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꼭, 나를 위해 사세요

by 독립사회복지사

8월의 무더위를 뒤로하고 먼 곳에 강의를 왔다. 장소가 청사 내에 있어 조금 일찍 도착해 인근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쳤다. 30분 정도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카페를 검색하던 중, 가까운 거리에 여러 카페가 있었지만,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시니어클럽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에도 시니어클럽 카페를 자주 이용해 왔다. 어르신들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시니어클럽 카페는 어르신 일자리 창출과 함께, 질 좋은 커피를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노인의 생애 경험 및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노인 적합형 사회활동을 개발하고, 환경을 조성하여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고 생산적인 노인 사회활동을 만들어가는 노인일자리 지원기관

(출처: 한국시니어클럽협회 홈페이지)


식당에서 1분 거리에 교차로가 있었다. 많이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행정안전부에서 안전문자가 매일 반복되는 시기였고, 무더위에 취약한 노인의 야외활동 자제를 권고하고 있었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내 옆에 한 손에 지팡이를 짚은 8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서 계셨다. 나는 할머니가 걱정되어 바라보고 있었고, 눈이 마주친 할머니는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젊은이, 내가 몸이 떨려서… 조금만 잡아줄 수 있어요? 미안해요. “

나는 망설임 없이 할머니 옆에서 부축하며 말했다.

"어르신,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어디가 편찮으세요? “

"저기 약국에 가요. 너무 놀라서 몸이 떨려서 청심환 먹으려고요. “

그리고 잠시 후, 흐느낌과 함께 눈물을 흘리시며 말을 이어가셨다.

"집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맞았어요. 여기… 얼굴과 팔이 아파요. “

"할아버님이 자주 폭행을 하세요? “

"네. 그런데 할아버지는 치매가 있어서… 내가 돌보고 있어요. “

그리고 할머니는 왼쪽이 부어오른 얼굴과 상처가 있는 팔을 보여주셨다. 할머니는 치매가 있는 90대 할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다고 하셨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 상습적인 신체적 폭력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가족 중 치매 환자가 있을 경우, 나머지 가족 모두에게 일상생활과 가족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할머니의 경우 자녀들이 부양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어, 할아버지 간병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계신 상태였다. 게다가 폭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로 인해 할머니는 심리적·정서적 고통까지 겪고 계셨다.

교차로 인근에는 약국이 하나밖에 없었다. 하필 점심시간이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연락처도 없었다. 도심의 약국은 점심시간과 관계없이 항상 열려 있었기에 당황스러웠다. 약국 문 앞에서 할머니는 기다리겠다고 하셨지만, 무더위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근처 카페를 찾았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모시고 가기엔 거리가 멀었다. 마땅히 앉을 곳이 없던 상황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버려진 음료수 플라스틱 박스가 보여 할머니가 그늘에서 앉을 수 있도록 놓아드렸다. 할머니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일정이 있어 계속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는 방향 교차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꼭, 나를 위해 사세요…“

"고맙습니다. 할머니, 가까운 군청이나 읍사무소에 가셔서 꼭 도움을 받으세요. “

할머니의 얼굴에서, 진심으로 나를 위해 말씀하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말에 꾹꾹 눌러 담긴 슬픔이 밀려왔고, 동시에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며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 속에서 상대의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그 짧은 한마디 속에서, 힘들게 살아오신 할머니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불이 켜진 약국을 보았다. 나는 약국 앞에 쪼그려 앉아 계시던 할머니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마음이 무거웠다. 사람마다, 어떠한 시간이든, 어떤 순간이든 삶의 변곡점은 오기 마련이고, 그 진폭의 크기와 무게에 따라 좋은 일과 슬픈 일을 마주하게 된다.

저출생, 초고령화, 1인 가구 등의 사회적 문제로 인해, 이제는 자녀들의 부양의무나 정부 책임제에만 의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할머니가 스스로 슬픔의 변곡점을 이겨내길 바라는 것은, 결국 사회적 무관심이다. 더 적극적이고 따뜻한 지역사회, 이웃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동네에 이런 상황에 놓인 어르신이 어디 한두 분일까.

할머니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나는 사회복지사의 역할과 활동을 더 성찰하고, 더 고민하고, 더 되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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