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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l 26. 2021

소성리는 어떻게 감금당하고 있나.

<소성리를 쓰다>

7월20일은 미군육로수송작전한다고 경찰병력이 23번째 소성리로 쳐들어온 날이다. 

7월8일 경찰청인권위원들이 소성리로 방문했을 때, 나는 경찰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 4개의 영상을 준비하고 참가했었다. 당장 현실에서 닥친 일들, 사드기지 건설에 동원된 공사차량과 장비들, 미군에게 제공되는 물품차량들이 마을길로 통행하지 못하도록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소성리마을길에서 집회를 하고 연좌농성을 할 때면 어김없이 경찰병력이 저지르는 성추행, 폭력적인 강제진압을 중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었다.      

인권위원이 소성리 마을이장님께 주민들의 고충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석주이장님은 지금이 한창 농번기라서 새벽부터 농사를 짓기 위해서 농민들은 길을 나선다고 하셨다. 트럭에 관리기를 실고 논과 밭으로 나가야 하는데, 새벽일찍부터 경찰버스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 마을로 들어오고, 좁은 마을길에 버스를 주정차를 시켜놓고 있으니 트렉터 나 경운기가 자유롭게 마을길을 나다닐 수 없게 된다고 하셨다. 경찰들이 들어오는 날은 사드반대하러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 주민들도 일상이 감금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모심기할 5월 중순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경찰병력이 1000여명이 수십대의 경찰버스를 타고 들어와서 새벽 6시만 되면 마을길을 경찰들이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으니까 모심기에 필요한 장비들이 마을길을 마음대로 오고 가지 못했다. 나다니다보면 막히니까, 아무리 길을 돌아다닌다고 하지만, 사드반대 집회에 나오지 않는 주민들조차도 발목이 잡혀야 할 상황이었으리라. 거기다 경찰들에게 계속 불심검문을 당하면서 마을주민임을 밝혀야 하고,농사일하러 가야 한다고 보고하면서까지 마을길을 이용하는 게 얼마나 곤욕스러운 일이었을까. 그러니 일상이 감금상태가 되어버렸다는 이석주이장님의 말씀처럼 사드반대 하러 나오든 나오지 않든 소성리마을주민들은 모두가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양치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이 떠올랐다. 진밭교로 가는 길에 양켠 주차해 놓은 경찰버스 사이에 양치하고 있는 경찰을 만날 때가 있다. 마을 아래쪽 이장님댁으로 가는 길목에도 버스가 여러 대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서도 양치하는 경찰들을 만난다. 1000여명이나 되는 경찰이 새벽 5시30분에 소성리 마을로 들어와서 식사를 하고 양치를 한다고 상상을 해보았다. 이를 닦고 나면 양치물을 풀숲이나 냇가에 뱉어댈텐데, 한 두 명도 아니고 1000여 명이 하루에 한 번도 또는 두 번은 양치하고 뱉어댄다고 상상하니까 갑자기 속이 메쓱거리고 구역질이 나서 혼났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지만, 경찰청인권위가 뭔가 해결해 줄 거란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최소한 주민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협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조금은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 마음도 사치였나보다.     

지난 7월15일, 경찰은 새벽5시45분에 주황색 질서유지선을 가지고 마을회관에서 도로로 나오는 길을 그어버렸다. 그리고 도로로 나온 주민들에게 불법집회하면 체포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새벽일찍부터 경찰들과 대치를 해야 했다. 그 전까지 경찰들이 소성리로 들어와도 6시에 집회를 하고 있으면 6시30분 경에 경찰들이 포위하고 들어낼려고 작전을 하던 것에 비하면 한시간이나 빨리 마을을 포위하고 나선 셈이다.      

23번째 군경합동작전이 있었던 날인 7월20일날에 나는 밤새 영상편집을 하다가 새벽에 겨우 두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집에서 5시에 출발했고, 경임할머니 댁 앞에 도착했을 때는 5시30분이 조금 안되었다. 경임할머니는 벌써 걸어서 올라가셨다. 할머니는 경찰버스를 만나기 싫어서 일찍 소성리마을로 올라가신다. 5시30분이면 경찰버스가 들어올 시간인데, 이상하게 마을길이 평온했다.     

소성리마을에 도착해서 주차해 놓고, 사람들과 도로를 향해서 의자에 앉아있으니까 성주경찰서 경비과장이 경찰무리를 이끌고 마을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경임할머니는 의자를 엉덩이에 붙인 채 일어나서 마을길로 나와버렸고, 다른 주민들도 마을길로 나왔다. 

경찰들은 주황색 질서유지선을 긋고, 경비과장은 마을회관앞에서 하는 집회는 보장하겠지만, 도로를 점거하는 집회는 불법이라고 떠들어댔다. 질서유지선을 넘어다니는 것도 불법이라면서 못 다니게 막을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새벽6시 경에 위쪽에서 방패를 소지한 경찰병력이 우르르 내려와서 3열로 마을회관을 차단했다. 

경찰버스는 5시 전에 소성리로 들어왔다고 한다. 부산과 경상남도 경찰청의 버스가 주로 많고, 서울과 경기쪽에서도 내려왔을텐데, 그럼 경찰들은 밤새 버스를 타고 소성리로 왔으니, 윤석열씨가 말한 주 120시간 노동을 경찰이 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픽 났다.      

성주경찰서장의 명을 받은 경비작전계장은 6시도 되기 전부터 경찰방송을 하기 시작했고, 6시32분에 1차 해산명령을 하는 경고방송을 했는데, 여러말을 했지만, 스스로 이동하지 않으면 사법처리하겠다는 뜻이고, 나중엔 대놓고 체포될 수 있다고 협박하는 방송이었다. 1차 해산명령을 하는 방송을 끝내고 5분도 채 안 된 6시36분에 2차 해산명령을 하는 방송을 했다. 4분이 지난 6시40분에 3차 해산명령하는 방송을 하길래, 이제 끌어내나 보다 했더니, 또다시 4차 해산명령하는 방송을 6시44분에 한다. 마을도로에서 스스로 이동하지 않으면 경찰에 의해서 해산조치를 당하겠지만, 현장에서 체포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앞을 바라보니까 벌써 사드기지로 들어갈 공사인부를 실은 차량과 트럭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러번 해산명령에도 사드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소성리에 미국의 전략무기 사드가 배치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싸워왔던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은 자리를 비켜줄 수 없었다. 경찰들은 강제로 끌어내지 않고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스스로 일어나게 한다고 하지만, 말끝에는 도로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체포될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6시48분 5차 해산명령하는 경찰방송이 마을길에 크게 울려퍼졌다. 이젠 경비과장이 집회대오 속으로 들어와서 마이크를 잡고 스스로 이동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고 떠들어댔다. 뒤에는 48010원짜리가 확성기를 들고 알아들을 수 없는 모기목소리로 체포하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대신 강제로 끌고 나오지는 않겠다는 듯이 대화경찰 조끼를 입은 경찰은 계속 일어나라고 했다. 그리고 끌어내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니면 체포하겠다고 협박했다. 7시28분 모두가 해산당할 때까지 두 시간 가까이 경찰들에게 들은 언어폭력과 시선폭력의 내용이다. 

“스스로 일어나서 이동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 

태환언니는 내가 체포될까봐 도저히 먼저 일어나서 나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할머니들이 먼저 나오면 연대자들이 체포될까봐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힘들었지만, 먼저 일어설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맨바닥에 앉아서 경찰들에게 둘러싸여서 시달려야 하는 시간 동안 육체적인 피로보다 정신적인 피로가 몸을 얼마나 괴롭혔을까. 

이제 우리는 언제 체포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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