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야 Nov 14. 2019

사드 오기전엔 싱싱한 사람들

어제밤이었다. 난로가에 모인 할매들과 이바구를 하다가 금연할매가  '사드 들어오기 전에는 다들 싱싱했는데,  사드 들어오고나서부터 시름시름 앓더만 일년에 벌써 일곱명이나 죽었다' 하신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해서 빵 터졌다. 


며칠전 조실댁 김의선할머니가 별세하셨고, 그 며칠 전에는 모산댁(이름을 모르고 있었다.)할머니가 홀로 조용히 집에서 별세하셨다. 모산댁할머니는 구십이 넘는 장수한 분이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사부작사부작 집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고추도 말리고, 볕도 쬐러 나와서 앉아계시곤 했었는데, 어느날 소리소문 없이 돌아가셨다. 그 전에 안동댁 권정술할머니가 병원에서 손도 못 써보고 세상을 등져야 했고, 그 전에 노옥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신천수어르신이 돌아가셨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어른 한 분이 돌아가셨다. ...
한 해 동안 한 마을에서 일곱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니 예사롭지 않다. 정말 사드가 들어오고부터 마을의 기운이 쇠해지는 건 아닌지 살짝 긴장이 되었다. 
남실댁 할머니는 치매가 심해져서 할아버지와 함께 아들네 집으로 가셨는데 부애가 나서 한번씩 택시타고 소성리로 오셨다가 가시기도 했지만, 앞으로 소성리로 돌아올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아마도 돌아오시기 힘들거라고 모두 이야기한다. 성주댁 임길남할머니가 지금으로선 소성리에서 가장 장수하셨는데 치매로 고생을 하는 중이다.  



소성리 평화지킴이 현철이가 소성리 밤하늘의 별이 된지 일년이 되었다. 사드기지 앞 잘 자란 나무에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사드기지에서 미군놈들이 무슨 짓 하는 지 잘 감시하고 소성리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늘나라에서도 잊지 않았을 현철이 떠나보낸지 일년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도 ‘누나’ 하고 부르던 어수룩한 목소리가 내 귓전에 들린다. 
나도 쥬스 좀 줘 하는 데 싫어 라고 야멸차게 거절했던 것이 미안해서 태환언니네 사과즙을 한박스씩 방에 넣어주고 실컷 먹어뿌라 했던 코미디 같은 일들이 간혹 웃음으로 남는다. 
지금도 소성리밤하늘 어디엔가 희미한 빛을 내뿜으면서 난로가 할매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겠지. 소성리할매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현철이 소성리를 떠날 수 없을거다. 
선하고 진솔한 청년 조현철로 영원히 기억할게.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도 죽음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죽음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나는 자꾸 피하게 된다. 


생각지도 않았던 노란패딩을 선물받았다.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기억하기 위한 행동을 열심히 하지 못한 내게 과분한 선물을 주신 @김수창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한편으론 부담이 크다. 세월호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내가 그러지도 못하고 있기도 하고,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기억하고 행동해야 할지 생각해보고 생각해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는 사드가 배치되어 군사시설이 되어버린 현장에 서있다. 노란패딩은 평화행동의 작업복으로 입어야겠다. 
사드와 세월호라...
군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겠다. 군대가 필요한 건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세월호가 말해주었다. 군대가 필요한건 군사적 긴장을 높여서 취해야 할 이득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드가 말해주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현실의 아픔과 고통은 결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세월호의 진실은 누구에게나 밝혀지길 바라는 염원이었으면 좋겠다. 
첫째로는 세월이 흘러도 잊어서는 안되는 우리모두의 아픔이고 고통이고 슬픔이고 반드시 밝혀내야 할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사드기지로 아침기도회를 하러 가지 못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꼭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키고 있다. 지난 주는 3박4일 순회투쟁을 따라다니는 바람에 자리를 비웠다. 
진밭이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수행자는 외로움을 이겨내며 기도하겠지만, 
새벽일찍 눈을 뜨고 홀로 선요가를 하는 선명교무님이 있는 진밭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현욱교무님이 기도준비를 하셨다. 작은공간이지만 아늑하고 따뜻한 진밭평화교당에서 잠깐 동안 명상에 잠기는 것도 좋다.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한반도 평화기도문을 읽는다.
사드기지도 계절을 거스를 수는 없는 듯이 단풍이 절정이다. 가을이다. 곧 겨울을 부르는 가을을 사드기지에서 맞는다. 평화행동하고 나면 오전10시까지는 기지정문 앞을 지키고 있다. 우리가 있으면 누가 와도 군대는 문을 열지 않는다. 길을 비켜줘도 군대가 문을 열지 않아서 바깥에서 올라온 차량은 우리의 일인시위가 끝날때까지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10시가 다 되어서 군대로 들어갈 차량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줄을 서서 내가 가기만 기다리고 있다. 
견뎌내는 것이 투쟁일까? 버텨내는 것이 투쟁일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하는 건 투쟁인가? 
투쟁이 아니어도 좋다. 사드기지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사드기지 앞에서 사드가 필요없다고 말하는 게 나은 거 같다. 
10000일동안 하게 될까? 10000일이면 내 나이가 칠순이 넘을텐데, 
「열매의 글쓰기 2019년 11월13일」

매거진의 이전글 비정규직 이제그만 톨게이트 직접고용 3박4일 순회투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