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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Dec 11. 2019

언제부터 내게 다가온 것들

언제부터 자연스럽게 굳어졌다고 해야 하나. 화요일이면 저녁시간에 소성리에서 명상요가를 한다. 처음엔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날 명상요가를 할 때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는 걸 느꼈다. 내 일찍 명상을 했더라면 성질머리가 이 모양은 아니었을텐데, 후회막심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명상요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화요일은 부지런히 소성리로 가서 마음을 고요히 집중시킨다. 마음이 고요해진다.

또 언제부턴가 화요일만 되면 미군숙소로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군을 대면할 수 있는 곳, 군대를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곳, 군대가 골치아파할 곳,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산길을 걸었는데, 첫날부터 나랑 영재씨 둘뿐이었고, 그 다음엔 서울에서 온 교회분들이 많이 가서 다행이었고, 그 다음부턴 또 강굠님이랑 둘만 오른다. 처음 미군숙소로 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모두 바쁜가 보다.
오늘도 둘이서 산길을 걸었다. 동지를 홀로 걷게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미군숙소로 걸어간다. 꼭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 샘솟는다.
처음엔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면 이제 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들이 귀를 막고 있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언어로 듣기를 바라면서, 영어구호를 준비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어단어로 조합해서 대충 말 했는데, 이젠 영어공부의 목표가 생겼다. 이참에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저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눈물과 고통을, 소성리의 아픔을, 한반도가 겪는 위협을,
들어줄 거란 기대가 있는거 아니다.
땅이 얼었다. 내려오는 길에 강곰님이 몇번이나 미끄러졌고, 나는 첫판부터 미끄러지면서 워낙 쎄게 소리를 질러서 내 소리에 놀라서 아픈 줄도 몰랐다. 그리고 내려올 때는 정말 조심조심 살금살금 내려왔다. 그렇다고 험한 산길 아님.

원래 미군숙소 다녀와선 톨게이트 농성장인 김천본사로 가는데, 오늘은 부녀회장님네 김장하는 날이었다. 마을회관 김장할 때 서울가는 바람에 도와드리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오늘은 일을 거들었다. 절임 배추 꼭다리 따는 일을 도맡았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맨손으로 하다가 손시려워서 죽을뻔, 고무장갑 끼고 하니까 괜찮았다. 어른들은 배추치대느라 바쁘다. 빨간 양념이 얼마나 맛나보이던지, 일하면서 몇번이나 배추에 양념발라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일거들다가 톨게이트로 넘어갈라고 했는데, 밥먹고 가라고 붙잡는 바람에, 굴이 온다는 바람에, 고마 의리를 져버리고 주저앉았다.
톨게이트에 자주 가보지도 못하는데, 오늘도 못가서.

결국 배터지게 먹고는 아직까지 소화가 안된다.
소성리가 제일 안전한 곳인거 같다.
세상은 너무 무서운 일이 많다. 세상으로 나가는 건 두렵다.


열매의 글쓰기 2019년12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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