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벌써 4년이 지났다.
구미공단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소식과 노조를 만들자 마자 해고를 당했다는 소식, 그리고 금속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 독자노조로 투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공장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는 걸 전해들었을 때, 마침 한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가다 하듯이 옥수수를 수확했었고, 상품을 내기에는 부족하지만 먹는데는 아무 하자 없는 못난 옥수수 한 자루를 들고 구미공단으로 향했었다.
공장 앞에 8차선 도로 양 쪽으로 쭈욱 늘어선 궁궐 같은 천막농성장의 규모에 놀랐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매주 수요일이면 투쟁문화제를 하던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여름 한철은 투쟁문화제를 쉬게 되면 더더욱 볼 일이 없어지는데, 주로 연대하는 남의 투쟁사업장에서 만나게 되고 안부를 물을 때가 많다. 그러다가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 때 시작하는 투쟁문화제 마저도 바쁜 연대일정 이나 민주노총의 큼직한 상경투쟁으로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있어서 공장으로 향하는 발길은 뜸해졌다. 또 투쟁이 길어지다 보니 소홀해지게 되고, 거리가 멀다보니 소홀해지게 되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연대는 소홀해지기 쉽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세상의 모든 투쟁에 연대하고, 연대는 마치 일상활동이 된 듯 보였다.
나의 소홀한 연대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솟아서 올해는 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바쁜 또록의 글작업을 일단락 매듭지어놓고,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소원했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마음만 먹었다. 마음이라도먹어서 얼마나 기특한가.
공장 선전전 할 때는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공장선전전은 월요일 아침 7시 30분에 하는 걸로 들었다. 때마침 갈려고 계획하고 물어보니 영대의료원 도보행진에 사수조 빼고는 전원 참석키로 해서 화요일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물어보길 잘 했다며. 화요일 아침에 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반드시 새벽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잠자리에 들면서 주문을 외웠다. 선전전할 수 있도록 시간 전에 도착해야겠다고 알람을 맞췄다. 넉넉하게 5시30분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6시10분에는 출발하겠다고. 절대로 알람을 손가락으로 누지르는 법은 없어야 한다고. 다시 잠드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거리다가 알람이 울릴 땐 귀신같이 알아듣고 쏜살같이 일어나서 양치와 고양이세수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정확하게 7시에 아사히글라스 공장앞 천막농성장에 도착했다.
주차하는 사이 성환씨가 천막 밖으로 나와서 내 차를 흘낏 쳐다봐주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더니 저 멀리 종섭형님이 길다란 나일론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본 철농조 종섭형님과 성환씨는 의아해 했고 선전전하려고 왔다는 내게 취소되었다 알려줬다.
전 날 영대의료원 도보행진은 14.5킬로미터 정도 거리였는데, 하루 종일 가을바람 맞으면서 걸었던 조합원들이 지치고 피로했나보다. 아침 선전전을 취소하고 조금 늦게 출근하기로 이야기가 된 모양이다.
선전전 일정은 알려줘도 취소일정은 절대로 알려주는 법이 없다. 이건 진리다. 그래야 사람을 오게 만든다.
일정이 취소되어 황당한 심정이 없지 않았지만, 다행히 천막농성장에 사람이 있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니 다행스럽게 생각했고, 위안했다. 먼거리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종섭형님은 천막농성장 바깥 도로변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낙엽을 쓸기 시작했고, 성환씨는 쓸어담아 버리기 시작했다. 나도 청소를 거들고 싶은데 쓰는게 쉬울까? 담는게 쉬울까?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려보니 담는게 나을 거 같아보였다.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손에 쥐려고 하자 성환씨가 화들짝 놀라서 내 손에 쥔 것을 뺏아서 자신이 쓸어담기 시작한다. 나더러 쉬라고 손사래를 치는데, 난 쓸어담고 싶단 말이야 하며 마음속으로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았을거다. 함께 해야지 하면서 결국 길다란 대빗자루를 들었다. 인도위로 흩뿌려진 낙엽을 싹싹 쓸어서 도로로 쓸어냈다. 잔가지를 엮어서 묶은 대빗자루는 무겁고 뻣뻣하지만 낙엽은 잘 쓸리는 편이었다. 어찌어찌 인도위에서 도로쪽으로 쓸어대면 낙엽이 잘 쓸려서 내려갔다. 신통방통한 빗자루 같으니라고.
제법 긴 거리를 쓸어내는 동안 종섭형님은 표정 한 번 바뀌는 법이 없었다. 묵묵히 비질을 해내는 데 숙련된 솜씨였다. 나는 무거운 대빗자루를 들고 쓸다가 멈추다가 쉬다가 다시 쓸다가 반복했는데, 한결같이 묵묵하게 쓸기는 조금 버거웠다. 그래도 천막농성장 처음부터 주방농성장을 너머서까지 쓸어냈다. 성환씨는 쓸어서 모아놓은 족족이 쓸어담아서 버려주었다.
어쨌든 낙엽은 쓸려나갔고, 낙엽을 모아서 치웠다. 한결 깨끗해진 도로와 인도를 보니 마음도 개운해졌다.
조금 있으니 수일씨가 농성장으로 도착했다. 그도 선전전이 취소된 걸 몰라서 일찍 출근을 한거지만 다른 사람들은 9시까지 출근이라서 시간이 흘러 한 사람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오는 사람마다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왜 왔나 의아해했다가 선전전이 취소되었다는 걸 모르고 온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9시에 출근한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확대간부회의를 했고, 전체 회의도 이어서 했다. 의논할 것이 많았다. 오랜만에 노조회의를 구경했다. 참석해야 할 일정도 많고, 회의도 많다. 그리고 의논해야 할 일들도,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힘있게 추진해야 할 일들도 많다.
5년의 투쟁, 긴 시간을 유지하게 해온 노조의 비결은 뭘까? 좀 더 세심히 관찰하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
<열매의 글쓰기 2019년 11월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