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를 쓰다>
지난날 오후 4시 평화행동을 하러 소성리로 올라갔더니 할머니들은 바람이 잘 통하는 자리를 잡아서 의자에 앉아계셨다. 진밭교 아래 형광벌레같은 경찰들이 우르르르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는 백광순할머니가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 모양이다. 옆에 있던 이형사가 투쟁가를 부르라고 농담을 했던가 보다. 그 말을 듣고 백광순할머니는 정색을 하면서
"우리가 어떤 심정으로 투쟁가를 부르는지 알고나 그런 말 하냐"고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이형사가 듣고 보니 할머니에게 농담을 한 게 미안했던가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나도 할머니들이 어떤 마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사드가고 평화오라를 부르는 지 진심으로 헤아린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오는 날이면 밤잠을 설치면서 아침밥을 앉히고, 국을 끓이는 할머니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새벽일찍 집을 나서 마을회관으로 나오는 할머니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걷는지, 사드기지로 올라가서 평화행동을 하고, 진밭 2초소를 지키면서 사드기지로 들어가는 차량을 감시하는 할머니들은 어떻게 이 시간을 견뎌내는지, 마음을 다해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적이 별로 없었던 거 같다. 마치 다 아는 거 같았는데, 사실은 다 알지못했다.
할머니들이 왜 싸우는지, 어떻게 싸우고 싶은지, 언제까지 싸울건지, 할머니들의 생각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거 같다.
그래서 백광순할머니가 우리가 어떤 심정으로 투쟁가를 부르는지 아냐는 호통은 이형사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던게다.
오늘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드기지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공사인부들이 들어오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는 경찰과 싸울려고 소성리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사드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올라가지만, 경찰이 어마어마한 병력으로 우리의 앞길을 막고, 사드기지 건설을 돕고 있으니까 부득이 경찰과 마찰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나는 화요일과 목요일은 소성리로 올라갈려고 마음 먹고 있으니까, 경찰병력이 오지 않아도, 공사인부들이 사드기지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과 물리적인 마찰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공사에 협조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그들이 기어이 걸어서라도 가겠다면 붙잡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최소한 차를 타고 사드기지로 출근하는 건 못 보겠다고 오늘 공사인부들을 붙잡았다. 아니 그들이 걷다가 타고 갈 트럭을 막았다. 트럭을 막은 게 아니라 공사인부들이 그 트럭을 타고 출근하는 걸 막았다. 걸어서 가시라. 사실 그것도 내 성에 안 찬다. 사드기지가 건설되는 걸 반대한다면서도 건설되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공사하러 들어가는 인부들을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건 참담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우리의 힘이 그들을 저지시킬 수 없는 정도라면 그 정도로 위안을 삼는 거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사드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우리의 입장을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