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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n 16. 2021

소성리를 쓰다

「소성리를 쓰다」     

2021년4월28일 공사침탈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매월 마지막주에 공사자재를 실어나르는 침탈이 있을거라고 예상 했었지만, 2021년 들어서 1월22일과 2월25일 두차례 들어오고 3월을 건너뛰어서 당분간 조용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들었다. 4월도 막바지까지 별다른 낌새가 없는 듯 보였는데, 나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4월28일은 경찰병력 규모가 평소보다 훨씬 많은 느낌이었고, 우리측 집회대오의 진압도 신속하게 이뤄졌는데, 사드발전기가 노후되어 교체해야 했는지, 발전기가 들어갔다고 했다. 공사자재를 실은 트럭이 40여대는 족히 들어간 거 같았다. 경찰병력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투입된 이유가 있었던 거다. 공사자재만 들어갈 경우에는 경찰병력은 보통 500-700 명 수준이라면 사드장비와 관련한 뭔가가 들어갈 때는 수 천 명의 병력이 배치되고 작전의 양상도 훨씬 거칠고 험악하고 신속하게 이뤄진다. 그만큼 사드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소성리마을의 주민들과 연대자들을 향한 핍박이 심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나서 2주 만에 또다시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5월 14일 금요일은 부산의 신라대학교 투쟁문화제를 갈 계획이었다. 전날 낮까지만 해도 아무 소식을 듣지 못했고, 한가했었다. 갑자기 13일 목요일 한밤중에 다음 날 공사자재가 반입될 예정이라면서 긴급공지가 올라왔다. 소성리로 집결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느분이  새벽5시까지 소성리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주었다. 나는 마감해야 할 원고가 있었다. 소성리로 가게 되면 하루종일 싸워야 할 지도 몰라서 새벽2시 되어 원고를 마감하고 잠시 눈을 부쳤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새벽4시에 눈이 뜨였다.  

대충 얼굴만 씻고 준비해서 시동을 걸고 소성리를 향해서 달렸다. 내 앞에 경찰버스 한 대가 달려가고 있었다. 성주산업단지로 우 회전 하길래 호기심이 생겨서 따라갔다.      

성주산업단지로 들어서는 순간 경찰버스와 승합차들이 길가에 줄을 서 있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성주ic에서도 들어오지만, 왜관쪽에서도 들어오는 듯 보였다. 아마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에서 경찰병력이 총출동해서 소성리로 들어오나보다. 

경찰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려서 박스를 받아서 들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인도 한켠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도시락을 꺼내 들고 밥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그 시각이 새벽4시 조금 넘었을 때였다. 그 곳에서 집결하고 밥을 먹고 작전을 짜고 소성리로 다같이 이동할 모양이었나 보다. 나는 대충 훑어보고 다시 소성리로 향했다.      

소성리 난로가에 이미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아마 전날부터 밤잠을 설치다 새벽일찍 나왔나보다. 비상연락을 받고 서울에서 사람들이 내려와 있었다. 성주읍에서 달려온 주민들, 초전면에서 달려온 주민들,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새벽에 달려와 준 사람들이 있었다. 

다섯시 전이라 연대자 태령님과 나는 진밭교로 올라갔다. 이미 진밭교는 그 전날 선발대 경찰들이 올라와서 밤새 지키고 있었다. 원불교 평화교당에 불은 켜져 있지 않았지만, 김선명교무님이 기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새벽5시면 진밭평화교당에서는 매일 새벽기도를 하신다. 태령님과 나는 평화교당 몽골천막 앞에 의자를 깔고 앉아서 입정에 들어갈려고 할 때, 강형구장로님이 차를 몰고 진밭교로 올라오셨다.  

경찰초소에서 보초서던 경찰이 강장로님의 차를 잡아세웠고, 강장로님은 아침기도회를 하겠다면서 진밭교에 차를 세워놓고 내렸다. 진밭교를 너머 1.2킬로 정도 올라가면 사드기지가 있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 경찰검문을 두 번 당해야 하는데, 평소에는 사드기지 앞에 집회신고가 되어있어서 집회하러 간다고 하면 통과할 수 있지만, 군경이 합동작전이 있는 날, 경찰병력이 대규모로 이동해 들어온 날이면 진밭교는 어김없이 가로막혀서 지나갈 수 없도록 막아버린다.      

