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도라지 까다

by 시야


<소성리야간시위> 도라지 까다

2017년9월30일

남실댁 엄니는 귀가 안들려, 보청기를 하셨는데도 귀가 잘 안들려, 귀가 어두운 남실댁엄니는 할매방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노옥엄니를 마루로 불러낸다. “가만히 있는거보단 운동해야 돼”하면서 마루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그 위로 도라지 한움큼 쥐고 올려놓았다. 노옥엄니랑 둘이 짝이 되어서 손톱으로 도라지 껍질을 살살살 긁어낸다.

규란엄니는 할매들에게 도라지 한다라이 갖다놓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할매들은 도라지주인이 올때까지 도라지껍질 까는거 거든다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손을 움직이고 있다.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며 열심히 도라지껍질을 긁어내던 남실댁엄니는 “허리 아프면 쉬었다가 하고, 누워” 하며 노옥엄니께 잔정있게 말씀하신다. 말도 잘 못 알아듣고, 눈도 안 보이고, 거동도 불편한 고령의 노옥엄니는 남실댁엄니의 찬찬한 말씀을 알아듣는 듯이 씨익 웃기만 하신다. 남실댁엄니는 “일 조금했다고 온몸이 다 아파” 하며 혼잣말을 하신다. “엄니가 어디가 아프신대예?” 물어보면 귀가 안들려서 못 알아듣는다. 결국 한번더 큰소리를 질러댄다. “손가락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쭈구리고 있으니까 허리도 아파. 머리도 어질어질 해” 머리가 어지럽다면서 남실댁엄니는 바닥에 드러눕는데, 때마침 길남엄니가 오셔서는 말끔하게 껍질벗겨진 가는도라지를 정리하신다. 팔순 넘은 육신이 마음같지 않다는 푸념을 마음속에 삼키며.

도라지 까는 동안 미주알고주알 며칠사이 벌어진 마을의 이모저모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마을길 한복판에 세워둔 트랙터가 불편타고 불만을 터뜨린 주민 이야기며, 노인네들의 쫀쫀한 행시며,연대자들이 챙겨준 선물을 한 이 앞에 한 개씩 가져가라 했는데, 부부라고 두 개 챙겨간 얘기며, 아껴서 소성리평화지킴이 줄라했는데 있는데로 다 챙겨가는 바람에 줄게 없었다는불평이며, 쓸데없이 어디로 길난다는 소문에 보상금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속을 뒤집어놓는 속좁은 사람들의 구설수며.

금연엄니가 어젯밤 평화모임에 안 나온 이유가 도토리줍는다고 피곤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도라지 까는 동안 알게 되었다.

금연엄니에게 울화통이 터질 일이 있었던 거다. 금연엄니만의 울화통이 아니었다. 사드를 막기 위해서 밤낮으로 마을회관을 들락날락거리면 밥해먹이던 엄니들, 소성리 도로로 유조차와 경찰차, 공사차량과 사드장비차량, 미군들을 태운 통행차량이 들락날락 거리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물어보던 엄니들의 울화통이 터진거다.

“어여.. 우리가 하릴없어서 길막고 물어봤나? 이 길로 저 커다란 미국놈들 트럭 지나다니고, 탱크 지나다니고, 하면 좋나? 연대자들은 그거 지킨다고 밤낮으로 고생하는데 주민들 하나 안 나와 있으면 되겠나? 실컷 나와서 밥해대고, 길 막고 지키고 있었더만, 한번 나와보지도 않았던 인간들이 저거 불편타고 불평하고, 내보고 고만 지끼라고 하고, 뭐 그런게 다 있노?

남자들이 문제라. 영감들이 지 잘났다고 내보고 뭐라카고.. 어여 그래가 되겠나? 저거들도 나와서 지켜보고, 막아보고 어쨌다 저쨌다 해야 하는거 아니가?“

그랬나보다. 길을 배회하고 다닌 적은 있었을지 몰라도, 남들 길목을 지킬 때 한번 지켜주지 않았던 이들이, 그들도 한 마을에 사는 이들일텐데, 이제 길목을 막고 있으니 불편타고 이야기를 하나보다.

그들은 지금 미군트럭이 소성리 앞으로 다니지 않는 이유가 길을 막고 물어선 사람들의 노고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나보다. 지금 그 길을 열어놓으면 공사차량이 마을길을 쌩쌩 달릴걸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나보다. 우리금연엄니가 속이 상해 죽겠다면서 한손에 쥔 도라지 모가지를 비틀고 얇은 칼로 빡빡 끍어대니 도라지껍질은 인정사정없이 벗겨져 나간다.

오늘은 토요일, 촛불 야간시위를 하는 날. 10분전에 마당에는 목욕의자가 줄을 지어서 자리배열을 했다. 난로가에 불쬐던 엄니들이 앞줄에 자리를 잡자, 어디서 온 분들인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자를 다 채웠다. 추석명절 앞둔 토요촛불이라 하는 것 없이 분위기가 들떠보인다. 사람들은 보너스 나올때도 없는데 신난 표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토요촛불에서 평화장터 점방을 열었다. 사람들에게 미리 선전포고 하듯이 추석명절 선물은 “약초소금”을 사라고 윽박질렀던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점방문을 열자마자 윤성손님이 대기하고 있다가 마수를 해주셨다. 하나도 안 팔릴 것 같던 평화장터 점방도 실적이 나쁘지 않아서 체면은 세웠다.

처음 오마이뉴스본사건물에서 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게 뭔지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래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왜? 그런 결정으로 모든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는지 몰랐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있는 순간, 목욕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촛불이 소성리마을회관으로 일렁이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이 밥을 꼭꼭 씹어 목구멍으로 넘기던 모습이 일렁였다. 반찬도 꼭꼭 씹고, 국물을 한숟가락 퍼서 앙팡진 입으로 가져갈 때, 내 뺨에 눈물이 흘러 목젖을 타고 흘러, 젖가슴에서 마를 때, 나는 고 조영삼님의 죽음에 깊이 애도했다. 생면부지의 그를 위해 기도했다. 내가 이 자리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괴로웠지만, 나는 이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 수 있도록 그가 우리보다 앞서 길을 밝혀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소성리는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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