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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Sep 10. 2020

소성리부녀회장, 법정에 서다.

             대한민국 검찰이 2018년 8월 26일 소성리부녀회장을 법정에 세웠다. 

검찰은 “피고인은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부녀회장이자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성주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성주주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2017년 4월 26일 경 소성리 일대에 사드기지가 배치되자 사드를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하며 다수의 언론매체와 인터뷰하고, 사드반대 활동을 전개하여 오던 중 2019년 3월 16일 13:00 경 성주군 초전면 소성2길 129 등지에 설치된 사드배치 군부대 외곽철조망 앞에 이르러, 그 곳은 사드운용을 위한 군사 시설 및 인력의 주둔지로 철조망과 안내표지 등을 통해 군부대의 경계를 표시하여 그 내부로 일반인의 출입금지하는 지역임을 알면서도, 군부대 경계 지점인 3초소와 21초소 사이에 있는 철조망과 지면 사이의 틈을 벌리고 철조망 아래를 통하여 군부대 부지 내부로 들어간 다음, 철조망을 따라 산 아래 방향으로 약300미터 상당을 도보로 진행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인 대한민국 육군과 주한미군이 관리하는 건조물을 침입하였다. ”     

2017년 4월 26일과 9월7일 사드가 배치되기 전 그 곳은 소성리마을이 영험한 산이라고 믿는 달마산 자락의 너른 들판 진밭이다. 진밭은 소성리부녀회장이 꽃다운 스물 젊은 날에 시집 와서 40년 넘는 세월을 나물을 뜯고 약초를 캐서 쌈짓돈을 만들었던 곳간이었다.       

“우리 애들 어릴 때, 조실댁할매가 우리를(7부녀회) 진밭에 데리고 가서 취나물을 가르쳐줬어. 하루 종일 취나물 뜯어서 한 자루는 머리에 이고, 한 자루는 손에 들고 질질 끌면서 마을로 내려오면 가마솥에 삶아, 볕에 말려가지고 시장에 내다팔았지, 내다팔면 돈도 솔찮게 들어오거든, 그게 재미있어서 다른 건 모르고 취나물만 주구장창 뜯어서 삶았어” (임순분)     

봄이면 취나물을 뜯으러 산에 올랐다가 고사리와 산두릅도 채취하고 다래순을 땄다. 둥굴레가 지천이라 열심히 땅을 파면 뽀얀 뿌리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흙구덩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둥굴레를 캐서 삶고 말려 덖어서 물을 끓여마셨고, 야생버섯은 술을 담았다. 산나물 뜯고 약초를 캐서 술을 담아놓으면 10년 후에 약으로 먹겠다고 술병을 정성스럽게 닦으면서 세월은 흘렀다. 중년이 되고, 예순이 넘은 할머니가 되도록 걸었던 길이 진밭이었다.      

사드가 4기 추가배치 되었던 2017년 9월 7일 만 여 명이 넘는 경찰병력에게 마을이 짓밟히는 절망 속에서도 농부는 봄이 오면 씨를 뿌려 가을이면 추수를 했다. 목구멍에 거미줄 치는 법은 없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믿고 민초들은 절망의 시간을 노동하며 견뎌냈고, 다시 봄이 왔을 때,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사드기지가 되어 버린 진밭을 찾았다.      

한 시간이면 다녀왔을 길이었다. 사드기지로 둘러쳐진 철조망을 따라 옛날 옛적에 농사를 짓기 위해서 달구지가 다닐 수 있도록 닦아놓은 옛 길은 모두 사드기지 주한미군의 땅이라며 칼날이 번쩍거리는 철조망이 감싸 버렸다. 마을주민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구불구불 가파른 굴곡진 비탈길을 걷느라 발목이 꺾였다.

약초 캐러온 소성리부녀회장과 주민들이 진밭을 오르자, 기지에서 군인이 총을 매고 쫓아나왔고,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총을 매고 뒤따라오는 군인은 위협적이었다. 한참을 돌아서 김천 노곡으로 갈라지는 높은 바위절벽에 다다랐을 때 (사드기지 3초소와 22초소 사이 어디쯤)에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철조망이 처져있었고, 바위절벽은 너무 위험해서 지날 수가 없었다. 

총을 매고 따라온 군인에게 철조망을 열아 달라고 수 차례 부탁해보지만, 군인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다시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던 주민들은 바위절벽을 넘을 용기가 없었다. 군인에게 철조망을 열어주지 않으면 날밤을 새더라도 내려가지 않겠다고 수차례 항의 끝에 군인이 철조망을 열었다. 비록 낭떠러지 계곡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로 놓인 철조망을 조금 열었지만, 소성리부녀회장과 주민들은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고, 2018년 봄날에 둥굴레를 아주 조금 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진밭은 사드기지가 되어버렸지만, 소성리의 젊은 시절을 품고 있는 진밭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소성리주민들은 곤욕을 치루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사드기지 둘레길 철조망을 조금씩 걷어서 통행로를 확보했다.        

2018년 봄날 나물을 뜯으러 갔던 험난한 여정은 2019년 3월로 이어졌다. 3월16일 소성리부녀회장과 주민들은 도시락과 물을 배낭에 담았고 둥굴레를 캐러 산길을 걸었다. 사건발생 현장 인근인 3초소와 22초소 사이로 전 해에 수차례 다니면서 철조망을 조금 열어 통행로를 확보했다고 생각했는데, 예년보다 철조망은 두 겹, 세 겹으로 쳐졌고 일행은 길을 헤맸다.      

소성리부녀회장은 예년의 경험을 비춰 군부대를 향해 철조망을 열어달라고 요구했었다. 우회로에 높은 바위를 둘러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하지만, 절벽이었다. 경사가 급해 불편할 뿐 아니라 위험한 길을 가고 싶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려고 허공에 매달려있는 CCTV를 보고 소리쳤다. 내보내달라고 소리치면서 군인을 불렀다. 불러도 불러도 아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나오지 않았다. 철조망을 따라 걷다가 틈이 벌어진 사이로 들어간 곳이 사드기지 안이었다. 

군부대의 군인이 달려오긴 달려왔지만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드기지 안으로 들어온 소성리부녀회장을 CCTV로 발견하고 달려왔다. 그제서야 안전하게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소성리부녀회장이 사드를 탈환하거나 무기를 탈환하기 위해 기지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다. 내 집 앞마당 다니듯이 봄이면 나물 뜯고, 약초 캐던 길이 막혀 헤매다가 도움을 받기 위해서 군인을 불렀다.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나이 예순이 넘은 여인을 사드기지 주한미군과 국방부는 그녀를 법정에 세웠다. 대한민국의 검찰이 그녀를 건조물 침입죄로 기소할 수 있도록 넘겼다. 그들은 고소한 적 없다고 한다. 경찰이 내사를 착수했고, 착실히 수사하여 기소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제 예순 여섯의 소성리부녀회장은 재판을 시작한다. 몇 년 후면 재판이 끝날까. 재판하는 시간은 홀로 외로이 법정에 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드반대의 시간이다. 한 나라가, 한 나라의 군대가, 한 나라의 경찰이, 한 사람의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 시간이다. 같은 민족, 같은 국민이라는 허울 속에서 미국의 안보를 위해, 미국의 최첨단 무기 사드를 지키기 위해서 이 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여인을, 한 국민을 법정에 세운 사건이다.

한 나라가 주권을 포기하는 모습을 여실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재판의 여정은 사드를 반대하는 여정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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