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를 쓰다>
6월3일 목요일은 열 번째 경찰침탈이 있었던 날이다. 2021년 들어서 1월22일, 2월25일 공사자재가 들어왔고, 4월28일 사드의 노후된 발전기를 교체하기 위해서 경찰병력이 2000명 들어왔었다. 사드장비를 옮기는 날엔 경찰병력이 2000명을 웃도는 수의 병력이 이동했다. 그러다 보름도 되지 않아 5월14일 갑작스럽게 경찰병력이 대거 소성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군이 통행할 소성리 육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국가가 주민을 상대로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와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5월18일과 20일, 25일과 27일, 31일 그리고 6월3일까지 해서 2021년 들어서 소성리로 경찰침탈이 열 번 째 있었다.
5월18일은 광주사태 40년이 되는 날이었고, 남북철도잇기평화행진이 대구경북을 지나가는 일정이라서 평통사회원들이 모두 평화행진에 집중해야 할 때였는데 갑작스런 소성리를 병참기지화를 시도하는 국가폭력에 대응하기 위해서 평화활동가들은 쉬는 화요일 소성리로 들어와서 싸워야했다.
5월18일은 개신교와 소성리책방 컨테이너 사이에서 격자를 들고 나오다가 경찰들에 의해서 가로막혔지만, 격자 한 쪽은 경찰이 잡아 세우고 있을 때, 재빠르게 유영재님이 격자로 올라타면서 격자를 뺏기지 않을 수 있었고, 세워진 격자를 반듯하게 눕히면서 격자주변에서 대치하던 주민과 연대자들이 격자속으로 속속 들어가서 저항할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격자에서 끌려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5월20일은 나의 작업팀‘싸우는여자들기록팀’ 동료인 하은과 혜미가 소성리로 연대를 왔고, 오후 4시 공사인부들의 퇴근시간대에 맞춰서 마을앞 도로에서 항의행동을 하던 중에 혜미가 여자경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할머니들 곁에서 끌려나오지 않으려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혜미에게 여경들이 나가자고 끌어내려고 할 때 스스로 걸어나가겠다고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진압을 하려고 시도하면서 한 여경이 혜미의 엉덩이를 손으로 쥐는 일이 벌어졌고, 끌려나온 혜미가 곧바로 공개적으로 항의를 해서 끌려나온 대오들이 경찰에게 사과를 요구하면서 항의하였다. 그때, 경찰들의 방패에 하랑이 짓눌려 압박을 당해서 호흡이 곤란해지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고, 119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이 생겼다.
5월25일 마을앞에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자리를 잡고 집회를 시작하려고 할 때, 상황실컨테이너 아래 쪽으로 격자를 이동해서 평화활동가들이 진을 치고 길을 막았다. 양쪽으로 집회대오가 길목을 막아서자 경찰지휘부가 한자리에 모여서 의논을 하더니, 동시에 진압작전에 들어왔다. 마을회관 쪽 대오는 맨몸이라서 금방 끌려나왔지만, 격자 쪽은 치열할 수 밖에 없는데, 경찰들이 격자에서 끌어낸 남자대학생을 마을회관으로 끌고 와서, 그 자리에서 목을 가격하고 짓누르는 폭행을 저질렀다. 대학생의 목에 핏발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한참동안 구타를 당한 것으로 보였다. 태령님은 여경에게 빽허그를 당했는데 가슴뼈가 으스러지도록 눌려져서 아프다고 호소했다.
상황이 끝나고 나서 태령님을 병원으로 데려가서 사진을 찍고 의사와 상담을 했는데, 당장 골절은 아니지만, 골절로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며칠동안 지켜보면서 사진을 더 찍어보자고 했다.
5월27일 진보연대, 민주노총 등에서 연대대오가 100여명 들어온다는 소식에 새벽5시에 경찰병력이 먼저 들어와서 마을을 봉쇄해버렸다.
5월31일, 원래 화요일과 목요일 작전계획이었는데, 화요일인 6월1일이 원불교 소태산 교조의 열반한 육일대재 기념일이라서 피하고 하루 앞당겨 5월31일 경찰병력을 이동시킨다고 변명을 하였다.
6월3일 열 번째 침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