강장로는 진밭교에 십자가를 세웠고, 진밭교 앞에 의자를 나란히 옮기자 경찰들이 어디론가 무선을 치면서 연락을 하고 정보과형사가 올라오고, 경찰들은 의자를 놓는 걸 말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듯 보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진밭교 위에서 경찰이 우르르 내려왔고, 아래선 또 올라왔다. 나는 기도하다 말고 이 장면을 찍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서 내 차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갑자기 태령님이 마을로 내려가자고 소리쳐서 나는 다시 태령님은 태우서 마을로 내려왔다. 사드기지 건설공사를 저지하고 싶은 우리도 작전이 시작되었다. 경찰병력은 아직 다 소성리로 들어오지 않은 듯 했고, 아니, 들어와도 출동 준비가 덜 된 듯 했다. 진밭교에 돌방상황이 벌어졌으니 경찰의 시선이 진밭교를 향해 있는 동안 우리측 사람들도 개신교컨테이너 앞 마을도로에 양쪽으로 더블캡트럭을 세워서 격자를 양쪽으로 끼워넣고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카메라 영상촬영을 하고 싶은 마음에 카메라를 안고 격자안으로 들어갔다. 내 옆에 박수규대변인의 더블캡트럭이 세워져있었고, 내 격자의 끄트머리가 트럭하단에 들어가있었으니 내가 앉은 위치가 격자를 접을 수 있는 정가운데 옆이었던 셈이다.      

새벽6시가 되어서 집회가 시작되었는데, 조은학선생님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sns로 공유하려고 한쪽 켠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여자경찰이 조은학선생님을 덮쳤다. 경찰에게 밀려서인지, 저항하면서인지, 거칠게 경찰이 손을 뻗어서 조은학선생님을 압박하려고 하자, 조은학선생님도 뒷걸음질 치면서 격자 한가운데로 들어왔고, 우리는 경찰에게 항의를 했지만, 흥분한 경찰은 막무가내 양팔을 휘저으면서 조은학선생님을 끌어내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이 마치 경찰이 양손으로 조은학선생님의 따귀를 갈기는 걸로 착각 할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작스런 경찰의 도발에 놀랍기도 했지만, 순식간에 경찰이 영상촬영을 하고 서 있었을 뿐인 사람을 끌어내는 것을 뒷날에 생각해보면 집회대오 내에서 현장촬영을 배제하겠다는 지침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사드철회평화회의 주최단위 대표님들의 연설이 끝나고 원불교법회가 시작하려고 하자, 경찰들이 갑자기 우르르르 들이닥쳤다. 내 바로 옆에 있는 트럭을 경찰들이 집단의 힘으로, 그야말로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밀어내버렸다. 순식간에 트럭한 대가 사람들 손에 의해서 밀려나가버렸고, 격자는 사다리처럼 길쭉하게 모양을 드러냈다. 경찰은 나더러 나오라고 했고, 나는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일 마지막에 나가겠다고 했는데, 경찰은 바로 사다리를 접어서 격자를 들어올렸다. 나는 격자가 접히면서 몸이 안쪽으로 기울어지고, 다리가 붕 뜨게 되니까 여경들이 아래쪽에 내 다리를 끌어어내고 위에서는 아래로 눌러내렸다. 내 카메라를 들어서 나를 바깥으로 빼내어 끌고 나갈 때 내게 안겨주었다. 경찰 여럿이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누르고, 아래서 끌어댕기면서 확 빼내버리니까 나도 순식간에 끌려나왔다.  

4월 28일 사드발전기 교체하기 위해서 소성리로 경찰병력이 들어왔던 날만 해도 카메라 촬영을 하던 나는 격자안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촬영이 보장되었더랬는데, 보름만에 경찰의 행동이 바뀌었다. 그 날은 경황이 없어서 그런 걸 일일이 따져볼 새가 없었는데, 침탈이 열 번정도 이뤄지고 난 다음에서야 상황실 김영재팀장과 이재각사진가, 그리고 페이스북라이브 촬영하는 박교무님 등이 진압도중에 촬영을 보장받지 못하고 끌려나오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최소한의 집회 대오의 방어권인 촬영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작전은 신속하게 시간을 다투는 문제였다는 것도 함께.      

언론기사에 보면 6시50분부터 작전이 시작되어서 7시에 주민들과 연대자들을 해산시켰다고 나온 걸 보면 거의 비슷한 정도의 속도전을 펼쳤던 거 같다. 

