 붓고, 체반을 받쳐서 고추부가 몇개 올려서 쪘다. 그래도 이상타. 찔겨서 씹지 못할 정도다. 
이를 어째야 하나? 
아이고 모를 일이다. 이걸 어째 먹어야 할지 대략난감 정도가 아니라 완전 개망했다. 
다음날 눈뜨자마자 후라이팬에 다시 기름을 조금만 붓고 달궈서 고추부각 몇개 올려서 이러저리 둘러대면서 볶았다. 그냥 저냥 먹을 만 해보여서 간장에 찍어먹었다. 바삭바삭 고추부각 맛이 느껴졌다. 
겨우 먹을 수 있을 정도는 한거 같은데 뭔가 2프로 부족하다. 그래도 간장에 찍어서 먹었다. 


오늘 소성리 야간시위를 마치고 할매들과 내려오는 길에 수척댁할매랑 징기댁 할매께 고추부각 잘 먹고 있다며 고맙다고 다시 인사를 드렸더니 징기댁할매가 내게 튀겨서 먹었제? 하고 묻는다. 대충 둘러대면서 기름 조금 붓고 볶아서 먹었다고 하니, 아이고 튀기는 걸 한번 가르쳐 줘야겠구나 하신다. 눈치가 구단일테니 내가 오죽 잘 해먹을까 싶었을거다. 


줘도 못먹는 안타까운 노릇이다. 


아이고 할매들이 애써서 만든 귀한 음식들 다 내 뱃속으로 넣어두어야 할텐데, 고추부각은 할때 마다 고민이 끔찍할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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