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를 쓰다>
6월 8일은 소성리가 열한번째 침탈을 당한 날이다. 대학생들이 전날 밤에 찾아왔고, 새벽일찍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kec지회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소성리로 연대온 분들이 있어서 사드기지 건설을 저지하려는 평화지킴이들이 100여명은 모인 듯 했다.
소성리로 들어온 경찰병력은 1100여명 추정했다. 우리가 많이 모였다고 한들 경찰이 병력을 이끌고 들어온 데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사드철회평화회의는 6시까지 소성리로 집결해달라고 했고, 사람들은 조금 일찍 들어와서 준비를 했다. 마을길 도로에 널찍하게 자리를 깔고 앉았다. 원불교 법회로 사드기지건설저지 투쟁이 시작되었다. 6시 20분 너머 저 멀리서 경찰들이 밀려오기 시작하더니, 마을 앞으로 빼곡이 둘러쌌다. 지난 5월14일 소성리육로확보 작전을 시작하면서 성주경찰서장이 자주 출몰하고 있다. 작전지휘를 손수 진행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목사의 말을 빌리면 경찰정복을 안입어도 될 거 같은 서장은 따박따박 정복을 입고 소성리도로를 배회하고 돌아다니고, 정복을 입어야 할 경찰들은 사복을 입고 무전기를 차고 도로건너편에 심겨져있다고 한다. 경찰인지 구분이 안되는 복장을 입은 이들이 제법 눈에 띈다.
6시50분 경찰진압이 시작되었다. 널찍널찍 앉았던 집회대오는 중앙으로 밀착해서 앉고 팔짱을 끼고 앞에 대학생대오는 드러눕기 시작했다. 가장자리에서부터 경찰들이 난입해 들어와서 남자들을 끌어내는데 인정사정 볼 거 없이 틈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사람들을 빼가기 시작했다. 가운데로 들어오다가 잠시 멈칫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남자들 사이에 여자가 끼어있다 보니까 남자경찰이 여자경찰을 안으로 들이기 사작하면서 잠시잠깐 틈이 벌어졌다. 내가 앉은 곳의 앞뒤로 경찰들이 사람을 빼가면서 내 옆에 있던 미경샘을 여경들이 끌어내려고 하는 걸 붙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경샘이 땅바닥에 똑바로 누웠고, 미동도 하지 않고 30초 인가, 아니 40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똑바로 누워버린 미경샘을 보고 놀라서 괜찮냐고 물으면서 곁에 엎드리다시피 누웠는데, 경찰들도 순간 당황했는지 주춤했었다.
그때 나는 공포를 느꼈나보다. 잠시후 미경샘이 슬며시 일어나 다시 앉았고, 우리는 팔짱을 꼈고, 앞에서 남자들 틈에서 밀려난 한 여성을 우리가 끌어앉고 뭉쳤는데, 여경이 여기저기서 사람을 떼어내고 끌어 낼려고 막무가내 덮치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허리가 안 좋은 걸 아는지 나를 먼저 끌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내 주변의 여성들을 우선 끌어내는 듯 했다. 그걸 말린다고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다 보니까 다리는 왼쪽으로 나와 있었는데, 그때 단발머리 여경이 내 허벅다리에 주저앉았다가 번쩍 일어나더니 여경 여럿이 나를 들어올리려고 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다리를 들어올렸고, 내려달라고 했지만, 다리가 어떻게 된 건지 쥐가 나고 골반에 통증이 느껴져서 뭘 해도 편치 않았다. 그보다 여경 여럿에게 들려서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뱅뱅뱅 돌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하늘의 볕이 뜨거워서 머리가 퀭했다.
마을로 끌려나와서 길바닥에 내려놓고는 여경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 했고, 나는 길에 엎드렸는데, 다리를 펼 수가 없었다. 골반이 아픈건지, 허리가 아픈건지, 묘한 통증 때문에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바로 일어나면 혹시나 골반이 틀어지거나 척추가 분리되는 건 아닌가 겁도 나고, 삐뚤어질까봐 걱정되어서 꼼짝을 할 수 없었는데, 내 등뒤로는 경찰들이 방패로 계속 밀고 들어오는지 사람들의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구급차를 부르는 소리도 들렸고, 환자가 있다고 하는데도 소란은 그칠 줄 몰랐다.
구급차가 들어와서 들것에 나를 실어서 옮겼다. 들것에 들려나가는 것도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구급차를 타고나서 조금 안정감을 찾았다. 아무도 나를 헤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