아침7시 경에 마을도로로 통행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하고 경찰을 겹겹이 쌓아서 담을 만들어서 우리를 마을회관앞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둘러쌌다. 

5월 14일 새벽은 원불교 법회 중에 들이닥쳤는데, 경찰 두 명은 ‘종교안전팀’ 이라고 쓰여진 노란조끼를 입고 있었다. 성물을 박스에 담아서 치워버리고 김선명교무님을 끌고 나왔다. 그리고는 교무님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도록 에워쌌다. 2017년 4월과 9월 두 번에 걸쳐서 사드가 배치될 때는 ‘종교케이팀’ 이란 노란 조끼를 입고 나타나서 종교행사를 방해하고 성물을 다 빼앗아가 비난을 산 적 있었는데, 4년만에 나타난 모습은 ‘종교안전팀’ 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종교는 과연 안전한가. 그런데 웃긴건 종교행사를 할 때는 ‘종교안전팀’ 노란조끼를 입고 나타났다가 금새 조끼를 벗고 일반 경찰이 되어서 나중에는 그냥 무작정 끌어낸다는 거다.      

5월14일 금요일 오전7시 경찰에 의해서 우리는 모두 도로 바깥쪽인 마을회관앞으로 끌려나왔고, 경찰이 몇 겹으로 벽을 만들어서 아무도 도로로 나갈 수 없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도로를 확보했지만, 이상하게 아무것도, 사드장비를 실은 트럭도, 공사자재를 실은 트럭도 뭣도 올라오지 않고 갇힌 신세로 경찰에게 항의를 하고 있는데, 경찰버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두대가 아니라 계속해서 올라오는 거다. 이상했다. 진밭교까지 올라가는 도로는 조금 넓은 편이지만, 진밭교에서 사드기지까지는 2차선 좁은 도로인데, 경찰버스가 자꾸만 올라와서 어디다 주차를 하겠다는건지, 커다란 버스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서버리면 공사자재를 실은 대형트럭이 들어갈 수 없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오늘 사드기지로 들일려는 것이 평소에 해왔던 것이 아니라 경찰을 상주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면 공사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 상시적으로 경찰을 배치하는 것인가.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지만, 그때까지는 그 상황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때 개신교현장기도소 컨테이너 위에서 영상촬영을 하고 있던 강형구장로님이 공사인부를 태운 봉고와 RV차량 다섯 대가 올라갔다고 알려줬다. 경찰버스가 다 올라가고 나서 똥차와 폐기물처리차량 그리고 물차 등이 몇 대 소소하게 올라갔는데, 이런 차량들은 경찰병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올려보내는 차량들이었다.      

부녀회장님과 할머니들의 국방부 숙소앞에 연좌농성을 시작했고, 옆에서 보좌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김선명교무님과 조은학샘이 함께 있었다. 화가 난 부녀회장님과 할머니들은 국방부 대외협력단 단장인 김대령을 보자, 뭐가 들어올려면 한번에 들어와야지 왜 찔끔찔끔 사람들을 피를 말리느냐고 항의하자, 김대령이란 자는 차량이 한 대 준비되지 않아서 못 들어오고 있는데 곧 들어올거라고 능글맞게 말했다.  차가 더 들어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도 작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더위를 못 견디겠다는 듯이 웃옷을 벗어제끼고 자세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김대령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작전은 끝났다. 공사인부들을 출근시키는 것까지 하면 경찰의 오전 임무는 끝난 거였다. 그리고 공사인부들이 퇴근할 때 주민과 연대자들의 저항에 대비해서 소성리에서 경찰병력 2000명을 주둔하고 있어야 했다. 

무슨 이유인지 영문도 모른 채 5월 14일은 하루종일 국방부와 경찰의 합동작전에 소성리를 짓밟혀야 했었다. 나중에야 한국정부가 미군이 계속 요구해온 미군의 자유로운 통행을 할 수 있도록 소성리 육로를 확보하는 작전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문재인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선물로 소성리를 제물로 내어줬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예전과는 다르게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시간 맞춰서 사드기지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공사인부를 소성리로 도로로 출근시키는 걸로 시뮬레이션 작전을 시작 한 것이고, 앞으로 계속 소성리의 육로를 미군이 마음껏 쓸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겠다고 국방부와 경찰이 합동으로 나선 것이다. 

소성리의 저항을 무력으로 꺾겠다는 심사가 아닌가.  5월 14일이 앞으로 길고긴 싸움을 알리는 지독한 하루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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