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소성리 야간시위
소성리 난로가에 둘러 앉아서 이바구를 나눌 때였다. 문득 생각난 듯이 소성리부녀회장 순분씨가 말했다.
“할매들 우리 말 나온 김에 내일 올갱이 국밥 먹으러 갈까? 예전에 서울집회 올라갈 때 황간에서 올갱이국밥 먹었자나. 그 때 그 집 또 갑시다.”
소성리 할매들은 가자고 하면 어디든지 간다고 맞장구를 쳤다. 소성리난로가는 그렇게 의논하고 결정하고 약속을 정하고 실행을 하다 부딪히면 점검하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었다.
다음 날 10시30분 소성리마을회관으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황간 까지 우리를 태워서 달려갈 원불교 봉고가 있다.
“이 할매들 어디든지 가자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거절하면 다음에 안 델꼬 가는데 열심히 따라다녀야지”
“연대하러 갈 때 안 간다고 하기만 해봐라”
“연대고 뭐시고 데리고 가기만 가봐라 어디든지 따라다닐낀께”
차 안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소성리할매들의 노래패 민들레합창단 단원 열 명이 왁자지껄하게 들어선 식당은 허름하고 보잘 것 없지만 오랫동안 올갱이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말하자면 민들레합창단 단합대회는 올갱이국밥을 먹으면서 하게 된 셈이다.
방에 둘러 앚아 올갱이국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순분씨는 지난 주에 톨게이트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는 김천본사를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 투쟁문화제를 하는데, 내가 마이크를 잡고 둘러보니까, 4-50대 되는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이라, 건물 안이라 괜찮을 줄 알았더만, 휑하게 다 뚫려가지고, 바람이 여기저기서 들어오니까 얼마나 춥던지, 도로공사는 히터도 안 틀어주다가 그 날 처음으로 조금 틀어준거래, 밤에는 꺼버린다고 하대. 거기도 모여있으니까, 노래 연습해서 투쟁문화제 때 합창단이 노래공연을 해요. 그거 보니까, 우리 생각이 나더라. 처음에 사드 들어와서 정신 놓고 있을 때, 할매들이랑 밤마다 모여서 멍하니 있지 말고, 처음으로 투쟁가 배웠던 거 생각나대요. 동지가 불렀자나. 우리가 먼저 겪은 일인데 싶어서 우리가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고, 거기 찾아가서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아주고 오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매들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는 듯이 날을 잡자며 만장일치로 응해주었다.
나는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 날은 어쩌다 건물 안에 들어갔지만, 김천본사는 경찰들이 상주하고 있고, 검문을 하고 있는 곳이라 투쟁문화제를 건물안에서 못 할 수도 있었다. 김천의 거친 골바람을 맞으면서 투쟁문화제를 하기에는 소성리할매들이 너무 연로하였다.
내가 걱정을 비추자
“경찰들 보고 건물 안에서 하게 길 비키라 하면 되지, 안 비키주면 삐집고 들어가뿌면 안되나?”
할매들은 세상 걱정이 없었다. 가자고 정했으니까 가면 된다.
그 날 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함께 노래 부르기 위해서 노래연습을 시작했다.
소성리의 따끈한 연대 시리즈
날이 점점 추워지고 싸움은 길어졌다.
한국도로공사 이강래사장은 톨게이트노동자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대법원에서 톨게이트 요금수납업무를 해왔던 노동자들은 도로공사의 직원이라고 판결을 내렸지만, 도로공사는 1심 판결자는 임시직으로 고용하겠다고 하더니 이젠 1심 판결자도 직접고용하겠다고 조금 진전되는가 싶더니만 또다시 2015년 이후 입사자들에 대해선 1,2심 판결도 무시하고 대법원판결을 받아오라며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진흙탕을 만들어버렸다.
한국의 공기업 사장이 대한민국의 법치를 흔들어댔다. 법치를 흔들어대는 무례한 자에 대해 대한민국의 법치는 구속력이 없었다. 당당히 불법파견 아이콘이 된 이강래사장은 퇴임식도 거룩하게 치루지 못한 채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며 불명스럽게 길을 나섰다.
소성리할매들은 법으로 직접고용해야 한다는데도 왜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 자신이 만들고 지켜야 할 법을 지키지 않고, 한 때는 한 솥밥을 먹었던 식구를 이리도 모질게 내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성리가 큰 도움이 될 수는 없지만, 한 겨울을 이겨낼 수 있도록 따끈한 연대를 하고 싶었다. 소성리 사드를 철거하기 위해서 애정을 쏟았던 평화지킴이들은 톨게이트노동자들이 한국도로공사 김천본사로 들어갔던 날에 김천으로 달려갔었다. 건물로 들어가 버린 노동자들을 위해서 성주의 약초농가는 와송빵을 구웠고, 소성리평화지킴이들은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서 우유와 차를 준비해서 넣어드렸다. 텐트를 치고 노숙에 동참하고, 크고 작은 집회나 문화제가 있을 때면 찾아가 응원을 했다.
또 다시 톨게이트노동자에게 따끈한 연대를 하기 위해 소성리평화지킴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차와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즙을 준비했다.
