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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Feb 19. 2019

그런데 이게 뭐람.

새해의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다짐했다. 성주사드기지까지 걸어서 오르겠다고. 

사드를 뽑아야겠다는 다짐은 감히 하지 못했다. 사드는 내 힘으로 뽑을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니까. 그러나 매일 새벽이슬을 맞으면서 진밭에서 평화기도회가 열리고, 한 사람의 소망이 여러 사람의 소망이 되어 간절히 기도하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기도만으로 어렵다면 더 많은 사람이 행동할 때면 어느 순간 사드가 스르르르 물러갈 날을 맞게 되지 않을까.

여러 날을 새벽 일찍 일어나 소성리까지 달려갔다. 소성리마을회관에서 차를 주차해놓고 성주사드기지까지 걸어서 올랐다. 진밭을 지키고 있는 평화가 나를 보면 두발로 서서 껑충껑충 뛰면서 반가워해주었다. 매일 평화기도회가 열렸다. 나는 두 손을 합장하여 인사를 드리고 진밭교를 너머서 성주사드기지를 향해서 걸었다. 

내 등뒤로 강형구장로님의 노랫소리가 울린다. 어떤 날은 백창욱목사님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진밭교 위로 찬송가 노래가락이 울리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여런 날을 성주사드기지로 올랐다. 평화기도회를 마친 사람들은 작은 돌돌이 음향엠프와 마이크를 챙겨들고 올라왔다. ‘ 사드빼, 미군빼’ 현수막을 펼쳐들고 사드가 놓여있는 군대를 향해서 외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맺힌 말을 한다.     

하루는 평화행동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이웃에 사는 농부가 딸기를 따러 와 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애처로운 목소리였다. 일하러 오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아서 애를 먹는가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일이라고는 해 본적도 없는 내게 연락을 했을까 싶어서 거절하지 않고 달려갔다. 예전에 알바를 한 적은 있었지만, 한참동안 일을 해보지 않아서 돕는 게 해를 끼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걱정이 앞섰지만 나보다 더 답답한 사람이 아마도 농부일테니까 내 걱정은 붙들어 매어두고 일을 도왔다. 

딸기 하우스는 예전보다 더 웅장해 보였다. 딸기를 심은 고랑도 훨씬 더 높게 쌓아올렸다. 딸기는 추위를 잘도 버텨내고 있었다. 고랑을 높게 쌓았다고 해도 밭은 밭인지라 허리를 숙이면서 일하는 게 결코 편치 않았다. 한 고랑을 다 따기도 전에 허리를 몇 번이나 폈다 수그렸다 하면서 아픈 허리를 달랬다. 눈에 띄지 않게 잘 숨어있는 빨간 딸기를 찾아서 이리저리 어리숙하게 따냈다. 

농부는 화학농약 한 방울 뿌리지 않고 딸기를 키웠다. 비료도 쓰지 않았다. 그야말로 유기농딸기였다. 땅심으로 크는 딸기다. 새콤하고 달콤한 딸기는 탄력도 좋아서 며칠이 지나도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 금방 밭에서 딴 딸기의 신선도가 가장 큰 매력이다. 

농부는 아침 8시 전에 밭에 도착해서 딸기밭을 돌본다. 8시부터 딸기를 따기 시작하면 점심시간 전까지 따야한다. 하우스의 비닐도 올리고, 가지치기며 솎아치기도 한다. 딸기가 잔손질이 많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나면 따놓은 딸기를 제일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으로 구분해서 담고 포장한다. 미리 주문받기도 하고, 포장하는 동안 들어온 주문 순서대로 딸기를 배달한다. 포장이 다 될 즈음에 직접 밭으로 찾아 오는 손님도 있고, 딸기를 찾아갈 수 있도록 맡아주는 점포도 있다.  그러나 주문한 집까지 배달할 일도 많다. 

대량으로 생산하지 않아서 공판장에 내놓을 물량은 아니다. 유기농딸기의 가치를 과일도매시장이 알아봐주지도 않는다. 

지역 내에서 주민들 간에 직접 거래하고 있다. 그 날 딴 딸기는 그 날 다 팔려나간다. 이 곳의 딸기 맛을 본 사람은 다른 곳의 딸기를 먹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고 칭찬도 자자하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먹거리라고 인정받았다.  

최고의 열매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이 곳의 딸기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잘 자라주어 최고의 딸기가 되어주었나보다.    

아침 일찍 성주사드기지로 걸어 올랐다. 이 곳에서 터를 잡고 수 백년을 걸었던 길에 사드가 들어왔다. 미군이 끌고 온 사드는 군대를 만들었다. 수 백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았던 사람은 이방인이 되었고, 얼마 전 사드를 끌고 온 군대는 산꼭대기에서 군림하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건 길뿐이 아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일하는 농부는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양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양식을 농사짓는다. 내 입에 들어갈 양식이니 남의 입에 들어가는 양식도 소중한 법이었다. 몸에 해로운 약은 치지 않고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서 제 몸을 아끼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인정해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농부의 마음은 그런 것이었다.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믿어왔으니까. 

그런데 이게 뭐람. 

미군과 사드는 성주 소성리 달마산 꼭대기에서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철조망을 쳤다. 한국군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왜관의 미군부대에서 고엽제 약품을 땅속에 파묻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던 기억이 뚜렷하다. 미군부대에서 30년 이상 군무원으로 일했던 소성리 전 노인회장님이 노발대발 사드기지를 반대했던 이유는 폐기름을 말도 못하게 마구 흘려버린다는 거였다. 미군은 자신의 나라도, 자신이 살아갈 땅도 아닌 이 곳에서 쓰레기를 마구 생산하고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버려대고 있었다.  

철조망 안으로 우리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알지 못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고, 물이 오염되면 땅이 오염되고, 성주땅은 삽시간에 오염되고 말거다. 소성리와 경계를 이룬 김천땅은 오염되지 않을까? 

농부가 아무리 건강하고 좋은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밤잠을 설쳐대면서 농사를 지어도 저 꼭대기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렵고 불안한 형국에 우리가 안전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성주사드기지 앞에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속에서 울화통이 터졌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저 사드때문일거란 공포와 확신이 상호작용한다.  

농부의 발자국을 듣고 자란 최고의 열매는 사드와 미군부대가 물을 오염시키고 땅을 오염시켜서 인간에게 해로운 열매가 되고 말거란 불안과 공포에서 헤어나고 싶었다. 

야 이놈들아 마음편하게 농사짓고 살고 싶다. 어서 떠나라. 미국사드 미군들이 이고지고 이 땅을 떠나란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니 놈들이 이 산꼭대기에서 버티고 땅을 오염시키면 우리 인간사회는 병들고 말테다. 그런데 인간사회만 병들까? 다른 생물들도 밤새도록 켜놓은 엘이디 불빛에 잠들지 못하고, 가로막힌 철조망 때문에 마음껏 뛰어다니지 못하고, 오염된 물과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이 병들게 뻔한데, 우리가 사드를 어떻게 반길 수 있겠냐 말이다. 

이 땅은 너희들이 떠나야 숨쉴 수 있다. 

구름사이에 얼굴을 내미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열매의 글쓰기 2019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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