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 야간시위>
2017년9월24일 _ 장수사진 찍는날
오늘도 소성리마을회관에는 사람들로 북적북적거린다. 마루에는 길다란 밥상이 여섯 개는 족히 펼쳐져 있었다. 상위에 반찬은 일곱가지나 되었고, 어제 끓인 닭계장이 어마무시하게 남아서 오늘은 의무방어전으로 먹어야 한다.
오전내내 배꼽이 빠지도록 웃을 일이 많았던 우리는 삼삼오오 점심상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밥을 먹었다. 장군과 강군은 차려준 점심을 받아먹기만 미안한지, 커피를 대접하려고 길다란 다리로 상과 상 사이를 오고간다. 나는 그에게 걸맞는 일거리를 맡겼다. 그들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거리, 바로 설거지.
키도 크고, 덩치도 큰 두 남자는 부엌으로 들어가 어깨를 부딪히면서 설거지를 해냈다. 그리고 나머지 장수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오늘은 장수사진을 찍는 날. 몇날 며칠동안 장수사진을 찍어드린다고 소성리엄니들께 말씀드렸다. 엄니들은 “우리 다 찍어놨다. 안 찍어도 된다” 고 하셨다. “엄니, 찍어놓아도, 이번에 이쁘게 찍으면 더 좋자나요.. 일부러 멀리서 사진 찍어주러 오는데, 꼭 나오이소” 하면서 꼬셔보지만, 장수사진에 대한 엄니들의 반응은 뜨뜨미지근 했다.
날이 가까워오자, 엄니들이 안 나올까 걱정이 태산이다. 이장님께 방송을 해달라는 부탁을 드렸더니, 장수사진을 찍는 오늘까지 이장님은 마을 방송을 하셨다.
느닷없이 성주로 들이닥친 사드를 반대하는 투쟁이 시작할 때부터 카메라를 매고 성주로 나타난 장군, 그의 동료 사진가 강군, 두 청년 사진가가 소성리의 엄니들의 장수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온거다. 카메라 뿐 아니라 사진촬영에 필요한 도구들을 다 챙겨서 서울에서, 제주에서 먼길을 와 준 고마운 사진가들이다.
시간이 되자, 용봉에 사는 옥술엄니가 곱게 화장을 하고 나타나셨다. 한손에 든 보따리에는 분홍저고리와 치마가 차곡차곡 개켜져 있었다.
길남엄니는 교회를 다녀오실거라고 했다. 아니다. 사진찍는다고 교회를 안가셨다. 길남엄니는 꼬부랑 허리로 지팡이를 짚고 마을회관으로 터벅터벅 걸어오신다. “사진 있는데 또 찍으면 낭비아이가?” “엄니 자식이 다섯인데, 사진 하나만 있으면 큰 아들 가져가면 나머지 자식들은 섭섭하자나요. 여러 개 있으면 자식들 가져가서 두고두고 엄니얼굴 보면 되지요” 하니 “ 맞네. 글네. 그러면 되겠다. 아- 들 나눠주면 되겠네” 하신다.
마을회관은 분장실이 되었다. 급히 드라이기와 빗을 구했다. 장수사진 촬영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자들이 엄니들의 옷맵시와 미용을 도와드리기로 했다. 전문미용사도 있었다.
엄니들은 아닌 척했지만, 내가 없는 사이 의논했었나보다. “내일 사진찍는다는데, 다 한복 챙겨올 거 뭐있노? 한두벌 있으면 서로 갈아입으면 되지” 했다가 “ 얼굴만 찍는데 치마는 필요없다. 저고리만 들고오면 되지” 했단다.
몸빼바지에 돌려입는 저고리의 사연이다.
사진을 찍을려고 대기하러 나온 엄니의 상의는 한복저고리에 하의는 몸빼바지다. 또는 상의가 한복저고리이면 하의는 밥보자기로 배를 둘렀다. 사진은 어찌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엄니들의 모습이 웃겨서 사진을 찍는 동안 구경하는 사람들은 배꼽이 빠질 지경이었다.
분장실이 된 마을회관 안에선 ‘쥐 잡아 먹은 듯이 그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엄니들의 목소리가 울린다. 화장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지만, 화장하는 동안 얼굴에 웃음기가 떠나질 않는다.
카메라 앞에 앉은 엄니들은 차렷 자세다. 카메라만 주시하는 얼굴에는 웃음기가 싹 가신다. 엄니들을 웃겨달라는 사진가의 주문에 소성리지킴이들은 광대가 되고, 가수가 된다. 지킴이들의 재롱에 간혹 빵 터지는 엄니들이 있지만, 다문 입을 더욱 꽉 다문 엄니도 있다. 절대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굳게 다문 입을 어떻게 벌려 크게 웃게 할지.
한바탕 웃음이 소성리마을회관에 잠시 머물다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