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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Nov 27. 2018

전기는 할매의 눈물을 타고 흐른다.

전기는 할매의 눈물을 타고 흐른다.    

영광핵발전소 정문으로 다가갈수록 가장 인접한 마을에는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현수막 한 장 붙여져 있지 않았다. 소성리 임순분 부녀회장님 눈에도 그런게 예리하게 관찰되는지 내게 불만스럽게 “핵발전소 반대하는 현수막이라도 한 장 붙여놓지 아무것도 없네” 하신다. 

사람들의 의구심을 일축하겠다는 의도인지 “상생발전, 성산리와 한빛발전” 이라고 쓰여진 커다란 간판이 떡하니 세워져 있다. 간판의 가장자리에는 ‘성산리주민일동’이라고 표기되어있다. 

영광핵발전소가 마을에 얼마나 큰 돈을 뿌려서 사람들의 불만을 일소시켰을지는 알 수 없다.마을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지 않고는 예단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분명한 건 상생이 가능할 수 없을 만큼 핵발전소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위험성이 지구재앙으로 드러났다는 것은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를 통해서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가장 인접한 거리의 마을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상황에서 겪어야 할 엄청난 재난을 상상해본다면 마을 도로가로 세워진 저 커다란 간판의 ‘상생발전’이란 말은 참 기만적이고 폭력적이다.     

영광탈핵순례 6주년 행사가 시작될 때 행사 주최 측에서 내게 발언을 요청했다. 급구 거절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성리에서 온 내가 소성리의 상황을 이야기 해야겠지만,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영광핵발전소 가장 가까운 마을 앞에 현수막 한 장 걸리지 않은 사연이 궁금했고, 삼평리마을의 할매들이 생각났다. 이미 오래전에 세워진 영광핵발전소 문제로 마을도 분명 떠들썩했을텐데, 마을은 지금 어떤 생각으로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을까?    

삼평리 345kV 송전탑을 반대하며 마지막까지 싸운 주민들은 스무 명도 안된다. 그중 열한분의 고령의 할매들이 싸웠다. 처음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선다고 알려졌을 때는 마을주민이 전원 반대했었다. 젊은 사람들이 반대하면서 들고 일어나니까 나이든 할매들도 함께 반대했고, 송전탑이 들어서면 안 되는 수만 가지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장섰던 이장을 비롯한 젊은 주민들이 등을 돌리고 한전과 협상을 하더니 뭔가 보상을 받기 시작했을 때 반대해야 할 이유가 수만 가지가 넘는 걸 알고 있던 할매들은  왜 이제는 반대하지 않는지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할매들과 몇몇 주민들은 끝까지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면서 싸웠다. 송전탑이 들어서기까지 최소 6년 이상을 터 닦는 건설공사를 저지시키려고 싸우면서 온갖 폭력을 당해야 했었다. 송전탑 공사는 한달만에 부리나케 완공되었다. 싸움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하루가 멀다하고 달려왔던 연대자들의 발길은 점점 소원해졌다. 나도 성주에서 삼평리까지 달려가 연대했었지만, 싸움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삼평리로 달려가던 발길은 뜸해졌고, 성주에 사드가 터지면서 거의 찾아가지 못했다. 법률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송전탑 문제가 핵발전소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위험천만한 핵발전소를 폐쇄시키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반핵의 과제를 낳은 투쟁이기도 했었다. 

삼평리할매들이 한전의 썩은 돈은 일절 받지 않겠다며 송전탑공사를 반대했었다. 마을은 한전과 어떤 협상을 했는지 한전에서 대어준 돈으로 복지회관을 지었고, 할매들이 쓰던 마을회관을 폐쇄했다. 할매들은 한전의 더러운 돈으로 지은 복지회관에는 발도 넣고 싶지 않아서 폐쇄된 마을회관의 문을 열어젖혔다. 마을이장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마을회관을 팔기로 결정을 해버린 상태다. 그리고는 마을회관을 할매들이 불법점유하고 있다면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소송을 벌였다. 마을이장이 할매들을 고소해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쯤 재판의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참을 가보지 못해서 최근의 사정은 나도 잘 모른다. 이 글이 주제넘은 거 같아 송구스럽다. 

중요한 건 송전탑공사로 인해서 수없이 한전과 국가로부터 폭력을 당해왔던 삼평리할매들이 마을공동체에 의해 위로받기는커녕 자신의 정당성과 명예를 훼손당하면서 핍박을 받고 있으니 억울하고 분통할 노릇이다. 할매들의 바람은 다른 거 없다. 한전이 지어준 복지회관은 당신들이 이용하든 말든, 할매들은 송전탑 반대했던 자신의 투쟁이 정당하고, 돈에 굴복당하지 않겠다는 거다. 명예롭게 투쟁을 정리하고 싶다는 뜻이었을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전의 음모이지 않나? 마을을 둘로 쪼개고, 평생을 이웃하면서 살아갈 사람들의 마음에 칼집을 내서 서로를 원수처럼 대하게 만든 이 모든 것이 한전의 계략이 아니고 뭔가?

사실 최근에 삼평리에 찾아가보지 않은 나로선 삼평리를 말할 자격이 없기도 하다. 

영광핵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의 사정은 알 길 없지만, 저 안에도 분명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을테지.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고 두려워하는 이도 있었을테지. 먼저 떠난 사람들도 있었을테지. 어떤 이유로 현수막 하나 걸지 못했을 지는 깊은 내막이 있었을테지.     

‘태양과 바람의 땅으로 생명,평화,탈핵 살리고 살리고’ 영광탈핵순례 6주년을 맞아서 지금까지 핵발전소를 당장 멈춰라고 소리내면서 걸어왔던 사람들이 계속 해서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집회가 있는 날이면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삼평리 마을에서, 영광핵발전소의 인근마을에서 핵발전소가 문제라고 깨우치고 저항했던 사람들이 분명히 자신이 했던 행위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당신이 옳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걸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소성리마을은 사드를 뽑으려고 싸우는 중이다. 마을공동체에는 여러 생명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보니 하나의 입장과 하나의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늘 불안불안 살얼음판을 걷는다. 작은 균열은 갈등과 불화로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형체로 드러날지 알 수 없다. 바깥세상의 정세는 또 어디로 움직여갈지 예측이 어렵고 예단할 수 없다. 조화롭다는 건 또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그러나, 분명한 건 오늘 같은 영광탈핵순례길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핵은 전기만 생산하지 않는다. 전쟁무기도 생산하고, 억압과 착취를 지배하는 세계질서를 재생산한다. 수많은 저항은 좌절하지만 소멸되지 않는다. 나와 부녀회장님이 영광탈핵순례길을 걷게 된 사연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 들이 걷고 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열매의글쓰기 2018년11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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