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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의 안경낀 도깨비들의 프로필

by 시야

별별책은 순탄하게 잘 진행되는 듯 보였다. 22명의 안경낀 도깨비들은 날짜에 맞춰 글을 제출했다. 유독 말 안 듣는 사람 하나 있기도 했다. 책을 함께 만드는 편집팀의 담당자가 정해져서 책임있게 조합원에세이는 마무리 지었다.


책을 함께 만든 단체와 사람들이 한 꼭지씩 맡아서 글을 쓰기로 했다. 아사히비정규지회 투쟁의 의미와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는 글을 썼다. 원고가 들어와야 할 시간에 하나, 둘, 셋, 시간을 맞춰 들어오기 시작해서 척척 진행될 줄 알았다. 나도 일주일을 끙끙거리면서 겨우 한편을 완성시켰다. 비록 졸필이지만 그래도 하기로 한 것을 해낸 것에 자축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곳에서 사고가 터졌다. 믿었던 필자가 날짜에 맞춰 글을 보내지 않았다. 이런,,, 책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라서 여전히 믿음이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쪼아보았다. 최종 원고일까지 보내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기다렸다. 또 한 필자가 속을 썩이기 시작한다. 연락하면 “네”하고 대답은 엄청 큰소리로 한다. 날짜가 되어도 보내주지 않는다.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는 메시지가 날라오면 어쩔 수 없이 “넹”하고 기다려준다. 그러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하루 날 잡고 집중해서 쓰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또 기다렸다. 그러다 별별책 회의를 하러 서울로 가는 길에 전화를 했다. “어쩔겨? 대책을 세울까 말까?” 하고 반공갈 협박을 가해봤더니 그는 당당하게 “대책 안세워도 됩니다. 곧 보내겠습니다”한다. 그 목소리는 자신감이 절절 넘쳤다. 너무 위풍당당한 폼새에 고만 또 믿었다. 그리고도 한참을 원고가 들어오지 않았다. 헛웃음만 났다. 다행히 출판사에서 쪼으지 않으니 내가 먼저 힘뺄 이유는 없는 듯 했다.

드뎌 출판사 대표가 연락이 왔다. 그 양반 원고는 직접 받으시겠다고 한다. 올게 온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날짜를 맞추지 않는 필자 때문에 흰머리카락 수가 늘어났을 만도 한데 밉지는 않다. 우째 이런일이!!!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워낙 실력인정 받는 이라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단한 원고가 탄생하려나보다.


최대다수의 저자가 만든 책이 될 거 같다. 22명의 안경낀 도깨비들이 모두 저자이다. 저자프로필을 작성했다. 자신의 약력이 들어간 프로필은 이력서같기도 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몇 년도에 어디서 태어났다’, ‘몇 명의 형제자매 중에 몇 번째’인지 였다. ‘고향이 어디’이고, 어디서 어린시절을 보냈는지도 포함된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마지막은 지금 하고 있는 투쟁의 결의를 담은 한마디로 정리한다. 나름 재미있는 패턴의 글들이다. 프로필을 작성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리고 싶었을 그들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 했다.


프로필에는 자신의 약력도 있지만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 방황과 갈망했던 것들이 그대로 보여지기도 한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일 시간이 필요했었다.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세상에 나타났는지,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왔는지, 그 삶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이고, 지금의 투쟁은 자신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있는지, 표현해내는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긴 호흡으로 준비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들이 처음 글을 쓸 때와 다르게 두 번째 긴 프로필에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있었던 거다. 이제 알겠다. 그들에게 숨은 욕망을 어떻게 끌어냈어야 했는지 말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꿈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행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보여줬다. 이상을 갈망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다음에 또 책을 만들 기회가 생긴다면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싶다. 지우더라도 쓰고, 또 생각하고, 소회를 나누면서 쓸 수 있다면 그들은 훨씬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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