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 야간시위> 밀린 이야기
2017년9월29일
초저녁에 접어들 때쯤, 소성리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감촉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반팔티셔츠만 입고 나돌아 다니다간 고뿔이 옮겨붙을까 염려스럽다. 소성리 마을 도로가에는 벌써 겨울파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난로에는 장작을 열심히 넣었더니 연통으로 힘찬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강철난로위에는 옥술엄니가 갖다주신 밤알들이 떼구르르르 굴러다니면서 굽히고, 익혀가고 있다. 밤을 까먹으면서 위를 운동시키자, 강 장로님이 오리고기를 구워서 술상을 마련하신다. 오리고기 한 접시 갈라먹는 소성리의 밤은 깊어가고, 쌀쌀맞은 가을이 불쑥 다가온다.
헌호&정태 씨는 하얀승용차를 몰고 깜깜한 소성리마을입구로 들어선다. 뒷 차문을 열고는 조미 김세트를 열심히 끄집어낸다. 올해도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투쟁하는 동안의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추석명절 재정사업했다. 매년 그렇듯이 광천김을 작년에는 “김앤장을 팝니다”로, 올해는 “들꽃향 가득한 김”으로 이름을 바꿔가면서 팔았다. “팔다남은 김 가져온거에요?” 라고 내가 묻자. 헌호씨는 “무슨소리, 우리도 김이 없어서 새로 주문했어요.”하며 ‘소성리 주민들이 들꽃향이 나는 김에 밥싸서 드시라고 가져온 선물’이란다.
김 큰놈 두 박스를 꺼내들고 마을회관으로 들어섰다. 부녀회장님과 규란엄니가 얼떨결에 찾아온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김을 꺼내보이자, 규란엄니는 “팔고남은 이문을 여기로 다 가져오면 우야는교? 그짝도 먹고 살아야지 우리를 다 퍼다주노?” 하며 혀를 끌끌 차신다. 마치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재정사업해서 소성리로 다 퍼다주는 줄 오해할까 웃음이 났다.
자식같은 이들이, 길거리에서 노숙농성하면서, 어떨 때는 고공농성하면서, 매일같이 거리를 떠돌면서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야 하는 엄니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들을 바라보는 엄니들의 눈빛이 측은지심으로 그득하다.
추석이 다가온다고 소성리에 후원물품을 연대하겠다는 ‘기특한 짓, 이쁜 짓’ 한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꼭 승리해서 당당하게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달마산의 센기운을 북돋아서 기도해야겠다.
오늘은 네 번째 평화모임 하는 날. 추석대목을 앞두고 농가들도 밤낮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참외농사야 이제 끝이 났다지만, 추석을 앞두고 수확해야 할 작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 작물들이 추석선물로 직거래되거나, 공판장으로 나가야 하니, 시간이 48시간이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나올만 할거다.
오늘따라 엄니들도 안 나오신 분들이 많다. 소성리 주연여배우 도금연여사는 낮에 도토리 줍는다고 고생을 하셨는지 피곤타 하신다.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오셨던 용봉 세 자매 중 여상돌엄니도 안 나오셨다. 상순언니는 요 근래 발이 아프다고 하더니 못 걸어나왔나 보다. 태환언니는 사과농사가 한창 바쁠 때라고 하더니 화요일 율동배울 때는 꼭 나오시더만, 오늘은 불참이다.
백광순, 도경임, 박옥술, 나송연, 박규란, 임순분부녀회장님 등의 몇분 안되는 엄니들이 나오셨다. 명찰에 참여자들의 이름을 다 쓰고 난 후에, 튼실한 남성들의 앙증맞은 엉덩이로 이름을 써서 맞추기로 했다. 첫판에 영재씨가 흔쾌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어서 엉덩이이름쓰기를 동을 떴다. 영상촬영은 하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하며,
엄니들은 엉덩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신다. 그 눈빛은 실로 진지했다. 엉덩이로 이름을 쓰는 것도 사람의 체형이나 몸의 유연성에 따라 필체가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이는 부드럽게 동그라미를 구사하는 데 비해서 어떤 이는 ‘이응’을 ‘미음’으로 뻐등뻐등 그리기도한다. 또 어떤 이는 화담선생님의 “평화”를 구사하는 듯한 큼직한 몸놀림으로 예술을 하기도 한다. 어찌 보니 이런 것이 행위예술이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상상도 해본다.
엄니들은 자신의 이름이 나올 때는 금방 알아맞히신다. 늘 입에 익은 이름이 글자로도 익숙한가보다. 그러나 젊은새댁이나 참여하는 남성들의 이름이 나올때는 도통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여기서 젊은 새댁은 60대 이하의 젊은 것들을 의미 ^-----&-----^
이름표 달자는 건, 사실 엄니들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다. 소성리로 찾는 우리들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매일같이 함께 하지 못한 성주사람들과 연대자들이 아직도 엄니들의 이름을 익히지 못하고 있고다. 주민들을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아니, 사람은 알겠는데 이름을 몰라서
소성리엄니들도 새댁들이 우리편이구나 하는 것은 알지만, 누가 누군지 이름을 몰라 늘 그/녀의 개성과 특징으로 인물을 설명하면서 의사소통할 때가 많다. 이번 기회에 엄니들도 소성리 평화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익혀서 “누구야” 딸처럼, 아들처럼 부르실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