12월 20알 금요일, 드디어 민들레합창단이 톨게이트 김천농성장으로 공연하는 날이다. 공연 전에 리허설을 위해서 출발 30분 전에 모였다. 합창단 박공주께서 리더로 나섰다. 송아저씨의 장구와 조은님의 멜로디카가 반주를 맡았다. 노래 전주와 간주를 맞춰보고 음과 박자에 맞춰서 노래연습을 몇 번이나 하고서야 출발했다.
도로공사 김천본사 문은 쉽게 열렸다. 농성장이 위치한 본사건물 후문까지 차를 타고 들어갔다. 경찰은 우리가 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길을 터주었다. 후원물품을 실은 수레를 끌고 민들레합창단은 당당하게 건물로 들어섰다.
톨게이트노동자들은 우리를 살갑게 맞아주었다.
자리를 정돈한 직고광장에서 톨게이트노동자 직접고용쟁취를 위한 투쟁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투쟁구호도 큰 소리로 외쳤다.
괜히 숙연해졌다.
차디찬 바닥에서 생활하고 있는 젊은 새댁들을 보면서 할매들이 가슴을 친다. 벌써 수년동안 국가폭력에 저항하면서 싸워온 할매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젊은 새댁들이 가슴을 친다.
팔십 평생 처음으로 배웠던 투쟁가 ‘동지가’를 젊은 새댁들과 손에 손잡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따뜻한 손등에 눈물이 뚝뚝 흘렀다.
홀로 싸울 때도 옆에서 지켜준 이가 힘이었다.
롯데상사가 롯데골프장을 국방부로 부지교환 하기로 결정하자마자 철조망을 가득 실은 헬기가 소성리 상공으로 날아왔다. 사드가 배치될 군사지역이라며 부지 둘레는 철조망으로 둘렀다. 진밭교부터 경찰들이 통제하기 시작했다. 어느 새 군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마을 길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했다. 경찰의 검문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불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밭교를 지나면 순분씨의 감나무밭이 보인다. 감나무밭으로 일하러 가는 순분씨도 경찰의 검문을 당했다. 순분씨는 항의 했다. 경찰은 출입증을 만들라고 했다. 순분씨는 내 밭으로 가는 길에 출입증이 왠말이냐며 거부하고 싸웠다. 감나무밭을 갈 때마다 싸웠다. 경찰은 진밭교를 건너지 못하게 길을 가로 막았다. 순분씨는 다리 아래로 내려가 냇가로 발을 담가서 건넜다. 덩굴이 우거진 비탈길을 걸어서 밭으로 올랐다. 경찰은 우왕좌왕 따라다녔다.
순분씨는 감나무밭에서 일하는 동안 경찰의 감시를 당해야 했다. 끝까지 출입증은 만들지 않았고, 곧 진밭교는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순분씨가 혼자서 당차게 싸울 수 있었던 건, 진밭교에 천막으로 평화교당이 세워져서 원불교 교무님이 한 두 분이라도 계셨다. 순분씨가 경찰의 포위를 뚫고 온갖 저항행동을 할 때 진밭교에 계셨던 한 두 분이 큰 힘은 없다 하더라도 옆에서 지켜주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리 난간에서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일도 있었고, 더럽고 치사하고 굴욕적인 일도 당했다.
소성리할매들의 노래패 민들레합창단은 고난의 길을 걷는 이들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다. 따뜻한 소성리의 온기를 느끼길 바랐다. 장기간 투쟁으로 피로해진 톨게이트노동자들 앞에서 ‘민들레청춘’을 공연했다. 열화와 같은 앵콜 신청을 받으면서 ‘에헤라 친구야’를 노래불렀다. 눈물이 앞을 가려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없었다.
투쟁문화제가 끝나고 톨게이트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넓디 넓은 농성장을 구경시켜주었다. 한국도로공사 김천본사 2층은 전부다 톨게이트노동자들의 농성장이되었고, 투쟁본부였다. 예전에 비해 상당수가 서울로 상경했다. 광화문에 천막농성장을 만들고, 민주당 25곳의 의원실을 점거했다. 날마다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 진격투쟁을 하고 있다.
김천본사는 사람이 줄어든 만큼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의 면적은 넓어졌지만, 겨울의 추위는 오롯이 남은 사람의 몫이 되었다. 서울에서, 세종에서, 김천에서 톨게이트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면서 싸우고 있다.
김천본사 농성장은 스티로폼 박스와 종이박스로 공간의 경계를 짓고, 칸칸이 책장과 선반을 활용하는 지혜를 보여주는 개인공이 만들어졌다. 지붕 없는 작은 집에 그/녀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공간과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연결해주는 거리는 계획도시 같은 반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있는 직고용광장이 있다. 이제 도로공사의 정규직도 함부러 침범할 수 없다.
소성리할매들은 알고 있다. 당신들이 옳다는 것을,
우리가 옆에서 지켜봐 줄테니까 거침없이 투쟁하면 좋겠다고 노래로 이야기하셨다. 투쟁으로 당신들이 목표하는 것을 꼭 쟁취하길 바란다는 메시지였다.
깊은 우물은 흔들리지 않듯이,
당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꼭 지키고, 옳다고 믿는 길을 떳떳하게 걸어가시라.
우리는 소성리를 지킬 것이다. 사드가 철거되는 날까지 노래를 부르고 연대하면서 투쟁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지켜야 한다.
홀로 더럽고 치사하고 굴욕적인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