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조실댁엄니

by 시야

<소성리야간시위>
2017년 10월2일
석양에 물든 소야의 하늘이 어둠으로 번진다. 어둑해지는 밤하늘을 하얀구름으로 커텐쳐져서 달님의 웃는 얼굴이 가려졌다. 한가위가 코앞에 다가왔다. 소성리엄니들은 고향 찾는 식구들 맞을 준비에 바빠보인다.
아름다운 들판 소야에 사드가 왠 말인가?
오늘따라 연분홍 스웨트를 입고 쪽진머리를 하고 계셨던 그 엄니의 택호가 뭐였는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떠오르지 않는다. 소성리마을회관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었다. 올해 아흔넷의 연세였다. 연세가 가장 많은 분이었지만, 존경받고 대접받는 듯이 보이지 않아서 늘 마음이 불편했던 분이다. 젊은 날, 남편과 슬하에 자식하나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남편은 첩을 끼고, 이 엄니는 남의집 식모살이하면서 번 돈으로 첩의 자식을 자신의 자식처럼 키웠다고 한다. 남편은 식모살이 하는 본처가 월급 받는 날에는 집으로 들어와 하루, 남편노릇을 했다는. 알고보면 입과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라서 곧이곧대로 다 믿을 수는 없다지만, 한 동네에서 이웃집 부엌의 숟가락 몽디가 몇 개인지까지 다 꿰고 사는 형편인지라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닐거다. 조금 부풀린 이야기도 있겠지만, 그 시절 애 못 낳는 여성들이 겪어야 할 수모와 난봉꾼 남편을 만난 여성이 감내해야 할 세월의 무게가 얼마나 크고 험난했을지 연분홍스웨트를 입은 엄니의 꼭 다문 입이 말해주는 듯 하다.
사실 오늘 문득 보고싶은 이는 조실댁엄니다. 소성리마을회관의 넘버2라고 불리는 조실댁엄니.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엄니들에 비해서는 훤칠히 큰 키에 덩치도 있는 분이다. 허리를 크게 다치셔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지만, 꽤나 먼 거리의 집에서 회관까지 보행보조기를 밀고 출퇴근하셨다. 앉아있는게 힘들다며 마을회관 할매방에서 주로 누워계신 모습을 뵙는다. 신기하게도 할매들 화투칠 때는 앉아서 패를 돌리셨다.
처음 소성리엄니들을 뵈었을 때,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왜 없었을까? 소성리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라 여겼으니 소성리를 찾는 이들에 대해 더 특별한 친절을 취하는 할매들만의 특유의 노하우가 있었다. 조실댁엄니는 그 와중에도 할말은 해야 하는 성미라고나 할까? 약간의 유머와 위트가 느껴지는 퉁명스런 지적질이 조실댁엄니에 대한 나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머리를 풀고 마을회관에 들어서면 할매들의 반가운 인사를 끝으로 “아이고 귀신 신나라 까먹나? 와케 머리를 풀어젖히고 돌아다니노?” 하면서 타박을 주시던 기억. 바지길이가 길어서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고 단정하게 입지 않았다는 타박. 상추가 넘쳐나서 반찬으로 상추쌈을 올리려면 조실댁엄니는 “부녀회장 오늘은 고기반찬이가?” 하고 우스운 질문을 던진다. “와요? 고기 먹고 싶은교? 할매들 뭐 하는 거 있다고 고기해주노” 하면 “아니, 상추가 많길래 고기 나오나 물어봤다” 하며 능청스럽게 받아친다.
조실댁 엄니 결코 밉지 않았다. 부녀회장님은 고기반찬을 기대하는 할매의 말씀이 은근히 신경 쓰였는지 다음날에는 고기주물럭이라도 좀 해서 밥상에 올려주시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할매방에 모여앉은 할매들이 드러누워 뒹글뒹글 거리면서 이바구를 할 때면, 나도 옆에서 이야기에 끼어든다. 간혹 할매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몰래 핸폰 카메라로 찍기라고 할라면, 눈치빠른 조실댁엄니가 어느새 “또 찍나? 그거는 자꾸 찍어서 뭐할라하노?” 하며 아는 척 하는 바람에 할매들의 자연스런 장면을 다 놓쳐버릴 때도 있었다. 조실댁엄니가 나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던가?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를 계속 관찰하는 듯한 인상을 지을 수 없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여느 때와 다를 것도 없이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할매들은 화투치느라 눈이 빠지라고 화투장을 쳐다보고 계실 때 옆에 슬며시 앉으니, 조실댁엄니가 뜬금없이 “오늘은 이쁘게 해왔네” 하는거다. 그리고는 실제로 나를 이뻐해 주셨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하루종일 집에 홀로 계시지 않고 마을회관으로 오셨다가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과였다. 그렇게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리라. 어느 날부터 조실댁엄니가 안 보인다. 집에는 노인돌봄서비스 노동자가 하루 몇 시간씩 방문해서 집안일을 해주신단다. 집에서 마을회관까지 보행보조기 끌고 오는 것도 걷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자식들이 해외 나가는데 어머니 홀로 집에 남겨두고 긴 일정을 다녀오는 것이 부담이었나보다. 조실댁엄니를 잠시동안 요양병원에 모신다는 이야기를 들렸다. 그리고는 조실댁엄니는 더 이상 마을회관으로 나오시지 않았다. 자식들은 해외를 다녀올 시간이 지났는데.
그러고 보니 마을회관에서 나를 타박하는 할매가 하나도 없네.
몸은 불편하지만, 정신은 총명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 말도 똑부러지게 할 말을 하는 분이라 여겼다. 꽃다운 청춘에 소성리로 시집와서 평생을 이웃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마을회관에서 같인 늙어가고 있는데, 그들을 뒤로 하고 낯선 요양병원에서 긴 노후를 보내실건지. 그 마음은 오죽 답답할까.
내일모레 다가온 한가위 명절에 고향땅 소성리에서 추석차례를 모셔야 할텐데. 추석명절 연휴가 지나면 조실댁엄니가 계신다는 요양병원은 한번 찾아봐야겠다.
아름다운 들판 소야가 까만 밤하늘의 하얀 구름으로 커텐쳐질 때 하늘에 달님은 일그러진 조실댁엄니의 웃는 얼굴로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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