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아가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고향인 강으로 거친 물살을 거슬러 되돌아온다. 이를 ‘회귀 본능’이라고 한다. 사람도 태어나 자라고, 일정 기간을 고향에서 보낸 뒤, 홀로서기를 위해 오래된 고향을 등지고 넓고 복잡한 곳을 찾아 언제 돌아올지 모를 긴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언젠가 숨을 쉬기 위해 다시 돌아온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아픈, 도시의 소란한 삶이 버거울 때면 언제나 어린 시절의 고향이 떠오른다. 최근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면서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를 담고 있는 고향을 다시 찾아보고 싶었다. 과연 그곳은 기억 속처럼 따뜻하고 정겨울까? 좋은 기억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유 모를 간절한 그리움이 나를 이끌었고,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지난봄, 강의 일정을 마치고 문득 발걸음을 멈춘 곳은 강경이었다. 예전의 강경은 금강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도시다. 군산, 부여, 공주와 함께 조선의 3대 시장 중 하나로 불리며, 깊은 역사를 품고 있었다. 충청남도 최초로 전기가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호남고속도로와 현대화된 도시 이동 흐름 속에서 옛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강경, 그곳은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 묻힌 곳이다. 그러나 되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의 행복한 기억은 많지 않다. 일곱 살 무렵, 폐암으로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작은 과일 가게와 식당은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 시절 소년은 어떻게든 강경을 벗어나고 싶었다.
걱정이 없고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 깊은 걱정으로 숨이 막힐 때, 건강한 숨을 쉬려면 무엇보다 ‘쉼’이 필요하다. 사람, 장소, 음식, 책 등 내가 좋아하고 즐거운 것들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예고 없이 예기치 못한 인생의 ‘알람 시계’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알람을 오랫동안 무시하며 살아간다. 나 또한 몇 해 전, 그 울림을 만난 적이 있다.
강경은 이제 건강한 숲처럼 느껴진다. 마치 누군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놓은 듯, 잠시 숨을 고르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최근 새로운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 할 때면, 강경에서의 기억과 따뜻한 시간이 떠오르며 위로가 된다. 이제 훌쩍 자란 소년에게 강경은 ‘숲’이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만의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 건강한 숲에서 마음껏 숨을 쉬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고 싶다. 바쁜 도시의 삶을 벗어나 숨을 쉬고 정화할 수 있는 곳, 바로 고향이다.
숨이 가빠지고 마음이 힘들어질 때, 문득 어린 시절의 고향이 떠오른다. 도시의 소음을 벗어나 힘들고 아픈 순간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이런 장소는 정말 소중하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산과 강, 그리고 작은 마을의 평온함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숨은 사람의 기운이다. 그래서 걱정이 많거나 힘들어 보일 때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심마니들은 숨을 ‘물’이라고도 한다. 사람은 숨과 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많이 지쳤을 때는 잠시라도 숨을 쉬어야 한다. 깊고 깊은 산중의 산이든, 깊은 바다 아래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에서 숨을 고를 수 있다면 좋다. 그리고 기운을 충전해 다시 위로 올라올 수 있다면, 또 한 번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 강경은 마을 입구와 작은 골목골목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마을을 지키던 어르신이 하늘과 맞닿게 되면, 오래 생명을 이어 온 집은 불이 꺼지고 온기도 사라진다. 새로운 사람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텅 비고 바랜 집의 기다림은 이제 더는 약속을 품지 못한다. 봄날 햇살이 드는 날, 작고 낡은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계신 어르신의 모습만이 남아 있다. 이제는 그저 온기를 품은 사람 하나가 그리울 뿐이다.
어린 시절의 강경은 마치 오랜 세월을 거슬러 흐르는 강물처럼 내게 다가온다. 이곳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숨 쉬는 삶의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 작은 상점들, 언덕 너머의 푸른 산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감싸듯 다가온다.
때로는 좋은 기억이 많지 않더라도 고향은 마음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도시에서의 분주한 삶과는 다른, 정적이면서도 평화로운 순간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며,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그리움, 그것이 고향의 힘이다. 회귀 본능이 이끄는 강경의 강물에 마음을 맡기며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어린 시절 함께 들었던 금강의 물소리와 마을의 노랫소리를 따라 부르며, 오늘도 숨을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