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 할머니
옥녀봉, 그 해발 44m의 낮은 봉우리는 단순히 지형의 높낮이가 아니라, 어릴 적 돌계단과 함께한 추억의 여행지로 기억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돌계단 위를 따라 오르던 어린 발걸음과 함께했던 이웃들은 이제 먼 터전으로 사라져 버렸다.
옥녀봉은 논산 8경 중 하나이며, 강경읍내와 금강을 한눈에 담기 좋은 명소다. 전설에 따르면,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내려와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고, 강물에서 목욕하며 놀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강경에서 식당을 하실 때, 나는 황산초등학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보냈다. 옥녀봉은 그 시절, 봄·가을 소풍으로 자주 찾았던 곳이었다. 어릴 적의 옥녀봉은 돌계단을 오르느라 힘들었고, 정상에도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많지 않았다.
40년,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시간이 흐른 지금, 간혹 다시 찾게 된 옥녀봉은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상까지 도로가 이어지고, 주차장도 갖추어졌으며, 공중화장실과 봉우리 인근도 잘 정비되어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새롭게 바뀐 옥녀봉에는 사라진 것들도 있다. 돌계단 하나하나를 숨차게 오르던 초등학생도, 돌계단 인근에 거주하던 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없다. 지붕이 무너져버린 빈집과, 돌담을 멋지게 휘감고 있는 나이 들어 보이는 덩굴장미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사라지지 않은 소중한 보물을 찾았다.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며 봉우리를 걷다 보니, 작은 구멍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했다. 구멍가게는 어린 시절 소풍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곳이었다. 입구에는 사람들의 기쁘고 슬픈 사연을 몰래 엿들은 듯한 낡은 공중전화와 평상이 있었고, 안으로 들어서니 크지 않은 공간에 딱딱하고 작은 선반 위로 과자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세요?”
세 번, 큰 목소리로 불렀다.
잠시 후, 작은 체구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께서 힘겹게 미닫이문을 여시고 나오셨다. 달달한 맛이 그리운 오후였기에, 할머니께 달달한 봉지커피를 부탁드렸다.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한 시간 남짓 이어진 달콤한 담소로 이어졌다.
할머니는 올해 85세. 20살에 시집오셔서 옥녀봉 아래에서 65년 동안 구멍가게를 운영해오셨다고 한다. 어쩌면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 스쳐 지나간 인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 가게에 막걸리 있어요?”
전망 좋은 평상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운전 때문에 마실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궁금했다. 막걸리는 우리 동네 구멍가게와 어울리고, 자꾸만 떠오르는 술이다.
“예전에는 막걸리를 팔았지. 가게 옆 텃밭에서 키운 배추, 고추, 무 같은 걸 안주로 주기도 했고, 가끔 집에 고기가 있으면 나눠 먹기도 했어. 그런데 지금은 힘에 부쳐서 막걸리는 팔지 않아.”
막걸리를 팔지 않는다는 말보다, 할머니께서 ‘힘에 부친다’는 말씀이 더 안타까웠다.
할머니와 옥녀봉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강경이라는 도시의 삶을 다시금 이해하고 되짚는 시간이 되었다. 옥녀봉 구멍가게에 할머니가 계셔서 마음이 든든했고, 따뜻해졌다. 강경을 다시 찾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고향을 떠나고 싶어 했던 소년과, 65년의 세월을 이곳에서 보내신 할머니에게 강경은 어떤 곳일까? 할머니는 떠나고 싶지 않으셨을까? 고향이란,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까?
머지않은 시간에 강경에 다시 내려가고 싶다. 그곳은 내게 익숙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지금은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손꼽아 기다리는 이도 없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고향에서 따뜻한 마음이 가득한 옥녀봉 할머니 같은 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조만간 한 번 내려가, 할머님을 통해 고향을 다시 만나고 싶다.
이제는 머리카락에 눈도 내리고, 키도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에 닿을 만큼 자란 소년은, 더는 오를 수 없는 봉우리 끝자락에 서서 남은 ‘나’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